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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4m… 가장 크고 오래된 고려불화의 최고봉” [일본 속 우리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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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05 10:30:00 수정 : 2023-10-05 10: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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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국립박물관, 고려·조선 불교미술품 특별전 개최
일본 각지서 감상 어려운 고려불화 20점 포함 48점 전시
“한국,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다양한 관점 제시하는 작품”
“중세 일본에서는 고려불화 중국 그림으로 잘못 알고 감상”

독보적 예술성을 자랑하는 고려불화는 전하는 작품이 전 세계에 160점 정도 밖에 안된다. 이 중 130여 점이 일본에 있다. 종주국인 한국에는 있는 건 10여 점에 불과하다. 고려불화 여러 점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회는 일본이 아니라면 좀체로 어렵다는 의미다. 

 

일본 후쿠오카 규슈국립박물관의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체 출품작 48점 중 20점은 일본 각지에서 모은 고려불화다. 대부분 예배용 사찰소장품이라 비공개로 하고 있어 평소엔 보기가 어려운 작품들이다. 

일본 후쿠오카 규슈국립박물관 인근 거리에 고려·조선시대 불교미술을 모은 특별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물관은 고려불화를 “유려한 금빛 아름다움의 세계 뿐만 아니라 한국회화사에서 고전적 성격을 품고 있고, 동아시아 회화사에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일군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그림으로 오해받은 고려불화

 

많은 고려불화가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뭘까. 자료가 부족해 똑부러진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한때 한국 학계에서는 고려말∼조선초 극성을 부린 왜구,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출병군의 약탈로 설명이 통용되었으나 지금은 그그렇지 않다고 한다. 박물관도 “고려불화 전부를 왜구의 활동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임진왜란)에 귀착하는 것은 단견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유입경로는 중세 일본에서 유행했던 ‘당화(唐畫·중국 그림)감상’ 풍습이다. 박물관은 “무로마치 시대(1336∼1573) 이후의 당화 감상 시스템 속에서 (고려불화는) 중국 화가의 이름을 끌어대어 부친 전승작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입된 고려불화를 중국 그림으로 여겼다는 의미다. 그러다 일본의 미술사 연구가 발전하고, 특히 2차대전 이후 실증조사 성과가 축적되면서 “고려불화의 연구도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광의의 중국 그림으로 취급된 일군의 작품에 대해 ‘메이드인 코리아’의 정체성이 재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고려불화의 일본 유입은 이것만으로 다 해명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어려운 과제가 많다”고 밝혔다.  

 

중국 그림으로 오해된 실례가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지온인 소장 ‘오백나한도’다. 19세기 중·후반 활약하며 나한도에 깊은 관심을 바였던 우가이 테츠야는 이 그림을 북송(北宋)의 화승(畵僧) 법능의 작품으로 감정했다. 박물관은 지온인 소장 오백나한도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고려후기의 신앙에 따른 독자적 표현이나 의례 기능에 대한 신중하고 열린 논의가 요구된다”는 견해를 보였다. 

 

◆“고려불화의 최고봉”

일본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 규슈박물관 홈페이지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사가현 가가미신사 소장 양류관음도(‘수월관음도’의 일본식 표현)다. 무엇보다 크다. 세로가 4.2m, 가로 2.5m로 전열장의 위·아래를 꽉 채운다. 1812년에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엔 지금보다 훼손이 덜해 세로 1m, 가로 25㎝ 정도 더 길었다고 한다. 단순히 크기만 한게 아니다. 박물관은 “현전하는 고려불화 양류관음도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다. 고려불화의 최고봉”이라고 소개했다. 문화재 지정체계상 우리나라의 보물에 해당하는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없지만 1812년 조사 당시 기록한 화기(畵記)가 남아 있어 고려 충선왕의 두번째 부인인 숙정원비 김씨가 발원하고, 화가 8명이 참가해 1310년에 완성했다는 내력을 알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김영희 학예연구사는 “이 그림이 조성되기 적진언 1309년 충선왕이 민천사를 창건하고 불상 3000여구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어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도 이 절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요괴까지 낀 남여 일행을 묘사한 일본 개인 소장 수월관음도(왼쪽)와 선재동자가 표현된 다른 수월관음도.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와 나란히 전시된 개인 소장 수월관음도는 도상이 특이하다. 수월관음도는 부처가 되기 위해 54명의 스승을 찾아나선 선재동자가 28번째인 관음보살과 보타락산에서 만난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수월관음도는 대체로 투명한 베일로 온 몸을 감싼 반가(半跏·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에 올린 자세) 자세의 관음보살이 발치에 선 선재동자와 만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수월관음도에는 선재동자가 없고, 그 자리에 요괴까지 낀 남여 일행을 표현했다. 교토 다이도쿠지 소장본, 미국 메트로폴리탄 소장본이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이를 두고 신라 의상대사가 낙산에서 용왕을 만났다는 삼국유사 속 설화를 표현한 것이라는 등의 설명이 있다.

 

박물관은 이 수월관음도가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에 가까운 높은 화격(畵格)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왕실 주변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후쿠오카=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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