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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기자란 이유로 체포하는 나라”에서 기사를 쓴다는 것…자흐라 나다 ‘잔 타임스’ 편집장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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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03 18:48:08 수정 : 2023-10-04 11: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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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여성 최초로 NYT 입사
작년 8월 加서 비영리 언론 창립
기사 70%가량을 여성들이 생산

“무사히 교육받은 만큼 女 위해
탈레반에 맞서 싸울 책임 있어
역사 제대로 기록할 플랫폼 필요”

“탈레반에게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각오가 되어 있나요?” (자흐라 나다 잔 타임스 편집장)

 

“이미 매일 위험을 감수하는 삶이에요. 기자가 된다면 살아갈 이유라도 생깁니다.” (여성 기자 지원자 A씨)

 

발각되면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한 지난 2년간 이런 결정을 내린 아프간 여성들이 있다. 이들이 목숨 걸고 기사를 쓰는 이유에 대해 자흐라 나다(Zahra Nader) 잔 타임스(Zan Times) 편집장은 “지옥 같은 곳에서 목적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세계탐사보도총회(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Conference)가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나다 편집장을 만났다. 올해 GIJC에서 나다 편집장은 ‘탐사저널리즘에서 여성들이 함께 번영하기 위한 전략’ 세션의 패널로 참여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2011년 기자 일을 시작한 그는 아프간 여성 최초로 2016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들어간 인물이다. 이후 미국 유력 시사주간 타임지(Time), 포린폴리시(FP), 가디언(Guardian), 도이체벨레(DW) 등에서 기사를 냈다.

자흐라 나다 잔 타임스 편집장이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탐사보도총회(GIJC)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다음 세대가 같은 고통 겪게 할 수 없어”…잔 타임스 창립 배경은

 

잔 타임스는 나다 편집장이 뜻이 같은 동료들과 지난해 8월 캐나다에서 창립한 비영리 언론이다. ‘잔(Zan)’은 페르시안어로 ’여성’을 뜻한다. 나다 편집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해외에서, 기자들은 아프간 현지에서 일하는 원격 근무 방식을 취한다. 기사의 70%가량을 여성들이 생산했으며 지난 1년간 인터뷰한 이는 아프간 현지 여성 430명을 포함해 모두 650명에 달한다.

 

나다 편집장이 비영리 매체를 만든 건 책임감 때문이었다. 2017년부터 캐나다에서 유학하며 여성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에게 2021년 탈레반의 집권 소식은 터닝포인트가 됐다. 카불대학교에서 아프간 여성사와 여성정치사를 가르치겠다는 나다 편집장의 목표가 전면 수정됐다. 

 

“저는 탈레반이 축출된 2001년 이후 카불에서 학교에 다니고 언론인이 될 수 있었어요. 무사히 교육받을 수 있었던 여성으로서 지금 아프간에 있는 자매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책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여성들을 침묵시키려는 탈레반에 맞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기록할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2001년 이전, 탈레반의 첫 집권 때 어린 시절을 보낸 나다 편집장은 가족들과 이란으로 도망쳤다가 교육받을 권리가 없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 이 끔찍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면서 다음 세대 여성들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아프간 여성이 얼마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로서 이곳 현실을 영어로 보도해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시작한 이유다. 처음엔 유수의 외신들과 협업하며 기사를 썼고, 이제는 보다 주도권을 갖고 아프간 여성의 일상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직접 매체를 차렸다.

 

◆필명 쓰고 단톡방도 안 만들어…강도 높은 안전 지침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 이곳 여성들은 교육, 취업은 물론 집 밖을 혼자 나갈 수도 없다. 나다 편집장에 따르면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 기자로 활동하는 건 “매일 아침 눈 뜨며 ‘왠지 오늘 체포될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수시로 공포와 트라우마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서로의 정신 건강을 2주에 한번씩 챙겨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정도다.

 

아슬아슬하게 일하는 여기자들의 안전을 위해 잔 타임스는 철저한 지침을 만들었다. △필명을 쓸 것 △기자로 일한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지 않을 것 △온라인 세미나 때 목소리 노출을 막기 위해 쪽지로만 대화할 것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언론에선 일상적인 ‘팀원이 모인 단체 메신저방’도 상상할 수 없다. 정권에 체포되는 등 비상 상황이 생기면 직계 가족이 관리자에게 연락하도록 하고, 심문을 대비해 나다 편집장의 번호도 절대 저장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매일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들이 지키려는 건 ‘삶의 목적’이다. 자신이 기자로서 한 일 때문에 형제와 아버지가 체포된 적 있다는 잔 타임스 기자 A씨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억압 속에서도 나와 내 자매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선 기자들의 모습에 나다 편집장은 “때로는 힘을 얻고, 때로는 책임감을” 느낀다. 자신이 시작한 일에 이들을 끌어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남녀분리정책에 따라 현재 아프간 여성의 이야기는 오직 여성 기자만이 취재할 수 있다. 이들이 현장에 있어야만 아프간 여성의 삶을 그림 그릴 수 있다.

 

현지에서 일하는 여기자들을 지원하고, 비영리 언론인 잔 타임스를 지속하기 위해 나다 편집장은 최근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그와 팀원들이 모은 사비를 털어 매체를 만들었고, 대부분의 보조금은 오는 10월 종료되기에 내년 운영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서다.

 

잔 타임스 기자들은 소녀들이 학교에 갈 수 없고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세상이 이해하기 바라며 오늘도 기사를 쓴다. 나다 편집장에 따르면 “이 여성들의 다음 단계는 삶의 목적을 잃는 것”이고,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에서 남성보다 여성 자살률이 더 높은 거의 유일한 나라다.

가디언(Guardian)에 올라간 잔 타임스의 아프간 여성 자살률 관련 탐사보도 기사 갈무리

◆여덟달 추적한 ‘아프간 여성 자살률’ 탐사보도

 

지난 8월말 공개된 기사 ‘자리잡은 절망: 탈레반 정권의 아프간서 여성 자살 증가’(‘Despair is settling in’: female suicides on rise in Taliban’s Afghanistan)는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추적한 잔 타임스의 탐사보도다.

 

기사에 따르면 공식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인 2019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자살로 사망한 경우가 더 많았지만, 현재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자살을 하고 있다. 기사는 이를 “탈레반의 가혹한 정책의 영향을 강조하는,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라 풀이했다.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 단신으로 보도되는 여성 자살 기사를 보며 당시 기자로 일하던 나다 편집장은 각각의 사건을 잇는 패턴이 있음을 감지했다. 분명 정권이 억압할 만한 기사인데도 매달 3~5건의 여성 자살 뉴스가 나온다는 건 실제로는 정말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나다 편집장과 동료들은 그 패턴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금기시 되는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의 자살은 공개적으로 논의될 수도, 정부로부터 관련 통계를 받을 수도 없는 주제였다. 잔 타임스와 비영리 단체 더풀러프로젝트(The Fuller Project)는 전국 11개 지역의 공립 병원과 진료소의 정신과 의사들을 일일이 접촉해 2021년 8월부터 1년 동안의 수치를 모았다. 데이터 수집과 검증에 장장 8개월이 소요됐다.

자흐라 나다 잔 타임스 편집장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탐사보도총회에서 본지와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조사 대상 중 1개 주를 제외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과 자살 시도 모두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많았다. 기사는 “이는 분명한 추세를 보여준다”며 “탈레반 정권 장악 후 12개월 동안 자살 시도자와 자살 사망자 대다수는 여성과 소녀였다”고 기술했다.

 

데이터가 수집된 지역 중 자살 시도가 가장 많이 보고된 곳은 헤라트(Herat)였다. 123건 중 106건이 여성의 자살 시도였다. 자살 사망자 18명 중 15명이 여성이다.

 

여성들의 자살 요인으로는 가정 폭력과 강제 결혼, 미성년자 결혼 등이 꼽힌다. 여성의 중등교육 중단은 이들이 더 일찍 결혼하게 된다는 의미다. 지금은 추방된 아프가니스탄독립인권위원회(AIHRC)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교육받은 여성 비율이 높은 보수적인 지역에서 성별에 기반한 폭력과 여성 자살 시도가 높은 것으로 기록됐다.

 

헤라트 지역의 정신건강 담당자는 “이 지역 자살률이 항상 높았지만 이제는 직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한 침대에 두 명의 환자를 눕히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 담당자에 따르면 도립병원의 정신건강 환자 중 90%가량은 ‘새로운 억압의 무게로 무너지고 있는’ 여성들이다.

 

나다 편집장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여성들이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 살아남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택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반대와 집회가 처벌되는 국가에서 여성에게 남은 유일한 저항의 형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사에서 줄리 빌라우드 제네바 국제 연구대학원(The Geneva Graduate Institute) 교수(인류학)는 “보란듯 자살을 저지르는 여성들의 메시지를 단순한 절망 행위로 축소할 수는 없다”며 “(자살은) 무언가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택하는 마지막 시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다 편집장은 “비영리 매체인 잔 타임스의 내년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근 언론사를 유지하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세계적 페미니즘 백래시에 우려 “지금 멈추면 다음 세대는 어떡하나”

 

탈레반이 나라를 장악한 지 2년이 흘렀고 아프간 여성들은 여전히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다. 글을 쓰고 노래하고(탈레반이 음악도 금지했다) 집 안에 비밀 학교를 만들어 여자 아이들을 교육하는 등 저항 방식은 다양하다. 함께 모여 영상을 찍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한다.

 

지난 2년간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여성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나다 편집장은 전했다. 이어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이 집권하게 두는 것은 전 세계 인류에 대한 위협이라는 걸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다”고 경고했다. 세계 각국이 탈레반의 행위를 규탄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하기만 할뿐 심화되는 반인권적 행태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자국 여성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저항하는 동안 남성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나다 편집장은 “이 모든 일이 자행되는 동안 남성들이 가만히 있다니 ‘모든 아프간 남성은 다 여성혐오자’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지난 40여년 동안 계속된 전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제대로 된 교육이 차단됐고,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쥐면서 만든 새로운 학교에서는 정보를 조작하고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탈레반이 추구하는 이념의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은 그것만이 존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나다 편집장은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곳곳에서 여성 인권이 후퇴하고, 페미니즘이 오명을 뒤집어쓰거나 잘못 이해되는 일이 일어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50년 만에 낙태죄가 부활했고,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

 

나다 편집장은 ”이럴 때야말로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한 저항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며 “더 많은 기관이 여성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낙인찍힌 페미니즘이 아닌 진짜 의미의 페미니즘이 이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전 나온 아프간 여성의 자살률 관련 기사가 한국에서도 반향이 있었다는 말에 나다 편집장은 크게 기뻐했다.

 

“타국에 우리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들렸다는 사실이 고무적입니다. 한국 언론과 이렇게 첫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무척 기쁩니다. 아프간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은 계속해서 전 세계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잔 타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 탐사보도> 교육과정에 참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예테보리=글·사진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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