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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분지의 두 여자』 강영숙 “아이를 막는 건 조금의 문제도 있어선 안 된다고 믿는 우리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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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28 07:30:00 수정 : 2024-02-27 21: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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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서사를 만드는 것이나, 장르적인 접근을 하는 게 쉽지 않구나. 지진을 모티브로 한 전작 『부림지구 벙커 X』를 쓰는 동안, 소설가 강영숙은 잠깐 생각했다. 작품은 지진에 따른 내면의 심리, 트라우마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위안 역시 있었다. 내가 여성 서사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이구나, 하는.

 

어느 순간, 여성 서사에 대한 오래된 관심과 기후위기와 함께 부각된 인류세에 대한 고민이 겹쳐지면서 하나의 문제로 모아졌다. 대리모 문제였다. 최근 보조 생식기술의 발달로 자녀를 얻는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선 두 여성이 나오고, 보조 생식기술이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해 보려다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한 번은 젊은 여성들의 난자를 불법 채취해 판매하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보조 생식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출산은 여성 고유의 중요한 부분인데, 여성의 출산 문제와 생태 기후 위기, 과학기술의 발전을 함께 묶어 고민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 규정에 대해선 좀 관심이 있었고요.”

 

우연히 시청한 유튜브 영상 역시 그에게 묻고 있었다. 난자를 공여 받은 뒤 대리모를 통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누구를 아이의 생물학적 엄마로 볼 수 있을까. 난자를 공여해 유전적으로 기여한 여성일까, 아니면 유전적 기여는 없지만 10개월간 배 속에서 아이를 품었던 여성일까. 도대체 엄마는 누구인가. 윤리가 있다면 또 어떻게 될까. 아이를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이나 기술을 우선할 것인가. 누군가 아이를 버리고, 다시 누군가 이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는 이미지가 처음 떠올랐다⋯.

 

“아까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낯선 소리에 민준은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조형물 뒤쪽을 비춘다. 고양이 몇 마리가 순식간에 흩어져 숨는다. 오민준은 손전등으로 아래를 비춘다. 그는 숨이 멎을 듯하다 겨우 한마디 토해낸다. ‘아기다.’ 어두운 바닥에 놓여 있는 바구니 안에 흰 덩어리가 하나 있다.”(13쪽)

 

소설가 강영숙이 분지도시를 배경으로 아기를 가지려는 두 여성의 이야기와 인간의 재해적 생멸 문제를 다층적으로 접근한 장편소설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를 들고 돌아왔다. 재해 같은 세상에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묵직하게 묻는다.

 

이야기는 청소 용역업체 직원인 청년 민준이 서울의 한 공원에서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민준의 선택이 다소 기이하다. 119에 신고하는 대신,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집어들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기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아기의 사연과 아기를 발견한 민준의 행보를 따라서 소설은 천천히 퍼져나간다. 분지 지형의 B도시 클리닉에 범죄로 딸을 잃고 대리 출산을 통해서 고통을 덜려는 대학교수 진영과, 딸을 위해 모아 뒀던 300만 원을 빼앗기고 돈을 위해 대리모가 되려는 샤오가 찾아온다. 이타적 대리모를 자처하는 진영과 금전적 이득을 겨냥한 샤오는 서로 극단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모두 재해 같은 삶 위에 서 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진영은 암세포 돌연변이 유전자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클라이언트가 아기를 외면하게 되고, 샤오는 하혈과 복통 끝에 제왕절개를 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지만 클라이언트는 수술비 지불을 거부한다.

 

“민준의 두 손이 떨린다. 버려진 건 아기인데 왜 민준도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 걸까. 아기는 누가 버렸을까. 아기는 왜 버려졌을까.⋯쓰레기 매립지 너머로 해가 넘어가려는 순간 민준은 아기 바구니를 한 번 더 내려다본다. 민준은 꿈에서 봤던, 책 표지에 새겨졌던 두 글자를 발치의 쓰레기에서 발견하고 읽는다. 바로 ‘Life’, ‘생명’이라는 글자다.”(211쪽)

 

다양한 재해를 모티브나 배경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강영숙은 왜 대리모 문제에 천착했을까. 그가 대리모 문제를 통해 바라본 삶과 생명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강 작가를 지난 16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민준이 아이를 신고하는 게 아니라 데려가면서 사건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 아이를 버렸다는 것이 처음 떠오른 이미지였다. 팬데믹 시절, 거리마다 사람들이 내다버리는 쓰레기양이 엄청 나더라. 늦은 밤 거리에 나가보면 청소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다 치우고 있었다. 도대체 저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소설에 저 사람들이 나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아이를 내다버린다면 저들이 최초로 아이를 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 아이를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대리모 문제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민감한 이슈인데.

 

“여성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다. 써도 되는지 좀 고민을 했던 것 같다.(어떻게 어려움을 넘어선 것인지) 어떤 사람은 잘 안 풀리거나 막히면 잠깐 문제에서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하는데, 저는 그냥 인정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치 토끼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지점쯤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것 같다.”

 

―샤오와 진영은 왜 재앙 같은 삶의 탈출구로 대리모를 꿈꾸는가. 대담하다.

 

“흔히 여성들에게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저도 그렇고 제 엄마도 그랬지만, 많은 경우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대답하더라.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다 모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이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다. 여자가 아이 낳으려고 태어났느냐고 하는 질문이 있듯, 좀 불편한 지점일 수도 있다. 난임인 딸을 위해 대신 임신하는 이타적인 대리모도 있다. 보조 생식기술은 기술적으로 많이 발전해 곧 다가올 수 있는 문제이다. 실패한 케이스를 생각하면서 만약 실패한다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생각해봤다.”

 

―진영과 샤오, 민주 등 인물들은 어떻게 나왔는지. 특별히 애정이 가는 인물은.

 

“샤오는 생계 때문에 대리모를 하는 사람이 필요해 나온 인물이다. EBS 다큐멘터리 ‘인류세’에서 새 지질시대의 화석은 닭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닭을 많이 먹는데, 그런 환경 속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진영은 배울 만큼 배우고 겉으로 볼 때는 욕망을 가지면 안 되는 사람이지만 욕망에 자기를 투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애정이 많이 간다. 왜냐하면, 이전에 겪은 일도 미제 상태인데 대리모를 하겠다는 게 쉽지 않고 조금 비약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 장면을 넣는 등 공을 더 들였던 것 같다. 민준은 코로나 시절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떠올린 인물이다. 누군가 아기를 발견해야 하는데, 이런 필요에 따라 나왔다. 제3자적 시각도 가진 인물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 희우도 나왔다. 소설 구성상 필요해 나온 사람은 민준과 희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나온다.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재해 같기도 하고.

 

“저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물어보고 싶다. 살면서 재해를 얼마만큼 감각하느냐고.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상에서 재해적 요소나 상황을 실제 불안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더라. 지진 같은 재해가 일어날까, 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저만 재해를 체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삶 자체가 재해 아닌가) 세상이 재해적이고 삶 자체도 재해 같기도 하다. 재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묻기보다는 삶 자체가 갖는 딜레마를 보여주려고 했다.”

 

―문장의 시제가 현재형인데, 가지런히 정돈된 가로수 느낌이 드는 이유는.

 

“원래 과거형이던 문장을 나중에 현재형으로 바꿨다. 사안에 더 집중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문제의 실상을 더 와 닿게 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그려야 했다. 되돌아보니 다른 요소들이 끼어들 수 없는 소재더라. 심리의 딜레마를 보여주려면 현실의 문제에 집중해야 했다. 교양 소설처럼 풍부한 감정이나 정서를 우람하게 담아내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개입한 부분이 조금 많아진 것 같고. 변주도 하고, 생기도 주고, 숨도 돌리는 부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너무나 크고 이상했다. 환상적으로도 느껴졌다. 마치 출렁거리는 큰 배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서울을 경험하고 느끼면서 알 수 없는 어떤 감수성이 생겨나고 있었다. 믿었던 세계가 천천히 깨지고 있었다. 태어나고 자란 춘천의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릴 적 춘천의 집에는 책이 거의 없었다. 하필 큰키에 운동을 잘하는 바람에 수많은 운동을 전전했다. 배구를 비롯해 육상, 멀리뛰기, 스케이트 등등. 학교에선 작업도 많았다. 우리가 무슨 돌 깔러 다니는 애들이냐, 라고 볼멘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어느 해 9월, 춘천여중 1학년생 강영숙은 서울 남산의 숭의여중으로 전학했다. 인근에는 왜인지 외국인들도 많았다. 매일 남산도서관에 다니면서 다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야 했다.

 

운동을 그만두고 대신 책을 집어 들었다. 『개선문』이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데미안』을 비롯해 삼중당 문고를 읽었다. 특히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이, 주인공이 안개 낀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괴롭힌 독일인 정보원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좋았다. 일기도 부지런히 적었다. 그날 있었던 일이나 경험, 기억을 시시콜콜하게. 소설가 강영숙의 씨가 뿌려진 시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곧바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고 한 동안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쉬는 날에는 도서관에 가서 문학을 공부했다. 스물 셋의 나이에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다.

 

“그 동안 쓴 시와 소설을 한 번 가져와 볼래?” 서울예대 2학년 어느 날, 교수 지도교수인 시인 오규원은 교지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던 그를 불러세웠다. 자신이 써온 시와 소설을 가져다준 며칠 뒤, 오 시인은 그의 원고를 툭 던져주면서 말했다. 원고 곳곳에는 수정이나 보완 표시가 빨갛게 그어져 있었다. “너는 소설 쓰는 게 좋겠다.”

 

그의 글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서사적인 어떤 면을 본 것 같기도 했고, 소설쓰기가 일종의 노동이니 성실한 그의 성향을 주목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는 다음날부터 시에서 소설로 진로를 바꾸었다. 소설가를 꿈꾸며 미친 듯 소설 습작을 썼다. 대학 졸업 뒤 기독교사회운동기관인 재단법인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일하면서도 계속 소설을 썼다.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떨어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고 응모했다.

 

1967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강영숙은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팔월의 식사」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하는 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회색 문헌』, 『두고 온 것』, 장편소설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부림지구 벙커 X』 등을 발표했다. 한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에 대해 조금 설명해 준다면.

 

“주로 길 위에 있는 사람들,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다른 세계를 욕망하는 사람들, 자기가 있는 세계를 부정하고 다른 세계로 가려고 넘어가려고 하는 사람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회사를 다니니까 노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작품에선 난민을 다룬 『리나』를 좋게 이야기기하는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고, 글쓰기에 대한 『라이팅 클럽』은 대중적으로 읽히는 것 같다.(이런 작품 세계는 어디에서 왔을까) 계속해 노동에 종사하면서 살아왔고 인간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노동의 역사 아닌가. 제 경험 등이 많이 녹아 있을 것이다. 한편 소설이라는 것은 어떤 허구적 세계여서 어떤 경계를 뛰어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소설 쓰기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고 재미를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또 제가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 저는 되게 재미있게 쓴다. 재미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재미라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나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다만 요즘 독자의 수준이 높아져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냥 제가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도 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여기에서 재미는 유머가 아니죠?)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에서 비롯하는 재미다.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역시 디테일이다. 삶에서 큰 담론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늘 맞닥뜨리는 것은 디테일이다. 만약 오늘의 삶을 설명해야 한다면, 아침에 무엇을 먹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점심에 무엇을 먹었고, 무슨 차를 마셨는지, 공기는 어땠고, 하는 디테일이 우리 삶을 설명한다. 저는 모르는 얘기를 잘 쓰지 못한다. 왜냐하면 디테일이 안 떠오르기 때문이다. 허구적인 상상력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도 하지만, 상상도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디테일을 모르면 잘 써지지 않더라. 근데 사실은, 글을 쓸 때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진 못한다. 쓰기도 너무 바쁘다. 결국 자기를 믿고 자기 본능에 따라서 써야 한다. 소설 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둘이서 신경전을 좀 벌이기도 한다. 유일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법이나 기술보다 그냥 자신을 좀 믿는, 믿어보는 유일한 시간이랄까.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힘들지만, 작가들은 이 시간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비전이나 희망이 있다면.

 

“저는 소설을 쓸 때는 다른 것은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계약이 있으면 그냥 지키는 것이고. 근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물어본다. 전 뭘 써야 할까요?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한 건 아닌 것 같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그냥 한 것 같다. 체력이 좀 더 좋아지면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는 또다른 욕망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세기 말과 세기 초의 풍경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때 대한민국은 무척 평화로웠던 것 같다.”

 

―하루 일상은 어떤지. 취미 생활이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회사 다닐 때에는 회사 일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곤 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에디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주중 사흘은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쓴다. 오전 7시 반쯤 일어나 집을 좀 챙기고 오전 9시 반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예전에는 공유 오피스도 갔지만, 지금은 도서관이 제일 좋다. 책이나 자료를 찾아볼 수 있고, 이상한 열기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심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다만 너무 소설에만 목매지 않으려고 거리를 좀 두되, 창의적으로 하려 한다. 저녁에는 동네 인근을 좀 걷다가 밤 11시쯤 잔다. 토요일에는 줌으로 소설 강의를 하고, 일요일엔 한강에 나가서 하루 종일 걷거나 멍 때리거나 또 달린다.”

 

“이 소설을 쓰느라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소설가 강영숙은 이번 소설은 빚을 졌다고 작가의 말에서 적었다. “아마 그것을 후회하게 되겠지만 이렇게라도 꾸역꾸역 써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기자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했나 보다. 되레 가끔 묻기도 했고.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직업의 이마가 유달리 모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아무튼, 누가 아이를 버렸을까. 누가 아이들을 이 세상으로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일까. 아이는 샤오가 버렸을 수도 있고, 진영이 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조금의 문제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들이 버렸을 지도.

 

“아기를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누구인가. 희우는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제도가, 종교가, 국가가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래도 희우는 이런 나쁜 일이 평생 힘들고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굳이 일어나야 했는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에는 조금의 문제도 있어서는 안 된다.”(215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강영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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