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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우리와 공감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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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08 22:50:18 수정 : 2024-03-08 22: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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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이나 우울함을 눈에 보이는 색채와 형태로 나타낼 수 있을까? 음악을 생각해 보자. 현충일이나 장례식에서 장송곡을 들으며 우리는 슬픈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음악이 슬프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슬픈 음악들 대부분이 느리고 단조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슬플 때의 우리 행동과 유사한 특징들을 음악 형식 안에 담았기 때문이다. 슬플 때는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목소리가 잠긴 저음으로 울먹울먹하는 등의 특징 말이다.

그림도 마찬가지고, 표현주의 화가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물음이 이들을 괴롭혔다. 표현주의는 19세기 말 당시 사람들 사이에 퍼진 위기감과 정신적 혼란이 인간 스스로에 의해서 초래된 것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려 했다. 감정을 통해 바라본 세계를 나타내려 한 고흐와 달리 표현주의는 감정 자체를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 고흐 그림과 표현주의 그림은 유사하면서도 달랐다.

에드바르트 뭉크, ‘멜랑콜리’(1892∼3)

‘멜랑코리’란 그림에서 뭉크는 ‘우울함’ 자체를 표현하려 했다. 우울할 때의 우리 행동이나 표정과 유사한 점, 우울할 때면 힘이 빠지고 심각하고 축 처진 모습을 보인다는 점 등을 그림의 형식으로 나타내려 했다. 우선 황량한 바닷가에 배 한 척이 떠 있고 누군가 떠나는 것을 배웅하는 세 여인의 모습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턱을 괸 한 남자가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도 그려 넣었다.

이것만으로도 우울함을 느낄 수 있지만, 뭉크는 여기에 우울함을 강조하는 형식까지 더했다. 물체의 윤곽선을 흐리게 하고 가라앉은 색채가 화면 가득 은은히 흐르게 해서 힘이 빠지고 축 처지는 듯한 느낌도 살렸다. 그래서 그림의 분위기가 한결 더 절실해졌다. 예술은 이처럼 우리 느낌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힘을 발휘했고 전개돼 나갔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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