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럽의 폭염은 500년 만에 최악의 가뭄 발생으로까지 이어져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에서는 연일 낮 최고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으로 농작물 수확량뿐만 아니라 ‘유럽의 생명수’로 불리는 라인강과 다뉴브강, 센강의 수위까지 급격히 떨어트렸으며, 건조한 날씨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올여름 내내 크고 작은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스페인에서 올해 들어 지금까지 발생한 산불만 200건에 육박하며, 총면적 27만5000㏊가 전소됐다.
폭염 후에는 이상기후로 인한 폭풍우까지 몰아치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각) AP 통신 등에 따르면 당시 지중해에 있는 프랑스 유명 휴양지 코르스섬에 최고 시속 224㎞의 강풍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쳐 사상자가 생겼다.
최근 몇달간 이어진 유럽의 폭염과 한국의 기록적인 폭우 등은 기후위기가 현재 매우 빈번히 사회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이 폭등했다. 대표적인 밀 수출국인 두 나라의 전쟁으로 인한 곡물 부족 현상을 예견한 인도 정부는 그만큼 공급을 하겠다고 발빠르게 선언했지만, 지난 3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밀 수확량이 대폭 감소하면서 돌연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기후변화로 곡물 수확량이 감소하자 자국 식량 공급을 우선시한 결과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인도까지 곡물을 수출할 수 없게 되자, 이들 국가에서 곡물을 수입하던 나라들의 식량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밀 수입량의 80% 이상을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던 레바논과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는 식량 수급에 즉각적인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텔레그램 멘션을 통해 ‘식량 무기화’를 시사해 얼어붙은 곡물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세계 밀 수출 1위 국가인 러시아는 현재 자국의 곡물 수출입업자에게 대출을 거부하고 있는 서방의 일부 은행과 유럽연합(EU), 미국의 제재가 지속된다면 식량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위협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국 내 밀 소비량의 6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튀르키예(터키)는 지난 3월 식량 물가가 70% 폭등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뿐 아니라 유럽의 일부국까지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전체 밀 수입량의 80%를 의존하는 이집트도 비상이고, 특히 예멘, 레바논, 수단, 에티오피아 등 가난한 국가의 국민은 기아선상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도 지속적인 식량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현재 유엔 식량 가격지수는 1960년대 도입 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국제 정세의 불안과 갈등에 이어 기후변화까지 더해지면서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쟁과 폭염, 가뭄, 이상기온 등으로 발생한 식량 가격의 폭등은 아프리카나 중동 등의 가난한 국가에서 정세와 안보에 더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빈곤과 식량난을 중심으로 튀니지에서 촉발돼 아랍권 전체로 번져간 2010년 ‘아랍의 봄’이 떠오르는 이유다.
앞서 2019년 11월 세계적인 회계 컨설팅 기업인 프라이스워터스쿠퍼스(PwC) 뉴질랜드가 작성한 ‘아시아 식량 도전 보고서’(PwC New Zealand, Rabobank, Temasek, The Asia Food Challenge Report: Harvesting the Future, 2019. 11)는 “아시아는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조사 대상 국가와 지역은 중국과 인도, 서아시아, 일본, 한국이었는데,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식량 수입 의존도를 지적하는 한편에 한국 역시 식량 안보가 불안정한 국가로 꼽았다.
보고서의 분석처럼 현재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데, 밀은 1%마저 깨진 상황이다. 곡물 중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최근 발생한 급격한 호우나 가뭄, 또는 산불 발생 등 기후위기로 인한 비상 상황이 생겼을 시 식량 수급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에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들 역시 기후위기로 수확량이 감소하게 되면 자국 우선 방침에 따라 수출을 줄일 게 뻔하다.
인도로부터 수입하는 밀의 양은 적지만 한국의 곡물 자급률이 2020년 기준 20.2%에 그치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중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앞으로 식량 안보의 확립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불안정한 국제 정세뿐 아니라 부쩍 잦아지는 이상기후는 식량이 무기화될 위험을 지속해서 발생시키고 있다. 기후위기와 식량 안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체계적인 환경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먹을거리의 안정적인 공급은 식량 주권의 문제로 이에 대한 대비는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해나가야 한다.

김현율 UN SDGs 협회 연구원 unsdgs.hyunyul@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 협의 지위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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