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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삼나무로 지은 학교·도서관… 마을 전체가 ‘탄소저장고’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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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09 06:00:00 수정 : 2022-11-11 11: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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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정부 주도로 목재 자급률 높인다

자급률 높인 비결은
2010년 산림연령 노후화 심각하자
공공건축에 국산목재 사용 의무화
2002년 18%던 자급률 40% 넘어서

‘삼나무 천국’ 미야자키현
어느 도시든 ‘삼나무 건축물’ 명물
31년째 생산량 1위…연구·개발 활발
목재산업 활황… 지역경제 살리기도

일상 속 환경교육
아야정립중학교 학생·주민 등 합심해
3년간 1만5000그루 묘목 심고 관리
산림순환 몸소 체험 등 ‘탈탄소’ 실천

한국이 산림·목재 정책을 세울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국가는 단연 일본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국토의 67%가 산림인 일본은 한국보다 수십년 앞서 녹화사업을 진행했다. 그에 따라 탄소 흡수량이 감소하는 ‘숲의 노령화’ 문제도 먼저 겪었고 해결책을 모색한 경험이 있다. 일본의 목재 자급률은 2000년대 초반 18%대까지 떨어졌으나, 2020년엔 40%를 넘겨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해답을 알아 보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지역목재로 지은 아야정립중학교.

◆조상이 물려준 나무로 학교를 짓다

지난달 26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의 중서부에 위치한 아야정(綾町)의 아야정립중학교. 2014년 새로 올린 2층짜리 학교 본관은 한눈에 봐도 구조가 나무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삼나무 냄새가 풍긴다. 바닥부터 벽, 미닫이문, 계단, 천장의 보 등이 모두 나무다.

일본 건축기준법상 다중이용시설은 안전 문제로 일정 규모 이상 목조건물로 지을 수 없기 때문에, ㄷ자로 연결된 본관 3개동 중 앞, 뒤 두 동은 목구조로 짓고, 두 동을 잇는 가운데 동은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만들었다.

 

후지모토 아쓰시 교장과 학교를 돌아보는 동안 아이들이 밝게 인사하며 지나간다. 후지모토 교장은 “나무로 학교를 지은 뒤 아이들이 차분해지고 밝아졌다. 전에는 비행청소년도 제법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면서 “바뀐 학교 환경과 지속가능발전 교육에 힘쓴 결과가 학교 분위기를 바꾸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자랑은 학교를 짓는 데 사용한 목재를 모두 이 지역 산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차로 10분가량 떨어진 정유림에서 삼나무와 편백나무 480㎥를 수확해 사용했다. 벌채한 산은 학생과 주민, 기업이 힘을 합쳐 복원했다. 3년간 1만5000그루의 묘목이 심어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 학교는 산림 순환과 함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지속가능발전’(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도 끊임없이 강조한다. 후배들은 매년 선배들이 나무를 심은 곳에 견학을 간다. 아이들은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높이와 둘레를 측정하고, 선생님은 나무가 자랄 때마다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가르친다.

벌채 후 1만5000그루의 묘목을 심고 매년 가꾸는 모습.

이러한 교육방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 전 이 학교를 방문해 격려한 일도 있다.

후지모토 교장은 “아야정은 예로부터 산림자원이 풍부했으며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있다”면서 “조상들이 남긴 자산을 사용해 학교를 짓고 학생들은 다시 후대를 위해 산을 가꾸면서 이러한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청·도서관·기차역… 지역 살리는 목재건축

아야정립중학교 외에도 미야자키현은 각 지자체별로 지역의 나무로 짓거나 장식한 수많은 건축물이 있다.

 

니치난시에 위치한 사계절의 숲 어린이원은 대기 원아가 줄을 잇는 인기 유치원이다. 목구조로 팔각모양의 돔 지붕을 올린 유치원 건물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닥과 벽은 물론 책상, 의자, 크고 작은 장난감 등을 모두 이 지역 삼나무로 만들었다.

사계절의 숲 어린이원.
동화 속 같은 니치난 육아지원센터.

나카야마 미키 원장은 “삼나무는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향이 은은하기 때문에 어린이 생활환경의 주요 소재가 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미야코노조시의 시립도서관은 지역이 쇠퇴하면서 문을 닫은 백화점을 삼나무로 리모델링해 탈바꿈한 곳이다. 웅장하고 개방적인 느낌의 공공도서관은 나무를 사용해 따뜻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도서관이 랜드마크가 되면서 주변에 작은 복합몰, 카페 등이 생겨났고, 지역 상권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미야코노조시 시립도서관.

미야자키현 북부 휴가시의 시청사는 이곳 시민들의 자랑이다. 네모반듯한 4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내외장을 꾸미는 데 지역 삼나무와 편백나무 900그루가 사용됐다. 바닷가 근처이기 때문에 쓰나미에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넉넉한 휴식공간 겸 대피공간을 만들었으며, 화재 시 대피로가 먼 곳의 벽과 천장은 방염처리한 목재를 사용했다.

 

휴가역사는 입구의 천장과 대기실 모두 고급 삼나무로 꾸며졌다. 하이라이트는 플랫폼 지붕이다. 잘 휘어지는 삼나무의 특징을 살려 곡선모양 보를 멋스럽게 올렸다. 미야자키현에서는 원시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에서 쭉쭉 뻗은 수박아이스크림 모양의 나무를 볼 수 있는데 삼나무(스기)다. 니치난시의 옛 지명인 오비에서 400년 전부터 삼나무를 심어 경제림으로 이용하면서 미야자키 삼나무 조림의 역사가 시작됐다.

삼나무 900그루 사용한 휴가시청사.

삼나무 생산량 전국 1위를 31년째 유지하고 있는 미야자키현은 삼나무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앞선다. 한국의 산림과학원과 비슷한 기관이 임업기술센터와 목재이용기술센터로 나눠져 있다. 임업기술센터는 삼나무 종자와 육성, 수확 관련 연구에 집중한다. 삼나무는 원래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임업기술센터는 최근 성장 속도를 더 높여 탄소흡수를 더욱 왕성하게 하는 종자를 연구 중이다. 목재이용기술센터의 연구도 탄소중립과 방향이 같다.

후지모토 히데히로 미야자키목재이용기술센터 소장은 “나무를 쓰는 것은 산림을 순환시켜 탄소흡수량을 많아지게 하는 동시에 목재 그 자체로 탄소를 저장하므로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행위”라며 “더 많이 이용하고, 버려지는 부분 없이 이용하도록 연구하는 것이 탄소중립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휴가시 역사.

◆정부가 끌어올린 국산 목재 사용

미야자키가 원래부터 이렇게 목재친화적인 곳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된 건축물들은 모두 10년 이내에 만들어지거나 리모델링된 곳들이다. 10년 사이 목재를 사용한 건축물이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정부가 2010년 제정한 ‘공공건축물 등에서의 목재의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산림 노령화에 따른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벌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고, 값싼 수입목재가 국산 목재를 대체하면서 2002년 목재자급률이 18.8%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산림 연령을 낮추기 위해 벌채를 늘리고, 공공건축물을 짓거나 리모델링할 때 의무적으로 국산 목재를 사용하도록 했다. 더불어 국민의 눈에 띌 기회가 많은 부분과 내장을 목질화하도록 했다. 나무를 그냥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 홍보해 민간으로 확산하려는 계산이었다.

효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전국 공공건축물에서 나무를 사용한 건물의 비율은 2010년 8.3%에서 2020년 13.9%까지 늘었고, 특히 저층 공공건축물의 경우 29.7%가 국산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목재 자급률은 2010년 20%대 초반에서 2020년 41.8%로 뛰었다. 40%를 넘은 것은 1972년 이후 48년 만에 처음이다.

국산 목재 노출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조립식 목조건물용 프리컷(조립하기 쉽게 가공하는 것) 공장을 운영하는 임업 조합 럼버미야자키는 “일본의 목재 산업은 활황이다. 코로나19로 주택경기가 침체되면서 목구조로 집을 지으려는 민간 수요는 줄었지만 목재가 환영받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요양원, 유치원, 학교 등 비주택 시설 건축을 위한 의뢰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목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임업으로도 이어졌다. 일본에는 최근 ‘임업여자’(林業女子)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노동 강도가 높고 위험해 예전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임업에 뛰어든 여성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온라인에서 임업여자를 한자로 검색하면,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는 여성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민 대상 목재·임업 교육을 진행하는 미야자키 문화본점의 이시다 다쓰야 대표는 “대학생을 위해 한 달간 마을에 거주하며 임업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지원자 대부분이 여학생이어서 놀랐다”면서 “체험한 학생들이 다시 오거나 졸업 후 정착하려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공공건축물 국산 목재 이용 법률을 개정했다. ‘탈탄소사회 실현에 이바지하기 위한 건축물 등에서의 목재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민간건축물에도 국산 나무를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각 지자체는 관련 조례를 만들어 지역 목재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미야자키현 환경삼림부 시라이시 구니히코 주사는 “지역 목재를 사용하는 시공사에 보조금을 주면서 해당 건축물의 지역 목재 사용을 홍보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연 1회 시민 대상으로 목재시장과 목조 건축물 버스투어를 개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야자키현은 목조 건축 활성화를 위해 목구조 설계사 육성 교육도 진행한다.

한국은 이러한 일본의 성공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지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일본과 달리 고급 목재로 이용 가능한 나무가 아직 적고, 임업 연구·개발과 관련한 인력도 부족하다. 정부는 우선 시범 사례를 만들기 위해 올 초 처음으로 ‘목재친화도시’ 5곳( 강원 춘천·경북 봉화·대전 유성·전남 강진·전북 무주)을 선정했다. 선정지에는 4년간 총 50억원이 지원되며 지역 목재를 사용해 목재 특화거리, 목재산업 촉진, 교육 강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나무, 써야 할까, 쓰지 말아야 할까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106508492

 

‘산림 이용=환경 파괴’ 인식 개선… 환경·경제 두토끼 잡다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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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층 목조건물’ 콘크리트 빌딩숲 나무가 되다 [탄소중립 시대,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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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글·사진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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