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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경제대국 中, 성숙한 시민의식은 아직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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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8-30 23:31:02 수정 : 2023-08-30 2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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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이번 여름방학에 7년 만에 고향인 중국 지린성 훈춘시에 다녀왔다. 처음 며칠은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여기저기 새로 들어섰고 새로운 도로도 생겼다. 정부 기관에 찾아가서 일을 봐야 하는데, 새 건물을 짓고 이전해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도시 관리와 공공시설에 대한 관리는 되어 있지 않고 교통 규칙과 질서는 혼잡했다. 도로는 움푹하게 파인 곳이 많았고 보도블록이 깨진 곳이 많았지만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시내 노선버스를 타 봤는데 모두 손잡이와 의자 시트에는 찌든 때가 가득 묻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앉을 의자도, 버스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도 없었다. 버스 배차 간격도 일정하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리다 비싼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배정순 이중언어강사

사람들은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았고 질서가 없었다. 혼란 그 자체였다. 복잡한 사거리에만 교통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횡단보도에는 아예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이 지나가려고 해도 달리는 차들이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쌩쌩 달렸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고 차가 우선이었다. 차와 행인이 뒤섞여서 서로 거리와 속도를 재 가면서 눈치로 판단하면서 다녔다.

사람들의 문명 정도와 시민의식 수준도 낮았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지시하는 듯한 어조, 범죄자를 심문하듯 따져 묻는 딱딱한 말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정부 기관, 은행, 기차역에는 모두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있어서 분위기가 사뭇 삼엄하게 느껴졌다.

중국에 있는 아파트를 세줬는데 세 들어 있었던 사람들이 나간 다음에 보니 거실 한가운데 쓰레기를 가득 쌓아놓았다. 주방 바닥에는 기름때와 먼지가 덕지덕지하게 앉았고, 세탁기에 연결된 물 호스는 단절되어 있었다. 한국산 쿠쿠 압력밥솥은 세 들었던 사람들이 가져가 버렸다. 벽에 부착돼 있는 멀티탭까지 싹 뽑아갔다. 중국은 집을 세줄 때 보증금이 없다 보니 가전제품이 파손되어도 주인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값을 깎는 문화가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국에 있다 보니 시장가도 모르고 어느 정도 깎아야 적당한 가격인지 알 수가 없으니 ‘호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약국에서도 약값을 깎아서 사니 약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다. 게다가 의료보험카드로 약을 사면 잔액이 표시되었다. 약국 주인들은 아직 잔액이 많이 남아 있으니 건강식품을 더 사라고 권했다. 내 카드의 잔액을 다른 사람이 안다는 것이 왠지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 같아서 찝찝하고 싫었다. 의료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법과 규칙으로 제도화하고, 복지시설을 확충하고 공공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국제사회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정순 이중언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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