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갤러리 시설물에 둘러싸인 집
북촌 정서 드러내는 오브제로 재탄생
개인 주택과 달리 외부인 드나드는 곳
바깥 공간과 적당한 관계 설정에 초점
전통 창살 재해석한 창틀로 문 만들어
서점 향하는 공간 개방감과 밝기 조절
라운지 겸 사무실과 마당엔 유리문 둬
완전히 열면 두 공간 사이 기둥만 남아
‘소격동 60-12번지 집’은 1935년에 등기된 근대식 한옥이다. 북촌, 서촌, 익선동에 분포되어 있는 근대식 한옥은 1920∼1930년대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하고 중산층 이하 서민의 주거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전통 한옥의 변용이다.

목구조 때문에 고층이 될 수 없었던 근대식 한옥은 작은 마당을 한쪽에 두고 ㄱ, ㄴ, ㄷ자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지어졌다. 담이 이루던 집의 경계는 방의 외벽이 대신했고 이웃집의 방 외벽끼리 연결되면서 골목길이 생겼다. 그래서 근대식 한옥이 밀집된 동네는 공공 공간으로서의 길과 사적 공간으로서의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과 마당을 완충하는 공간은 없다. 그러다 보니 두 영역의 관계는 지나치게 친밀하거나 완전히 나뉘어 있다.
‘소격동 60-12번지 집’과 이웃한 국제갤러리도 처음에는 서로 상관없이 병립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국제갤러리의 시설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그 집은 국제갤러리의 건물로 점차 둘러싸이게 됐다. 결국 송보영 국제갤러리 부사장은 이 집을 자신의 클러스터에서 북촌의 정서를 드러내는 오브제로 만들기로 했다.

집을 ‘송현재’로 바꾸는 설계를 맡은 허선(어반아크)은 가장 먼저 가족의 생활을 위한 집의 구조를 주변의 국제갤러리 건물과 연결되는 구조로 바꿔야 했다. 동시에 리모델링 후 새롭게 담아야 하는 서점, 뷰잉룸(Viewing room), 라운지 겸 사무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를 위해 설계자는 새로운 기능이 사적인 집과 달리 외부인이 찾아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바깥 공간과 적당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기능과 바깥 공간 사이에 완충 공간을 넣고 새로운 기능의 특징에 맞춰 완충의 농도(濃度)를 조절했다.
구체적으로 서쪽에 배치된 서점은 항상 열려 있다. 그래서 서점 앞 완충 공간도 길을 걷는 사람이 바로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서점과 완충 공간 사이에는 통유리만 설치돼 있어서 시각적으로도 긴밀하다. 반면, 북쪽에 배치된 뷰잉룸은 필요에 따라 개방된다. 그래서 뷰잉룸의 완충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벽은 창에 설치하는 블라인드처럼 시야를 적절히 가린다. 바깥에서도 뷰잉룸의 일부가 보이지만 들어가려면 후문을 통해야 한다. 남동쪽 모서리에 배치된 라운지 겸 사무실은 새로운 기능 중 가장 내밀하다. 그래서 사무실에 딸린 완충 공간은 키보다 높은 담과 작은 정원을 통해 바깥의 소란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돼 있다.

농도가 다른 완충 공간을 통해 서로 다른 기능을 담아낼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작은 면적은 그 자체로 해결하기 힘들다. 집의 기존 연면적이 9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선은 각 기능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각각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통 한옥의 특징 중 하나인데, 이때 문과 마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옥에서 문은 공간을 나누어 서로를 구분하지만 단절하지는 않는다. 마당은 집안의 영역이 확장될 때 이를 받아주는 공간이다.
송현재에서도 문은 서로 다른 기능과 마당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설계자는 각기 다른 기능의 특징을 고려해 공간의 개방감과 밝기를 문을 통해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먼저 서점과 마당 사이에는 전통 창살을 재해석한 창틀을 두 개의 문으로 나누어 설치했다. 두 공간 간의 관계와 서점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은 개방도가 다른 두 문을 통해 조절된다. 일종의 전시 시설인 뷰잉룸에서는 작품 감상의 몰입도를 위해 창이 없는 하얀색 벽을 안쪽에 추가했다. 뷰잉룸과 마당 간의 관계는 세 개의 문을 통해 완전히 개방되는 상태를 포함해 네 단계로 나뉜다.

반면, 라운지 겸 사무실과 마당 사이에는 구획 없이 크게 제작된 유리문만 설치돼 있다. 유리문을 완전히 열면 두 공간 사이에는 두 개의 기둥만 남는다. 사실 이 둘 간의 관계에서 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바닥이다. 라운지의 바닥은 유리문이 설치된 부분에서 마당으로 더 나와 있다. 그래서 마당의 바닥은 두 단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한옥에서 마당은 같은 높이로 조성된다. 하지만 송현재의 마당이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마당의 역할이 아니라 라운지의 역할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송현재(誦絃齋)’의 뜻은 “거문고를 연주하며 시를 암송하는 집”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이런 행위를 했던 곳은 대청(大廳)과 누(樓)마루였다. 집의 이름에 집을 짓는 자가 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담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송현재의 근원은 대청과 누마루에 있는지도 모른다.

라운지와 마당 사이에 설치된 유리문이 완전히 열리면 이 영역은 대청(大廳)이 된다. 전통 한옥에서 대청은 주변 공간을 매개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를 담는다. 대청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방과 방 사이, 집 안과 밖 사이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때 툇간이 각 영역과 대청을 연결한다. 마당으로 나온 송현재의 라운지 바닥은 라운지의 영역을 건물 밖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서점과 뷰잉룸 나아가 집 바깥 영역을 라운지로 연결하는 툇마루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의심받는 상식은 마당의 형태와 대문의 방향이다. 라운지의 툇마루가 뷰잉룸과 후문으로 이어지면서 마당의 한쪽 모서리가 곡선으로 변했고 서점을 통해 인접한 K1과 연결될 수 있도록 대문의 방향이 꺾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ㅁ자 형태의 마당과 정면을 향한 대문도 통념일 뿐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당을 통해 확장된 서로 다른 기능이 송현재의 안쪽 영역을 벗어나 주변의 국제갤러리 건물들로 스며들 수 있다면 마당의 형태와 대문의 방향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작은 규모의 송현재에서 각기 다른 기능이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빌려주고 빌릴 수 있어야 한다. 국제갤러리 클러스터에서 송현재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송현재가 국제갤러리의 각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려면 그 자체로 완전하기보다는 다른 건물과 어울렸을 때 완전할 수 있도록 불완전해야 한다. 건축가 허선이 말하는 ‘Perfectly Imperfec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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