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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은 새생명 운동… 의식 변화해야”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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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13 01:05:00 수정 : 2021-12-13 01: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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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영 한국장기기증협회장

장기기증 법 제화 20년 됐지만
유교문화 관습에 뿌리 못 내려
정부 무관심… 예산 해마다 감소

부산, 亞장기기증 허브로 육성
시교육청과 윤리·인성 등 교육
기증자 예우문화도 정착돼야
강치영 회장이 지난달 23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뇌사 장기기증자 추모의 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장기기증협회 제공

“한때 서울역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 공중 화장실에 장기를 밀매한다는 연락처가 들불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이는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이식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만 하루에 7명에 달합니다.”

국내 열악한 장기기증 환경을 설명하는 강치영(58) 한국장기기증협회장의 어조는 명확하고 뚜렷했다. 강 회장은 “장기기증이 법제화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오랜 유교문화와 관습으로 인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지난 11일 부산에서 30년 장기기증운동 외길을 걸어온 강치영 한국장기기증협회장을 만났다.

그가 장기기증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8세 청년이던 강 회장은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다 우연히 고(故) 장기려 박사를 만나 처음 ‘장기기증 운동’을 접하고 점점 빠져들었다. 이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부산·울산본부장을 맡아 20여년 동안 장기기증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장기이식을 통해 339명의 말기 환자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고, 국내 의학 발전을 위해 103구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인도했다. 또 화상환자를 위한 조직기증과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골수기증에 이어, 무료 인공신장실을 개원해 희귀 난치성 말기 환자에게 45만회에 달하는 투석치료비를 지원했다.

특히 2007년 2차례에 걸친 현대중공업 노사와의 ‘생명 나눔 프로그램’을 통해 1만5000명이 한꺼번에 장기기증 서약을 끌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에게도 참기 힘든 고난의 시간도 있었다. 10여년 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전격 해고됐다. ‘너무 일을 잘한다’는 것이 해고 이유였다. 설상가상 ‘강치영 회장이 장기기증을 빌미로 돈을 받고 장기밀매를 주선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사람과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하고 경찰 조사까지 받았던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강 회장은 한때 정치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주변에서 하도 견제하는 사람도 많고, 장기기증운동이 제도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정치판에 뛰어든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후 정치권과 담을 쌓고 한국장기기증협회를 직접 설립하는 동시에 공부에 매진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강 회장은 “시민사회운동이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지방에서도 시민운동과 봉사활동을 얼마든지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세계 최초로 장기기증학회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10여편의 장기기증 활성화 관련 연구논문을 시리즈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 인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장기기증 관련 정부의 홍보예산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의 장기기증 관련 홍보예산은 2017년 52억5280만원에서 지난해 46억9000만원으로 5억6000만원 이상 감소했는데, 최근 5년간 뇌사자 장기기증이 감소한 것과 무관치 않다. 뇌사자 장기기증 추이를 살펴보면 2016년 573명에서 2017년 515명, 2018년 449명, 2019년 450명, 2020년 478명으로 매년 소폭 줄었다.

이는 정부가 법제화 이후에도 장기기증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게 강 회장 시각이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는 유서 깊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장기기증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며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낮은 것은 무엇보다 장기기증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홍보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강 회장의 앞으로의 목표는 뚜렷하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부산시와 협력을 통해 부산을 아시아권 장기기증 허브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 교육청과 함께 학생을 대상으로 장기기증 관련 윤리·도덕적 측면과 인성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는 “장기기증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기기증자와 뇌사 장기기증자 유족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문화를 하루속히 정착시켜 장기기증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회장은 “뇌사자 1명의 장기기증으로 최대 9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며 “정부와 국회가 나서 장기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법과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오성택 기자 fivest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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