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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 위험 처한 제왕나비 따라 떠난 여정

입력 : 2023-10-27 23:10:00 수정 : 2023-10-27 18: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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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17.5도 넘는 환경서만 비행
3~5세대 걸쳐 생존 위해 대이동
멕시코서 캐나다 오가는 길 따라
저자 264일 동안 자전거로 달려
애벌레 ‘주식’ 자생지 개발 등 영향
군집 규모 갈수록 감소 현실 목도
“나비들 존재하기 때문에 구해야”

그 많던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사라 다이크먼/이초희 옮김/현암사/1만9500원

 

“나뭇가지 사이로 태양의 온기가 종일 쏟아지자, 제왕나비들은 날개를 펼치고 비늘을 반짝여 고마움을 표했다. 봄 햇살을 받은 수천 마리의 나비가 주황빛 날개를 파랑이며 하늘로 항해를 시작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나비들이 푸른색을 배경으로 시를 짓고 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다.”

이른 봄, 제왕나비가 집단 군집지인 멕시코 엘로사리오에서 백만 날개를 팔랑이면서 머나먼 캐나다를 향해서 여행을 시작한다. 주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한 북아메리카의 제왕나비는 주변 환경에 맞춰 체온이 변하는 냉혈 동물이다. 기온이 낮을수록 제왕나비의 체온은 낮아지고 활동성도 떨어져 섭씨 17.5도가 넘는 기온에서만 날 수 있다. 그래서 따뜻한 멕시코에서 겨울을 난 뒤 북쪽으로 날아가 캐나다에서 여름을 난 뒤 가을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여정을 반복한다.

환경운동가이자 생태학자인 사라 다이크먼이 2017년 제왕나비의 1만6417㎞ 여정을 자전거를 이용해 따라나선 내용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사진은 다이크먼이 여행에 사용한 자전거. 현암사 제공

2017년 3월 환경운동가이자 생태학자인 저자 사라 다이크먼은 제왕나비의 긴 여정을 자전거를 이용해 따라나선다. 이를 위해서 그해 1월 미국 캔자스시티 외곽의 집을 떠나 버스에 오른 뒤 52시간을 달리고 다시 자전거로 이틀을 달려 엘로사리오의 제왕나비 보호구역 주차장에 도착한 그였다.

이른 봄 북동쪽으로 날아가는 제왕나비들은 미국 남부 텍사스로 넘어서면서 바람에 따라 넓게 퍼지며 여정을 이어간다. 암컷들은 이때 알을 낳기 위해서 우유빛 액상이 나오는 잡초 ‘밀크위드’를 찾아 나서고, 찾아낸 밀크위드 잎에서 알을 낳는다. 암컷 한 마리당 보통 300~500개 정도를 낳고, 그렇게 태어난 다음 세대의 제왕나비도 부모가 하던 여행을 릴레이로 이어간다.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제왕나비들은 하루 평균 40~50㎞를 이동한다. 자전거로 따라다니기 딱 좋은 속도다. 저자는 하루 종일 나비를 만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때론 하루 종일 부딪치기도 한다. 나무숲, 길가, 공원, 학교 정원, 길가의 배수로, 버려진 땅, 가정의 뒷마당, 학교 정원 등등.

그의 여정 노선이 담긴 지도. 위키피디아

제왕나비들은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이 되기 전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3~5세대에 걸쳐서 대륙을 종단한 릴레이 경주는 멕시코에서 끝난다. ‘제왕나비의 대이동’이다.

제왕나비의 운명처럼, 다이크먼의 자전거 여행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비와 달리 땅 위를 달려야 하기에 길을 찾아서 자주 돌아가야 하고, 끊긴 도로 때문에 한참 되돌아가기도 한다. 숙소를 잡지 못해 길가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제왕나비와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느 순간 다이크먼은 제왕나비가 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제왕나비를 따라서 멕시코, 미국, 캐나다 3국을 가로지르는 여정 속에서도 그는 위기를 맞은 제왕나비의 현실을 목도한다. 멕시코에 모인 제왕나비 군집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1996년 20㏊를 차지한 군집 규모는 2019년 2.83㏊로 줄어들었다. 심지어 제왕나비 개체의 90%가 사라졌다고 보는 과학자도 있다. 제왕나비 애벌레의 주식인 밀크위드가 자생하는 땅에 주택과 대규모 상업지구가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다.

다이크먼은 여행 도중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북아메리카 이곳저곳에서 제왕나비의 위기를 전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제왕나비가 산란하는 밀크위드를 보급하는 샌디 슈윈, 제왕나비 애벌레를 길러서 주위에 보급하는 전직 교원 바브 등 수많은 이들도 만난다.

사라 다이크먼/이초희 옮김/현암사/1만9500원

다이크먼은 이렇게 264일 동안 자전거를 이용해 제왕나비와 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무려 1만6417㎞를 달렸다. 그의 멋지고 환상적인 이 여정을 담긴 책이 출간됐다. 책은 기후 위기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자, 그의 대답이기도 하다. 왜 우리가 제왕나비를 구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다이크먼은 대답한다. 제왕나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웅크린 제왕나비는 마치 불가능한 문장의 마침표 같았다. 그들은 존재한다. 이 작은 생명체들은 대륙만큼 큰 불가능을 이기고 돌아왔다. 위험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함께 위험에 맞설 군단 역시 늘어날 것이다. 나비, 인간, 이웃 생명체들이 모두 힘을 모은 이 군단은 함께할 때 강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러 제왕나비가 모여 대이동을 해내고, 짧은 거리가 모여 모험이 되고, 여러 정원이 모여 해결책을 내놓듯, 우리의 목소리가 모일 때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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