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수학 잘해야 대입서 유리”… 갈수록 거세지는 ‘문과침공’ [뉴스 인사이드-문·이과 통합 수능 논란]

관련이슈 대학 수학능력 시험(수능)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01-14 11:00:00 수정 : 2023-01-15 14:04:2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융합형 인재 양성 취지로 제도 도입
수학 선택과목 따라 점수 편차 커져
수험생 1등급 미적분·기하 응시 많아

인문계열 학과 지원자 이과생 비율
서울 주요대 정시서 70~80% 달해

“교차지원 변수 등 수능 불확실성 커”
상위권에선 수시 쏠림 현상 나타나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취업시장에서 인문계열 출신이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상을 자조적으로 사용하던 단어가 최근 대학 입시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문·이과 통합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한 뒤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고 과학탐구를 응시한 ‘사실상 이과’ 수험생이 문과 수험생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교차지원을 통해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 입학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과 수험생이 문과 수험생을 밀어내고 인문계열 학과를 차지하는 현상을 빗대 ‘문과침공’이란 말까지 나왔다. 통합수능이 취지와 달리 결국 ’수학을 잘해야’ 대입에서 유리한 구조를 만들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학 잘해야 유리한 수능

13일 교육부에 따르면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은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2015년 교육과정부터 폐지됐다. 이에 따라 2022학년도부터 수능도 문·이과 통합으로 치러졌다. 과거 수능 수학은 문과(수학 나형)와 이과(수학 가형)가 다른 문제를 풀었지만, 통합수능은 공통과목을 같이 풀고 선택과목(확률과통계, 미적분, 기하) 중 1개를 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통합’이란 말이 무색하게 현장에서는 여전히 문·이과 구분이 남아있다. 대학 자연계열 학과 중 수학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 성적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 통상 확률과통계, 사회탐구를 선택한 수험생은 문과, 미적분·기하와 과학탐구를 선택한 학생은 이과로 본다.

문제는 과목 선택에 따른 점수 차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통합수능 도입 후 선택과목 점수를 조정하고 있다. A과목 응시자의 공통과목 평균점수가 B과목 응시자보다 높으면 같은 원점수를 받더라도 A과목 응시자의 표준점수가 더 높아지는 식이다. 미적분·기하를 택한 이과 수험생은 문과 수험생보다 수학에 익숙하다 보니 공통과목 평균점수가 더 높다. 같은 만점이더라도 확률과통계 만점자보다 미적분 만점자의 점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종로학원 분석 결과 올해 미적분 만점자가 받는 표준점수 최고점은 145점, 확률과통계는 142점으로 추정됐다.

기존 수능은 문·이과 수학 등급이 각각 산정됐으나 통합수능은 모든 응시자가 함께 등급을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학 1등급 수험생의 대부분은 미적분·기하 응시자다. 서울시교육청 서울중등진학연구회가 87개 고등학교 2만6000명의 2023학년도 수능 성적을 분석한 결과, 수학 1등급 중 확률과통계 응시자 비율은 6.55%에 불과했다. 문과 학생은 과거 수능보다 수학 1등급을 받기가 훨씬 어려워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2년 연속 수능 수학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대입에서 수학 영향력이 커졌다. 2023학년도 수능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국어 134점, 수학 145점이다. 수학 만점자가 국어 만점자보다 11점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수학을 못 하면 대학에 가기 어렵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문과침공 가속

현재 대학 자연계열 학과는 문과 수험생의 교차지원이 어렵지만, 인문계열 학과는 과목 기준이 없어 이과 수험생의 교차지원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통합 수능 첫해인 지난해에는 이과 상위권 수험생들이 확률과통계 응시자보다 수학에서 유리한 점을 이용해 상경계열 등 주로 문과생이 가던 학과에 대거 지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지난해 서울 주요대 정시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분석한 결과 이과생이 교차지원한 비율은 서강대 80.3%, 서울시립대 80%, 한양대 74.5%, 연세대 69.6% 등이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시 선발 인원은 전체 인원의 61.5%였지만, 종로학원은 실제 서울대 합격자의 79.2%가 이과생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올해에도 문과침공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종로학원이 최근 수험생 4908명을 조사한 결과 수능 상위권 이과 수험생 중 문과로 교차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비율은 27.5%로, 지난해(19.0%)보다 많았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이과생 사이에선 교차지원하면 학교 ‘급’이 달라진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학교 이름만 보고 인문계열로 진학했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휴학하거나 또 수능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아 문제”라고 말했다.

◆통합수능이 불확실성 키워

일각에서는 미적분·기하가 확률과통계보다 까다로운 만큼 미적분·기하 응시자가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입시업계에서는 선택과목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하고, 수학을 잘 봐야 대입에서 유리한 구조가 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인문계열 학과에 진학하려는 문과 최상위권 학생 중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미적분을 응시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확률과통계 응시자는 2021년 6월 모의평가 당시 55.4%였으나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48.2%까지 줄었다. 반면 미적분 응시자는 같은 기간 37.1%에서 45.4%로 늘었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미적분을 잘해야 인문계열 학과 진학도 유리한 것은 난센스”라며 “통합수능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합수능이 수능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는 비판도 있다. 입시업계에서는 특히 선택과목 점수 조정 방식에 대한 의문이 많다.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선택과목별 최고점 점수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위권에선 교차지원 변수 등으로 수능을 못 믿겠다는 기조가 퍼져 수시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올해 전국 193개 일반대 정시 경쟁률은 4.65대 1로 지난해(4.55대 1)보다 올랐지만, 서울 소재 대학의 경쟁률은 6.10대 1에서 5.81대 1로 떨어지는 등 의대를 포함한 상위권 대학 경쟁률은 일제히 내려갔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상위권 학생 사이에서는 수능은 선택과목 점수 조정, 교차지원 변수가 커 불안하다는 인식이 많아 수시 선호도가 늘고 있다”며 “수능이 불확실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문제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 배부일인 2022년 12월9일 충북 청주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이주호 “입시 불리함 없도록 수능 난이도 개선”

 

‘문과침공’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교육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13일 교육부에 따르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학 관계자들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부작용, 보완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한양대·성균관대·서울시립대·경희대 등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이 높은 서울 12개 대학 입학처장이 참석했다.

 

이 부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최근 문·이과 통합수능을 둘러싸고 우려가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다”며 “수능 과목으로 입시의 불리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능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대학, 대교협과 소통해 개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간담회에 참석한 대학 관계자들 역시 통합수능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문계열로 교차지원해 합격한 이과생들이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 휴학·자퇴하면 결국 학교에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대학은 각 대학의 대입 전형 운영 결과와 전형별 합격 학생 데이터 등을 분석한 뒤 바람직한 대입 전형 방향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교육부는 입시제도를 4년 전에 공개하고 있어 당장 수능 체제를 대폭 손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능의 큰 틀은 내년에 확정할 2028학년도 입시제도부터 바꿀 수 있다. 이 때문에 통합수능의 대안은 우선 문과생의 의대지원을 열어주는 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지난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문과침공 현상에 대한 대책을 묻는 말에 “대입 전형에서 문과생이 불리한 부분은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대학 측의 개선 노력을 유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단 불합리하다고 지적되는 대입 전형부터 손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