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미래지향의 한·일 관계는 가능할까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3-03-20 00:31:28 수정 : 2023-03-20 00:35: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싸고
산케이신문도 ‘日의 완승’ 평가
국교이후 최악 관계 피했지만
책임 외면·요구만 하는 日 문제

지난해 윤석열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일관계 개선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할 무렵 만난 한 외교 관계자는 “외교에 일방적인 승리는 없다”고 말했다. 받을 건 받고,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한다는 일반론적 이야기이긴 했다. 하지만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라는 일본을 상대해야 하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성과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던지라 인상 깊었다.

그즈음 당시 당선자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보낸 한·일정책협의단의 단장 정진석 의원(국민의힘)은 ‘고장난명’(孤掌難鳴: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로 혼자만의 힘으로는 일을 이루기 어려움을 의미)을 강조했다.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응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촉구한 것이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지난 16일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려 미래지향의 새로운 한·일 관계를 선언하는 걸 보면서 약 1년 전 들었던 이 말들을 떠올렸다. 양국 간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의 해법을 둘러싼 협상이 진행되면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어떻게 구현되었는가에 대한 나름의 평가이기도 하다.

외교에 일방적 승리는 없다는 일반론은 이번엔 예외인 듯싶다. 적어도 일본 내 평가는 그래 보인다.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해법을 발표한 지난 6일 산케이신문은 자민당 참의원(상원)의 한 중진 의원이 “일본의 완승이다.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협상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일본 정치권에서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비단 이 의원만의 것은 아닌 성싶다. 고장난명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산케이가 전한 일본 국회의원의 말처럼 일본이 양보한 건 찾기가 어려운데 미래지향의 한·일 관계라는 결과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누차 요구한 성의 있는 호응의 핵심은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사과와 반성, 배상 판결금 지급에 대한 피고기업(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의 기여였다. 사과에 대해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과거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 표명으로 얼버무렸다. 기시다 총리가 직접 사과나 반성을 입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현재로선 기부 등을 통한 피고기업의 참여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마무리됐다는 주장을 한 치도 꺾지 않고 있다.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 등 안보협력 강화,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 해제가 주요한 성과로 꼽히지만 일본의 양보 혹은 호응이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이건 우리가 원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의 필요이기도 하다. 수출규제의 경우엔 일본 입장에서도 악수(惡手)이기 때문에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내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안보협력 강화 역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현실적 위협인 일본으로선 바라던 바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규정하던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어색하게 됐다. 우리 정부는 그 자리에 미래지향의 한·일 관계라는 말을 선명하게 새기고 싶어 한다. 이런 지향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자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관광교류는 반일, 혐한을 뛰어넘은 서로에 대한 호의를 양국 국민이 갖고 있음을 증명하며 한·일 관계의 어떤 미래를 바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바람을 우리 정부나 일본 정부가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못 하겠다. 일방적 가해와 피해에서 비롯된 아픔과 그 책임에 대한 요구에 제대로 호응하지 못한 채 새로운 미래는 가능한 것인가.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고 비판적 여론까지 감수하며 행동에 나선 한국 정부를 두고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압박을 더 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일본 정부는 양국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강구열 도쿄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