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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부모에 대한 분노와 상처… 예술로 녹여내다

입력 : 2022-01-23 21:08:22 수정 : 2022-01-23 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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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르주아 ‘유칼립투스의 향기’전

아버지 불륜·어머니 묵인으로 삶 고통
자전적 작품 빚으며 ‘치유의 예술’ 승화
말년에 작업 한 판화 작품 50점도 전시
유칼립투스의 향기 전시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펄펄 끓는 분노가 청동마저 녹였을까.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어 버티며 흘러간 시간은 청동물을 다시 굳혔다.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흘러내린 자국이 단단하게 응어리졌다. 분노가 녹아난 브론즈 조각은 고통을 형상화한 예술 작품이 됐다.

‘화가들의 화가’, ‘20세기 최고의 화가’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 미국 여성주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작품들이다. 여성의 고통을 주제로 한 1967-1968년 작품 ‘Unconscious Landscape(무의식 풍경)’, 2005년 작품 ‘Femme(여성)’ 등은 분노를 제 몸속으로 녹여낸 작가의 육체성과 시간이 실감나게 전해진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 전시가 한창이다.

프랑스 태생의 미국 작가로 현대미술 거장인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느 사조에도 속하길 거부하며 자전적 작품을 해온 작가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교사와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를 묵인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삶을 예술 작업으로 헤쳐나갔다.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가 대표적이다. 잊거나 받아들이거나. 평범한 삶에 주어지는 두 선택지를 거부하고 예술로 고통을 승화해갔다. 그는 생전 “내 작업은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7개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

전시는 그 외에 2010년 작고한 그의 말년 작업기인 2004∼2009년 제작 판화 약 50점도 볼 수 있다. 전시의 중심은 이 판화들인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날 서 있던 작품 세계가 점차 변화하며 신체 장기를 닮은 식물 등 대자연을 소재로 했다. ‘내면으로’ 시리즈는 루이스 부르즈아가 판화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처음 제작한 작품들로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외부에 오랫동안 전시됐고 현재 용인 호암미술관 근처에 설치돼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마망’을 비롯해, 작가는 오랜 기간 조각을 다뤘던 예술가였다. 그러던 그는 “판화는 3차원의 드로잉”이라며 판화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동판에 왁스 재질의 그라운드를 바르고 바늘로 드로잉한 뒤 희석된 산에 담갔다가 빼고, 다시 잉크를 바르며 만들어내는 판화가 대단한 육체활동이라는 데 주목했고, 조각의 무의식적 상태가 바로 판화라는 인식을 가졌다고도 한다.

전시 제목에도 쓰인 유칼립투스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체이자,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어머니를 간호할 때 약용으로 유칼립투스를 많이 사용한 기억으로,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식물, 작가 말년까지 주요 모티프가 된 모성 중심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상이 됐다.

30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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