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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젠더갈등 이렇게 심한 적 없어… 청년세대 박탈감 살펴야”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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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16 22:00:00 수정 : 2021-11-17 0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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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에선 남녀 모두 연결돼있어
성별로 분리해 보는 관점 지양해야

공군여중사 사망부대 첫 현장점검
수사기관 아니라 권한 매우 제한적

저출산 해결, 일·육아 병행구조 중요
스토킹처벌법, 강력범죄 인식 의미

여가부 주 업무 대상은 사회적 약자
화합·공감·연대가 선진사회 출발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1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성평등과 저출산 문제, 젠더(성별) 갈등, 스토킹·디지털성범죄 등 여성·가족과 관련한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남제현 기자

“성차별 문제뿐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여성가족부 업무가 확대되고 있지만 그만큼 인력과 예산, 권한이 뒷받침되지 않아 한계가 적잖은 측면도 있습니다. (여가부) 업무가 미진하니 없애자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인 만큼 더 체계적인 틀을 갖추고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화합, 공감, 연대, 약자를 지지하는 마음이 선진사회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만난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만이 아닌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거듭 강조했다. 돌봄이나 노동 등 여성이 약자인 사회분야에서는 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남녀 함께 조화롭게 사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국내 여성학 박사 1호’로 40여년간 여성 권익 향상과 양성평등을 위해 힘써온 정 장관은 “실생활에서 남녀가 모두 연결돼 있는데 성별로 분리해 보는 관점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고, 사위도 아들과 다름없으며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당연히 딸 편을 들지 않냐고 하면서다.

 

취임 1년을 앞둔 그는 “여가부의 업무 대상은 여성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하나 외면 받고 소외되는 집단들”이라며 사회적 건강성 회복을 위한 길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다음은 정 장관과 일문일답.

 

─청년세대에서 남녀 성별(젠더) 갈등이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그렇다. 살면서 요즘 같은 때가 없었다. 세대별로 보면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세대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부모가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정년 보장되는 정규직에 취업하고 내집도 마련하는 등 기회가 열린 사회를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다. 기회가 과거보다 객관적으로 더 많다고 말할 게 아니라 청년세대가 느끼는 박탈감을 봐야 한다. 열심히 벌어도 전셋값조차 감당이 안 되고 정규직 일자리 취업도 힘든 점 등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 이는 청년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통된 고충이다. 그런 문제의 원인을 (남성이나 여성) 한 쪽이 다른 쪽 탓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라 같이 힘 합쳐서 좋은 사회를 만들자 하고 함께 해법을 고민하는 게 적절한 태도라고 본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2021.11.15 남제현 선임기자

─대선 정국을 맞아 최대 변수로 꼽히는 청년층의 표심을 겨냥해 여야 후보들이 앞다퉈 청년 공약을 내놓는 과정에서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우려되는데.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나 명칭·기능 조정론을 꺼내는 것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청년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성별로 어떤 어려움이 같고 다른지 파악해서 잘 감싸고 보듬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야 모두 우리 사회의 미래 생각하면서 현재 문제를 해결해 가려고 하는 공약과 전략을 소개하면 좋겠다. 여가부는 기본적으로 남성을 차별하거나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지 않는다. 남자라고 다 강자나 가해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다 약자나 피해자도 아니지 않나. 모든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같이 가야 하는 선진사회에서 성별은 변수가 될 수 없다.”

 

─공무원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여성보다 남성이 혜택을 더 봤다고 하던데 맞나.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양성평등채용목표제는 일단 정원(채용목표)대로 다 뽑은 뒤 남녀 중 특정 성별이 30%에 못 미치면 적은 성별의 인원을 추가로 채용한다는 제도다. 그런데 보통 공무원 합격자를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통한 정원 외 추가 선발에는 남성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2015∼2019년 최근 5년간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합격한 인원은 남성이 75.7%였다.”

 

─역대 정부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평등과 연관 있다고 본다. 프랑스는 출산율이 높은 편이고 독일은 출산이 줄어들다 (증가로) 반전된 예외적인 나라인데 공통적으로 성평등을 강조한다. 흔히 우리 사회가 경제력이 향상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져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면서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많은 나라가 출산율도 높다. 이들 나라의 경우 처음에는 출산율이 조금 낮아져도 다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출산율이 괜찮은) 해외사례를 보면 남자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여자도 일을 하게 해서 부부가 육아와 경제활동을 같이 하도록 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해법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부터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가 대체입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여성 건강권 침해 문제 등 현장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낙태가 불법은 아니게 됐지만 애매한 상황이다. 입법 공백 탓에 낙태를 해야 할 여성들이 수술해 줄 의사가 없어 온라인에서 불법적으로 구한 약을 먹는 등 위험한 상황도 있는 게 현실이다.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 여가부는 관련 토론회 개최와 교육 등을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면서 조속히 법적으로 보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2021.11.15 남제현 선임기자

─스토킹처벌법이 22년 만에 제정됐는데 의의가 무엇인가.

 

“무엇보다 스토킹이 단순히 좀 쫓아다니고 괴롭히는 수준의 경범죄로 여겨지다 피해자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강력범죄란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이제는 사람들이 스토킹에 대해 징역형 등 죗값에 따라 처벌될 수 있는 심각한 범죄로 본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은 여가부 소관이 아니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가 우리 업무다. 여가부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전부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이나 긴급피난처 임시보호를 해왔다. 하지만 제도적 미비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다른 유형의 피해자에 준해 보호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입법예고한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예정대로 내년에 만들어지면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 후 양육비를 주지 않고 버틴 일부에게 출국금지 나 운전면허 정지 조치를 하기도 했는데, 까다로운 요건 등으로 이혼 후 양육비 책임을 소홀히하는 부모에 대한 제재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운전면허 정지와 출국금지, 양육비 미지급 부·모 명단 공개 다 실효성 있는 제도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길고 출국금지 등의 요건이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정부가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함부로 당사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양육비 지급 신청부터 양육비 이행 명령, 법원의 감치명령(채무자를 경찰서 유치장·교도소·구치소에 가두는 것)이 나오기까지 1∼2년가량 소요된다. 법원의 감치명령을 기준으로 다시 미지급 기간을 따져 출국금지 등의 제재조치를 하니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이 길어 양육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출국금지 조치 대상 비양육자 조건 중 하나로 미지급 액수가 총 5000만원 이상이고, 출금 기간이 6개월인 점 등) 각종 절차에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고 양육비 미지급액 기준도 낮출 필요가 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2021.11.15 남제현 선임기자

─지난 7월 성폭력방지법 개정 후에 여가부가 공공기관의 성범죄 사건 등에 개입할 권한이 생겼다. 그즈음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공군 부대에 처음 현장점검도 나갔는데, 성과와 한계는.

 

“군에서 서류상으로 매뉴얼에 따라 대응했는지 살펴보는 것과 다르게 현장점검을 통해 그런 사건을 발생하게 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폐쇄적인 문화가 강한 군이 우리에게 관련 서류를 보여주고 관련자 인터뷰를 하게 한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후 군 특성에 맞는 추가 조치를 하고, 군 내부의 성폭력·성희롱 사건 대응 제도와 문화를 어떻게 개선할지 등을 모색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군대 내에서 문제를 은폐하는 일도 줄어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다만 해군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해 단기간에 재발을 막고 2차 가해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현장점검 권한도 매우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여가부 현장조사에 기대한 것과 괴리가 있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실질적인 조사 권한이 주어지면 좋겠다.”

 

─여가부 업무가 인력과 예산에 비해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 그러니 사안에 따라 ‘동네북 신세’가 되기도 한다.

 

“여가부 역사가 20년 흐르면서 부침도 있었지만 필요 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영향력을 갖도록 발전했다. 우리 부처 업무 대상이 타부처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경력단절여성은 고용노동부와, 아동은 보건복지부와, 학교밖 청소년 등 청소년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와 일부 겹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해당 부처에 맡기면 된다고 하는데 겹치는 부분이 대부분 힘없고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집단 관련 업무다. 이는 다른 부처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이슈이나 여가부에선 주요 이슈로 관리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잘 살펴야 우리 사회가 잘 유지되지 않겠나. (여가부를 비판만 하기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2021.11.15 남제현 선임기자

─여가부장관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전반적으로 여성·가족·청소년 정책의 총괄기능을 강화하고 싶은데 여가부 업무가 많이 늘어난 만큼 인력과 예산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성희롱·성폭력 신고를 의무화한 이후 신고가 빗발치는데 현장점검인원이 두 명밖에 없다.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와 팀을 꾸려도 감당이 안 돼 사건이 반복되는 기관이나 사망 사건 위주로 조사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해 온라인에 유포된 게시물 삭제 등을 지원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도 인력이 39명밖에 안 된다. 이 중 22명은 단기 기간제여서 불안정한 지위인 데다 불법영상물 삭제 지원 업무에 초점이 맞춰져 온라인 언어 성폭력과 스토킹 등의 피해자 지원에 한계가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담당자가 자주 바뀌게 되면서 자신의 피해 사진을 계속 노출해야 하는 등 2차 피해 우려도 제기된다.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통계 등 각종 항목으로 나눠진 성주류화 제도 역시 부처별로 내실화했으면 한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1955년 경남 양산 출생 ●1974년 진명여고 ●1977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1981년 이화여대대학원 사회학 석사 ●1997년 이화여대대학원 여성학 박사 ●2003년 대통령 인사균형비서관 ●2007년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 ●2010년 한국여성학회장 ●2013년 서울사이버대 대학원장 ●2017년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2020년 한국여성재단 이사 ●2020년 12월 제9대 여성가족부 장관 취임

대담=이강은 사회부장, 정리=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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