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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싸움도 경찰 통해 화해…“학교의 교육적 기능 회복 필요해”

입력 : 2021-11-14 18:53:45 수정 : 2021-11-16 10: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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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피해자 분리’ 등 학폭법 조항
당사자 간 화해 어렵게 만들어
부모, 갈등 풀려 경찰에 신고 ‘역설’

법정行 전 피해자와 회복적 대화 필요
18개월간 접수된 5건 중 1건 학폭
“학교 학폭 대응, 회복적 접근 전환을”

지난달 초등학생 A군과 B군이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들은 평소에도 자주 다투던 사이로, A군 부친은 같은 일이 반복되자 B군 부모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학교에 연락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했다. A군 부친이 거듭 간청하자, 학교폭력 담당교사는 ‘회복적 경찰활동’ 제도를 이용해보자고 제안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가·피해자 간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춘 경찰활동’을 뜻한다. A군 부친은 교사 조언대로, B군 부모를 만나기 위해 B군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A군과 B군 부모는 경찰서가 주관한 ‘회복적 대화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경찰관과 상담 전문가가 중재하는 이 자리에서, A군과 B군은 그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정을 털어놨다. A군 부친과 B군 부모도 서로 만나길 원했으나 학교에서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양측은 이런 대화를 거친 뒤 앞으로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약속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화모임이 끝나고 그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그간 학교 측이 보인 대응에는 쉽사리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양측 가족은 “왜 아이들끼리 다툰 일로 경찰서까지 와야 하느냐”라며 “이런 대화는 학교에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학교 측을 비판했다.

 

이는 오는 16일 경찰청·회복적대화 전문기관·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피해자포럼이 공동 주최하는 ‘경찰청 피해자 보호·지원 제도 발전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좋은교사운동 회복적생활교육센터 박숙영 소장이 발표할 사례다. 현재 회복적 경찰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 내에서 학생과 그 가족 간 대화를 통해 화해하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만, 사소한 학교폭력 사례가 경찰 단계에서 다뤄지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박 소장은 16일 ‘회복적 경찰활동과 학교폭력’이란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발표문을 통해 “대부분 학교폭력 사안이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회복적 대화모임이 경찰에서는 되는데, 학교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경찰에 접수된 회복적 경찰활동 1593건 중 학교폭력 사례는 356건으로 22.4%를 차지했다. 

 

박 소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에 회복적 접근과 충돌하는 조항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가·피해자 간 즉시 분리와 당사자 개인정보 누설 금지를 명시한 법이 학교 내 회복적 대화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는 ‘학교의 장이 학교폭력사건을 인지한 경우 피해학생의 반대의사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와 피해 학생을 분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법 시행령 제33조는 학교폭력 당사자와 그 가족의 개인정보 누설도 금지하고 있다.

 

박 소장은 “학교폭력 문제로 민원이나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교사의 책임소재는 ‘학교폭력예방법 절차 준수 여부’에 달리게 된다”며 “이런 이유로 교사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사안처리 절차와 매뉴얼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회복적 접근을 가장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9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일부 개정돼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게 됐고, 가·피해자와 그 가족 간 관계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도 가능해졌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회복적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박 소장은 “학교에서 이뤄진 학교폭력 조치 결과는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만, 회복적 경찰활동을 거친 사건은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학교 조치가 학생 당사자에게 더 불이익을 주는 셈”이라며 “현행 학교폭력 정책을 회복적 관점으로 전면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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