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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도 “기업 부담” 반발하는데… 걱정되는 금융위 ‘ISSB 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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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1 06:00:00 수정 : 2022-10-11 16: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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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공시에 국제사회 우려… 한국은?

IFRS 지속가능 공시기준 의견 수렴
700여 주체 산업별 특성 모호 지적
中, 국가별 규정 포용적 접근 요구
日 철강협 “기업 일률적 평가 난해”
주요국 반발… ISSB, 최종안 연기

금융위, ISSB안 그대로 수용 입장
기존 산업·중소기업 목소리는 외면
금융·대기업 입장 반영할 가능성 커
민간단체 8곳과 ESG 전문가 35인
19일 포럼 개최… 자구책 마련에 나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정 추진 중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의 국제 표준에 대해 전 세계적인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물론 기업과 협회, 심지어는 국제기구까지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된 방향을 요구하는 셈이다. ESG 공시를 통한 체제 전환이라는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과정에서 개발도상국과 중소기업 등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지목된다. 그만큼 국가·기업별로 새로운 체제의 도입 준비 과정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별도 기준 마련 준비 과정이 이뤄져 있지 않은 채 ISSB의 기준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SG 공시 표준 초안에 반발하는 국가들

 

10일 ISSB 등에 따르면 ISSB가 제정을 추진 중인 ESG 공시를 위한 국제 표준, 즉 ‘국제회계기준(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의 초안에 대한 글로벌 의견 수렴이 진행된 결과 700여 주체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IFRS는 ESG 글로벌 공시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ISSB를 구성했고, 이를 통해 지난 3월 초안을 공개한 바 있다. 초안은 지난 7월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말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었다.

 

의견을 낸 700여 주체에는 각국 정부·당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을 비롯해 HSBC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아문디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 기업이나 특정 직군이 모인 산업협회 및 이익단체, 심지어는 유엔 등 국제기구까지 포함됐다.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을 중심으로 의견 표명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넘어 폭넓은 의견 개진이 진행된 셈이다. 전반적으로는 방향성에 동의하면서도, 국가별·산업별 특성이 구분되지 않았고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중국 재무성은 개도국이나 국가별 규정에 대해 보다 포용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이미 의무화를 예고한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과 유럽연합(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의 기준을 수용해 글로벌 표준으로서 비교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기업·국가 입장에서 너무 많은 국제 기준을 준비하느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철강협회에서 적극 의견을 표명했다. 탄소 배출이 많이 이뤄지는 산업 특성상 탄소 배출·탄소 상쇄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적이 있었다. 가령 탄소 상쇄 기술은 현재 고도화 중이고, 기업별로 탄소 상쇄의 정도와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중국과 일본 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자국의 입장을 적극 전달했다. 태국은 ESG 공시를 위해 개도국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뿐 아니라 자금조달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질의했다. 말레이시아는 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구했고, 호주는 글로벌 표준 시행에 대한 결정권이 자국 정부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엔은 기업 가치에 대한 ISSB의 해석이 좁아 지속가능성을 제대로 담보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전했다.

◆최종안, 결국 올해 말에서 내년으로 연기

 

경제 규모가 큰 주요국의 반발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선진국의 기업들뿐 아니라 국제기구들까지 우려를 표함에 따라 ISSB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유럽 등 선진국 위주로 룰을 제정해 개도국을 견제한다는 비판이 더욱 비등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각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글로벌 표준으로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ISSB는 지난 7월까지 글로벌 의견을 수렴한 내용과 이에 대한 초기 분석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우선 ESG 글로벌 공시 표준 최종안의 공표 시점은 올해 말에서 ‘가능한 한 내년 중 빠른 시점(as early as possible in 2023)’으로 연기됐다.

 

초안에 대한 개정 방향성도 나왔다. 우선, 개도국이나 기존산업에 대한 우려가 컸던 부분을 의식해 ‘basic(기초)’과 ‘advanced(심화)’로 구분할 것으로 보인다. 준비가 양호한 기업에 대해서는 basic을, 그렇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advanced를 그에 맞게, 시기도 다르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새 ESG 체제에 대해 중소기업일수록 관련 데이터 수집 및 관련 시스템 구현, 관련 전문 인력 확보 등에 대한 어려움이 크다는 점도 인식한 만큼 이에 대한 대안·지원책도 마련될 전망이다.

 

◆100% 수용 여전히 문제없다는 금융위

 

상황이 이러하지만, ESG 공시에 대한 국내 업무를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는 초안을 100% 수용하겠다는 기존 입장에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인다.

 

국내 기업과 학계를 중심으로 금융위가 ISSB의 초안을 100% 수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데에는 과거에도 그랬던 적이 있고, 현재에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했다. 당시 정부는 △전 세계적인 회계기준 단일화 추세 대응 △회계투명성 제고 △글로벌 기업의 회계장부 이중 작성 부담 경감 등을 명분으로 IFRS를 제정한 유럽연합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빨리 이를 수용했다. 단순 가이드라인이 아닌 제재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재무정보 공시가 이에 미달한다고 판단할 경우, 금융당국의 처벌이 뒤따랐다.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 중심의 회계기준을 전면 도입하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타격이 속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 현장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국제회계투명성 순위가 올라갈 때마다 ‘자화자찬’을 되풀이해왔다. 정부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한국의 순위가 2020년 63위에서 지난해 37위(중위권)로 상승한 것에 반색했지만, 올해 다시 53위로 급락한 뒤 관련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4대 회계법인의 지난해 매출이 3조원을 돌파하는 등 회계법인들의 수입은 지속 상승했고, 그만큼 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됐다.

 

금융위원회. 뉴스1

ISSB가 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도 정부·기업을 막론하고 폭넓은 의견 개진이 이뤄진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위가 중간에서 취합하겠다고 공지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취합하지 않고 기업들의 의견 표명을 독려했던 만큼, 금융위가 기업들의 독립적인 의견 표명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외부감사법에 따라 회계와 관련한 정부 업무만 수탁하게 돼 있는 한국회계기준원이 별다른 기준 없이 기후·환경, 지속가능성에 대한 영역으로 업무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위법성이 제기된다. 금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위법을 자인한 바 있다.

 

<세계일보 7월 25일자 1·5면 보도 참조>

 

◆금융위의 ‘ISSB 바라기’ 계속될까

 

이 때문에 금융위가 이러한 글로벌 분위기 속에서도 기업들의 상황을 도외시한 채 ‘새롭고 강력한 금융 제재의 칼날’을 가다듬는 데에만 열을 올릴지 관심이 쏠린다. 우선, 금융위의 입장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은 이달 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서울에서 열리는 ISSB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에마뉘엘 파베르 ISSB 의장이 방한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보면, 파베르 의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의 ESG 공시와 관련한 노력을 치하하고 ISSB의 표준 도입을 독려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행사에는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 SK, LG 등 기업 관계자들까지 참석할 예정이다. 기존에 그랬던 것처럼 제조업 등 기존산업과 중소기업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금융업계와 대기업의 입장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유다.

 

이 같은 어려운 국내 상황 속에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이 진행 중이다. 앞서 ISSB 초안에 대한 글로벌 의견 수렴 과정에서 금융위가 민간의 의견 표명을 막는다는 우려가 커지는 과정에서 마감 시한(7월 말)이 임박해 민간 차원에서 공동으로 의견 전달이 이뤄졌다. 당시 민간 공동 의견서에는 △한국표준협회 △한국금융투자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한국생산성본부 △코스닥협회 △한국정부회계학회 등 8개 민간단체를 비롯해 총 35인의 ESG 전문가가 참여했다.

 

민간 차원의 의견 표명을 이끌었던 G7 코리아 ESG위원회는 오는 2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 ‘ISSB 초안에 대한 주요국 의견 분석 및 국내 도입 시사점’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ISSB 표준의 전면도입에 대한 우려를 환기하는 한편,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폭넓게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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