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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전쟁 출정 전 문신 새겨 죽어서라도 귀향 염원… 귀소본능, 민족 정서 관통”

입력 : 2024-03-05 20:48:57 수정 : 2024-03-05 22: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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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장편소설 ‘문신’ 낸 윤흥길

‘큰 작품 쓰라’ 박경리 당부에 구상
일제 말 대지주 가족 군상 그려내
악인임에도 해학적 묘사 돋보여

“방언 등 토착 정서 재현 힘들어
독자에게 아부하려는 소설 안 써
내 모든 작품엔 ‘사랑’ 깔려있어”

우리에겐 부병자자(赴兵刺字)의 풍습이 있다고? 부병자자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남자들이 몸에 식별이 가능한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있었고, 한국전쟁 때에도 있었다. 죽어서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으로…. 오래전, 소설가 윤흥길은 이규태의 책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읽다가 부병자자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됐다. 부병자자라.

 

그러고 보니 언뜻 기억나는 이미지가 있었다. 어릴 적 한국전쟁 당시 마을에서 청년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몸에 문신을 새겼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형들은 며칠 동안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동네를 시끄럽게 하다가 군대에 갔다. 이들이 서럽게 불렀던 노래 ‘밟아도 아리랑’도 함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만 말아라/ 또다시 꽃피는 봄이 오리라, 로 바꿔 불렀던 그 노래….

원로 소설가 윤흥길이 대지주 최명배 가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내는 이야기를 담은 5권짜리 장편소설 ‘문신’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집필 막바지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세 번 정도 심하게 앓았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윤 작가, 큰 작품을 써야 돼요.” 평소 존경해 왔던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은 생전 그를 만날 때마다 당부했다. 큰 작품이라, 큰 작품…. 그는 ‘토지’ 같은 대하소설을 생각하고 3부작 대하소설을 구상했다. 제1부는 이번에 완간한 ‘문신’이었고, 2부는 1995년 출간된 작품 ‘낫’이었으며, 3부로 사할린 현지 강제징용자 이야기를. 구상도, 집필도 너무 어려웠다. 왜 큰 작품을 쓰라고 했는지 궁금해 나중에 슬쩍 물어보았더니, 박 선생의 대답은 이랬다. “큰 작품은 긴 작품이 아니고,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통찰력으로 진실을 바라보는 작품이지.”

 

박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돌린 그는, 취재가 어려운 사할린 부문을 포기하는 등 계획을 축소했다. 그럼에도 간난신고의 연속이었다. 연재하던 잡지가 두 차례나 폐간되었고, 스스로 집필을 중단하기도 했으며, 막판엔 건강까지 나빠져 쉬었다가 다시 쓰기도 반복해야 했다. 그 사이 25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원로 소설가 윤흥길이 가상의 공간 산서면을 배경으로 대지주 최명배 가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내는 이야기를 담은 5권짜리 장편소설 ‘문신’(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첫 집필부터 탈고까지 25년이 걸렸고, 5권 원고는 200자 원고자 6500매가 넘었으며, 출간 도서 기준으로도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작품은 일제강점기 말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 군상을 품고 있다. 조상의 신위를 끔찍이 여기면서도 앞장서서 친일 행보를 이어가는 아버지 최명배, 속정이 깊고 신망이 두터운 그의 아내 관촌댁, 폐결핵에 걸려 세상에 냉소를 품고 사는 장남 부용, 산서 제일의 수재이자 사회주의에 경도된 동생 귀용, 흔들림 없는 기독 신앙으로 아버지에 맞서 집안을 지탱하는 신여성 누나 순금….

 

어느 날, 귀용은 급진적 사회주의 단체를 이끄는 사촌형 배낙철과 함께 아버지 사랑채에 침입해 재산을 강탈해 사라지고, 강제징용 바람이 몰아닥치면서 최명배 일가는 물론 산서 전체에 거센 소용돌이가 밀어닥치는데.

 

“찔리는 사람과 찌르는 사람이 함께 울었다. 속치마 하얀 바탕은 점점 빨갛게 변색하기 시작했다. 한 땀씩 바느질할 적마다 순금은 마음속으로 기도의 말을 꼬박꼬박 붙이곤 했다. 신춘복씨 몸에 기도가 새겨지는 중이었다. 돗바늘 가늘 길 따라 비원과 소망의 기도 소리가 차례로 그의 몸속에 흘러들고 있었다. 우람차고 튼실한 그의 몸 자체가 장문의 절절한 기도문이자 거대한 기도의 탑이 되어가고 있었다.”(제5권, 178쪽)

 

서사를 따라 유장한 시대의 풍경과 다양한 인물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진진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판소리 율조와 리듬감을 문장에서 즐기는 것도 감칠맛 난다. ‘노총 지르다’ ‘허우단심’ ‘문칮문칮’ 같은 풍부한 한국어와 다채로운 욕, 사투리를 마치 문신 새기듯 새겨간 그의 장인정신이 아련하다.

 

원로 작가 윤흥길은 왜 5권짜리 대하소설 같은 장편소설을 써야 했을까. 그가 소설에서 그린 일제강점기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풍경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윤 작가를 지난 27일 기자간담회와 추가 전화 통화로 만났다.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무엇이었는가.

 

“자료를 다양하게 준비해 시작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전라도 사투리나 토착 정서를 재현해내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소설 공간을 가상공간으로 설정했는데, 가상공간을 설정하다 보니 사투리도 애매해졌다. 적당한 선에서 농도를 조절하려고 신경 썼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산서면인데.

 

“산서면이라는 가상공간을 만들었다. 모델이 되는 곳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이다. 산동면의 5만분의 1 축적지도를 놓고 지명을 조합해 만들었다. 동네 이름도 실제 동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만들기도 했다.”

 

―왜 작품 속 악인들은 정말 나쁜 악인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작품에는 나쁜 놈들이 많이 나온다. 악인들인데, 소설을 읽고 나면 별로 악인같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을 독자들이 가끔 발견하는 것 같다. 악행을 분명히 그려놨는데 왜 악하게 보이지 않는가 하면, 아마 해학성 때문일 것이다. 해학적 수법, 해학적 문장으로 인물의 행동이나 마음을 다루다 보니 해학의 옷이 입혀져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민족 정서로 귀소본능을 꼽았는데.

 

“귀소본능은 저 개인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귀소 본능이 살아 있다. 지금도 설과 추석 양대 명절 때면 집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오기 위해서 전쟁을 벌인다. 자그마치 2000만명 가까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 아마 유목 민족의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1942년 정읍에서 태어나서 익산에서 자란 윤흥길은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집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꿈꾸는 자의 나성’, ‘소라단 가는 길’ 등을, 장편소설 ‘완장’, ‘묵시의 바다’, ‘백치의 달’, ‘낫’, ‘문신’ 등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박경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는 독자들에게 아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잘 보이려고, 책을 많이 팔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 한 가지는 모든 작품의 바탕에 사랑을 까는 것이다. 저는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의 가장 큰 교리나 가르침이 사랑이다.”

 

몇 페이지, 아니 겨우 몇 문장을 읽는 동안에도 몇 번 놀라고 또 몇 번은 감탄한다. 그 사이 또 몇 번은 스마트폰으로 낱말이나 속담을 찾고. 소란이 걷힌 주말, 그의 장편소설 ‘문신’ 한 권을 집어 들고 읽다가 어떤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온다. 이 대작을 쓰기 위해서 그가 오랜 시간 쏟았을 땀이, 그의 마음이. 그러다가 “지금 다시 새롭게 쓸 장편을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구상 중”이라고 밝힌 기자간담회 모습이 되짚어진다. 약간 붉은 얼굴이었지만, 그는 그날 무척이나 차분했었지. 맞아, 그의 이야기 한 대목도….

 

“한 번은 담배를 끊으라고 해서 한 3년 금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금연하는 동안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써지지가 않더군요.” 순금이처럼 사시나무로 떨진 않지만, 어느 순간 몸 어딘가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아려온다. 갈급하게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번져가는 송신음과 함께 그의 이야기도 점점 커져오는데. “소설을 쓰지 못하니까 너무나 재미없는 세상이 돼, 사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때 느꼈지요. 저라는 사람은 소설을 써야만, 창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연명이 가능한 사람이구나, 라고.”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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