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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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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12 07:00:00 수정 : 2023-10-03 22: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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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아기가 떠난 그날
지난 6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정부 전수조사 결과, 2015년부터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212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안타깝게 유기되거나 세상을 떠난 아기들의 사연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세계일보는 영아유기·살해가 개인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라는 인식 아래 판결문을 분석하고, 영아의 생부모 사연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를 통해 드러난 영아유기·살해 범죄의 이면, 아동·여성 보호와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특별기획 시리즈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연재로 소개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가영(가명·22)은 고등학교 시절 이 사실을 처음 맛봤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전으로 거처를 옮기며 가영은 하루아침에 낯선 곳에서 다시 삶을 꾸려야 했다. 한밤의 불청객처럼 날아든 불행은 쏜살같이 덩치를 키웠다. 집안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새 학교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가영은 2학년에 올라가 끝내 학교를 관뒀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낮에 학교에서 흘려보내던 시간에 돈을 벌었다. 집안 생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했다. 교복을 벗고 앞치마를 둘렀고, 식당 일을 마치면 택배 작업을 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푼 두푼 끌어모으던 2020년 3월쯤 가영의 앞에 그가 나타났다.

 

◆‘비정한 모정’ 그 뒷이야기

 

처음 그를 만났을 때 19살의 가영은 비로소 희망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가영은 빠르게 그에게 모든 것을 허락했다. 그와 만난 지 3개월 만에 그녀는 전에 없던 몸의 변화를 느꼈다. 새 생명이 가영의 몸 한구석에 안착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변 이들은 모두 출산을 만류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가영은 너무 어렸고, 집안 형편은 여전히 암담했다. 다 책임지겠다는 그 역시 변변한 직업도, 모아둔 돈도 없었다. 하지만 가영은 자신에게 와준 새 생명에 감사했다.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었다. 그 흔한 산후조리원조차 가지 못한 것도 아기를 위해서였다. 조리원 갈 돈을 아껴서 분유 한 통, 기저귀 한 팩이라도 더 사야 했다.

 

“피고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다.”

 

잠시나마 희망으로 차올랐던 가영은 바로 다음해인 2021년 10월 빛바랜 수의를 입고 대전지방법원 재판정에 섰다. 혐의는 아동학대치사. 판사는 “피고인은 자신의 몸이 힘들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폭행하고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1년여 동안 가영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시계를 돌려 다시 2020년 6월. 갑작스러운 임신을 하게 된 가영은 잦은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게 우울증인지조차 몰랐다. 그저 다가오는 출산을 기다릴 뿐이었다. 제왕절개로 어렵사리 아기를 만난 가영은 병원에서 퇴원하고 남편과 살고 있던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가영의 삶은 좁은 원룸에 갇혀 철저히 고립되고 일그러졌다.

 

가영의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주 6일 동안 오후 4시쯤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9시쯤 귀가했다. 지친 몸으로 돌아온 그는 집에선 잠만 잤다. 집안에서 남편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24시간 온종일 울고 있는 아기를 붙들고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어르고 달래서 재우는 건 모두 가영의 몫이었다. 잠조차 사치였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육아와 홀로 싸우며 우울감과 외로움이 깊어졌지만, ‘다 내 탓이야, 나만 좀 참으면 돼’라고 수없이 되새겼다. 남편에게 고충을 털어놔도, 잠이 고픈 그는 몇 마디 말로 그녀를 달래고 돌아섰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도 있었지만 70만원이라는 자기부담금을 내야 했다. 가영 부부에게 너무도 큰돈이었다. 자살 충동에까지 휩싸이면서도 산후우울증이 뭔지 모르는 가영은 자신을 채찍질하기만 했다.

 

예고된 비극이었다. 생후 1개월의 아기는 쉴 새 없이 울었다. 누구도 아기가 왜 우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의 뒤통수를 가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 차례 때렸다. 수일 후엔 침대에 앉아서 분유를 주던 중 아기를 침대 매트리스로 떨어뜨렸다. 두부 손상을 입은 영아는 결국 숨졌다. 지금의 가영은 그때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이성과 우울감에 사로잡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책뿐이다.

 

◆아기가 떠난 날, 국가는 없었다

 

징역 5년이 선고된 1심 이후 항소심이 진행됐다. 지난 10일 세계일보는 2심 사건을 맡았던 정재오 수원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찾아가 대전고등법원 재판장이던 당시 얘기를 더 자세히 들었다.

 

검사와 변호인이 제출한 쌍방 항소장을 받아든 정 판사는 고민에 빠졌다. 이 사건은 외관상으론 단순했다. 사람의 생명은 가장 존엄하고 근본적인 가치이자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최고의 법익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여론까지 달갑지 않았다. 가영을 향해 ‘비정한 모정’,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 판사는 모든 법률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살폈다.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 판사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국가가 여성에게 사회적·도덕적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려면 국가도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지원을 베풀어야 했다.

 

당시 재판부가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에 사실조회를 한 결과, 가영처럼 혼인했으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는 방안은 턱없이 부족했다. 자기부담금 70만원을 내기 어려운 가정에 아무런 육아 지원책이 없다는 점은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지점이었다. 본지가 한국미혼모가족협회, CJ나눔재단 등과 협력해 69명의 미혼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68명 중 24명(35%)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베이비박스나 보육원 위탁 또는 입양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정 판사는 국가의 부재 속 비극적 결말을 이끈 산후우울증에 대해서도 살폈다. 재판부는 가영이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독박육아’에서 허우적대다 비이성적 상태로 치달은 과정을 짚어냈다. 정 판사는 ‘산후우울증’이라는 의학적 현상의 사회적 의미를 따져보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라고 봤다.

 

훗날 재판부는 판결문에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4주에서 6주 사이에 주로 발병하는 정신질환으로, 산모의 약 10∼20% 정도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후우울증의 의심 증상으로는 아기에 대한 죄책감, 양육에 대한 심리적 중압감, 산모 자신이나 아기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두려움 등을 들 수 있고, 산후우울증은 일반우울증보다 혼란스러움, 불안,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적시했다.

 

흔치 않은 시도였다. 세계일보 취재진이 최근 10년(2013~2022년) 국내 영아유기·영아살해·영아가 피해자인 아동학대치사 사건 판결문 250건을 살펴본 결과, 피고인 여성의 정신 상태를 심도 있게 조명한 판결은 해당 판결 1건뿐이었다.

 

재판부는 가영의 남편에 대한 관점도 달리했다. 원심에서는 “피해자의 부친도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고 판시하며 남편을 ‘피해자‘ 위치에 뒀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시각을 배제했다. 정 판사는 “임신·출산·육아는 모두 남여 공동으로 책임질 삶의 영역이므로 영아 사건에서 피고인의 남편도 질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영아가 가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할 때 아빠에게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때, 아빠도 공동정범으로 사법부에서 검토할 영역이 있다”고 했다.

 

가영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엔 이견이 없었다. 다만 그에 합당한 수준의 처벌을 내리는 것이 재판부의 몫이었다. 결국 지난해 5월 정 판사는 원심판결(징역 5년)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례적이었다.

 

정 판사는 “자유에 대한 박탈 관점에서 보면 집행유예 판결이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윤리적 관점에선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책임과 죄책감을 주는 것”이라며 “징역을 살고 나오면 죗값을 다 치렀다고 홀가분할 수 있지만, 집행유예는 유예 기간 동안 또는 평생에 걸쳐 죄책감을 느끼고 도덕성을 회복하며 판결의 의미를 삶으로써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절실한 후회 속 희망의 다짐

 

지난 6월 정 판사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가영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 속 그녀는 “5월이 가정의 달이라 딸이 더더욱 그립고 보고 싶었습니다. 평생 죄책감 가지며 살아가겠다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라며 “수감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말자, 의미 있게 보내자는 것을요. 남은 인생 딸에게 용서받으며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재판은 이미 끝이 났다. 가영은 더 이상 재판부에 반성문을 보내 선처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1년여 만에 다시 펜을 들어 죄책감을 고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책임 있는 삶을 약속했다.

 

가영을 변호한 김은진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해당 판결로 우리 사회가 생명의 가치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에 대해 나태해지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 같다”며 소회를 밝혔다. 나아가 김 변호사는 “어린 친구들이 사건이 벌어진 후 대처하려면 미숙할 수밖에 없다”며 “한 생명이 사회에서 길러지는 데에 있어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사전 교육과 지원이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정 판사는 “우리나라에서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행복의 충분한 원천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다른 고통이나 불행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국가는 출산과 육아를 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했다.

 

“단순히 돈 몇 푼 주는 것이 아니라, 산후우울증 등 출산·육아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고충에 대한 논의를 넓혀야 합니다. 엄마를 보호하는 것이 곧 영아를 보호하는 것이니까요.”

 

<관련 기사>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프롤로그 - 유령아빠, 불행의 씨앗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9604

 

①[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8352

 

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2500544

 

③벼랑 끝 내몰려 ‘아이 버릴 결심’ 하기까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00163

 

④아빠가 먼저 ‘두 사람’을 버렸다…부양 점수 5점 만점에 1.3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20264

 

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00252

 

⑥“주민등록 말소, 이사 등 온갖 꼼수”… ‘도망간 아빠’ 찾아 삼만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897

 

⑦“책임 안 지면 빨간 줄…‘히트앤드런 방지법’, 왜 안 생기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915

 

⑧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9510570

 

⑨“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0203

 

⑩‘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263

 

⑪“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02617

 

⑫[좌담회] “예기치 않은 임신은 재난상황…생부에게 더 책임 물어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13086

 

에필로그 - 이중잣대에 지친, 미혼모들의 속마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4502371


수원=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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