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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도 질환… 재활 지원 늘려야 [현장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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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10 06:00:00 수정 : 2022-05-09 18: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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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이 너무 약해서 또 하는 거 아니야?’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강한 처벌이 해답이라 생각했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남부지법에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된 38명의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6명만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32명 중 7명은 동종 범죄로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는데도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아니, 형량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니까.” 수사 현장의 목소리도 비슷했다. 한 경찰관은 “최근에 검거한 한 마약사범이 ‘형사님, 1년이 아니라 3년 정도 실형을 산다면 마약사범 중 절반은 사라질 겁니다’라고 말하더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희진 사회부 기자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마약은 불법이지만, 중독은 질환이다. 마약중독자들에게 마냥 ‘처벌 강화’만 외칠 수 없는 이유다. 구치소에서 외려 ‘마약친구’를 만들어 나온다는 얘기도 충격적이었다.

검찰과 법원은 마약사범에게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미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초범이고, 판매나 알선이 아닌 투약만 한 이들에겐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선처 이후였다. 단약(약을 끊음)을 돕는 기관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 단 한 곳뿐이고, 이마저도 인력난과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마약중독 전문치료병원으로 지정된 21곳 중 19곳은 제대로 운영조차 되지 않았다. 박진실 변호사는 “의뢰인 중 1명이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치료병원 역할을 하고 있는 인천의 한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려 했더니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국가가 회복할 기회를 줬는데, 실제로는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셈이다.

이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에선 매년 2만명 가까운 마약사범이 검거되지만 마퇴본이 정부로부터 1년에 받는 돈은 33억원뿐이다. 국내 21개 마약중독 전문치료병원에 지원되는 예산도 4억원에 불과하다. 돈을 들여야 신경 쓰는 사람이 늘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말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27세에 필로폰을 처음 접한 뒤 20여년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 중인 김영호(48)씨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지난달 경기다르크(DARC) 약물중독재활센터에서 만난 김씨는 인터뷰 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기자님, 열악한 치료 체계에 대해 꼭 좀 알려주세요. 주위에서 필로폰을 끊은 사람을 못 봐 체념하다시피 했는데 여기 와서야 많은 걸 느끼고 있어요. 이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치료 체계가 더 잘 갖춰져 있었다면 김씨도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까.


이희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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