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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처럼 당한다”…‘세계 6위’ 한국군, 북한 이길 수 있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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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16 06:00:00 수정 : 2022-04-17 10: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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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K-1 전차들이 훈련을 위해 도로를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재인정부가 종합군사력 6위 군사강국, 역대 정부보다 국방력을 튼튼히 한 정부라 자부한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에 올린 방위산업 육성 관련 글의 일부다. 정부의 정책홍보 성격을 지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도 지난 1월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 발표를 인용해 한국은 6위, 북한은 28위라고 밝혔다.

 

군사력 순위만 놓고 보면,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이 북한군을 쉽게 제압한다는 인식을 갖기 쉽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세계 6위 군사력’이라는 허울에 안주할 상황이 아니다. 한국군도 러시아군처럼 북한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받을 위험이 적지 않다.

 

◆첨단 무기보다 신뢰성 높은 무기가 더 낫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이자 핵과 극초음속미사일,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가 즐비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당해내지 못하는 모습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각종 열병식과 기자회견에서 자랑했던 첨단 무기는 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 빈자리는 옛소련 시절 무기들이 채웠다. 러시아는 T-72 전차, BM-21 다연장로켓, BMP-2 보병전투차, SU-25 공격기, Buk-1 지대공미사일 등을 사용했다. 무인전차로 유명한 T-14는 물론 T-90 전차, SU-57 스텔스 전투기 등의 첨단 무기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시가지에 파괴된 러시아 장갑차들이 버려져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도 BMP-1 보병전투차와 SA-8 지대공미사일, 미그-29 전투기 등 옛소련이 시절부터 쓰던 러시아산 무기를 많이 사용했다. ‘알라의 요술봉’이라 불릴 정도로 널리 쓰인 RPG 로켓포는 양측 모두 애용한 무기였다.

 

서방이 지원한 무기들도 스위치블레이드 드론을 제외하면 오랜 기간 쓰던 것이 대부분이다. 스팅어 지대공미사일은 1980년대 아프간 전쟁때부터 운용됐고, 재블린 대전차미사일은 1996년, AT-4 대전차화기는 1987년, 판저파우스트-3 대전차미사일은 1992년에 실전배치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측이 한 세대 이전의 무기를 앞세워 싸우는 것은 전쟁의 속성에 원인이 있다.

 

장병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다. 전사하지 않고 무사히 복귀하려면 작전에 쓸 무기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신뢰가 필수다. 

 

고도의 신뢰는 오랜 기간 운용하면서 서서히 축적된다. 이 과정에서 기계적 신뢰성과 전술적 적합성, 군수지원체계 등도 확립된다. 

 

첨단 기술이 투입됐다 하더라도 운용해본 시간이 짧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쟁터에 가지고 나간 첨단 장비가 결정적인 순간에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오래 전에 실전배치돼 신뢰성이 확보된 무기가 전쟁터에서 더 주목받는 이유다.

 

오래됐지만 성능이 검증된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도 중요하다. 러시아군 진격로에 매복한 우크라이나군은 RPG 로켓으로 러시아 전차의 측면 증가장갑을 부순 뒤 서방에서 지원받은 대전차화기로 전차를 파괴했다.  

 

반면 러시아군은 공군과 육군의 유기적 결합이나 보병-전차 간 합동작전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채 간선도로에 기계화부대를 투입,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첨단 무기에 ‘올인’하는 대신 실전에서 첨단무기와 오래된 무기를 각각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면밀히 설정하고, 그에 맞는 운용 전술과 군수지원체계를 사전에 구축해야 유사시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우크라이나 전쟁은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시가지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불탄 채 버려진 러시아 장갑차들 사이에 서 있다. AP 연합뉴스

◆입체기동작전 수행할 능력 있나

 

최근 외신에 따르면, 전쟁 전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와 싸웠던 우크라이나군 장교들은 “러시아군은 스탈린시대의 전술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대포를 쏜 뒤 고깃덩이(러시아 군인)들을 던진다”고 전했다. 옛소련 시절 군사적 지원을 받았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 등에서도 눈에 띄었던 부분이다.

 

러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북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인적 손실은 개의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 알레포나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처럼 장사정포로 도시를 초토화할 위험도 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북한은) 미사일을 포함한 포격전을 하고, 말 그대로 뛰어서 남한으로 내려오는 작전을 하지 않겠느냐”며 “북한은 우리와는 멘탈이 틀리다. 수만명이 죽어도 눈 까딱하지 않을 나라다. 많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이 공세적인 작전에 나섰을 때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겪었던 곤경을 한국군도 경험할 위험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중국산 DJI 등 상용 드론과 자체 개발한 소형 드론에 폭탄을 장착해 러시아 전차를 공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옛소련이 썼던 대전차수류탄 개량형을 토대로 장갑 관통력이 160mm가 넘는 RKG-1600 폭탄을 개발, 드론에 장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이지움 인근 도로에서 러시아군 호송대가 공격을 받아 멈춰 있다. AP 통신

북한은 드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중국과 인접해 있어 상용 드론을 확보하기가 쉽다. 한국군 전차나 자주포 부대 상공에 갑작스레 나타나 폭탄을 투하하면 작전 수행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북한은 RPG를 비롯한 대전차화기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쓸 수 있는 RPG 로켓탄도 다양하고, 자체적으로 대전차미사일을 만든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전차미사일이 ‘전차 무용론’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활약한 것을 보면, 한국군 기계화부대도 러시아가 겪었던 ‘악몽’에 직면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전 같은 훈련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육군 전차가 훈련을 앞두고 급유를 받으면, 훈련 종료 시까지 재급유를 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 훈련 기간이 길지 않거나, 실제 이동거리가 짧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전에서도 이동거리가 짧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물리적인 거리가 짧아도 전시에 기동장비가 받는 부담은 평시보다 훨씬 크다.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수도 키이우 인근 이르핀 시가지에서 드론을 띄우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벨라루스 국경에서 남하한 러시아군은 병참 문제 등으로 국경서 90㎞ 떨어진 키이우를 끝내 함락하지 못했다.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군용트럭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인 필립스 오브라이언은 “평시에 1마일을 달리는 건 전쟁터에서는 20마일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국군은 러시아군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195㎞. 도로 너비가 7m 이상인 도로는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포함해 2개 정도다. 

 

적 대전차미사일이나 전차에 대한 회피 등 전술기동까지 더해지면, 이동거리는 195㎞를 훨씬 넘어선다. 연료와 탄약 소모량도 급속히 늘어난다. 주요 부품도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다. 

 

육군 트럭들이 K-1 전차를 싣고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거의 관성대로 훈련을 하고, 노후 트럭 교체 및 정비 강화 등을 하지 않는다면 도로 한복판에 전차나 장갑차를 세워야 했던 러시아군과 유사한 처지가 될 수 있다.

 

실전에 준하는 수준의 재보급 및 야전 정비 연습을 진행, 입체기동작전을 뒷받침할 작전지원능력을 평시에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공군과 육군의 합동작전을 위한 훈련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보병 입장에서 전투기가 폭탄 한 발을 정확하게 투하하면 포병 1개 대대가 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한국군은 이같은 부분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보다 뒤쳐져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공군과 육군이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전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러시아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한화디펜스 공장에서 천무 다연장로켓이 조립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약화된 예비군 전력 회복도 시급하다. 한국군은 코로나19로 예비군 훈련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전에도 훈련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중단되면서 상비군을 지원해야 할 예비군 전력이 흔들리고 있다.

 

전쟁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훈련과 혁신도 필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원을 받아 2014년부터 군사훈련과 국방개혁을 단행했다.

 

NATO 회원국들은 지난 8년 동안 매년 1만명 이상의 군인들을 훈련시켰다. 군인들이 스스로 생각해 움직이는 서구식 표준를 따르게 했다. 

 

직업군인들을 대상으로 감사보고서 작성, 능력 평가 및 개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 근거를 갖춘 지휘관 임명 제도가 정착됐다. 군에 대한 민간 우위 원칙을 확립해 군의 부패와 낭비를 제거했다. 이는 의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육군 1사단 차륜형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시절 대북 선제타격을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조짐이 있다면, 선제타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목소리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전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 결과 6.25 전쟁에서 낙동강까지 후퇴하는 대가를 치른 바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순한 군사력 순위나 호언장담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북한과의 전투력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실질적인 전투력 강화가 없다면, 한국군과 북한군 간의 전력 격차를 벌릴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국민의 눈을 사로잡을 첨단 전투기나 군함 대신 전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본 전력 육성과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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