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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old man’이라니… 콘텐츠는 특급, 번역은 C급

입력 : 2021-10-12 21:00:00 수정 : 2021-10-13 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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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부실 번역 논란

아주머니를 ‘grandma’ 등으로 오역
‘깐부’ 등 기계적 번역… 대사맛 못살려
美언론 “한국적 요소 없애놨다” 비난
넷플릭스 자막 체계적인 관리 안돼
번역가 처우 개선 등 과제해결 시급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은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었으나, 넷플릭스는 그러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이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모두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지난달 23일부터 20일 가까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말한 ‘자막’이라는 장벽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자막은 한편으로는 부실 번역 논란에 휩싸이며 세계적 명성과는 걸맞지 않은 악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계적 번역으로 한국어의 ‘말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해 작품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다. 영화, 드라마, 문학, 웹툰 등 K콘텐츠가 세계의 주류가 되고 있는 가운데 원작의 작품성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번역 분야도 신중하고 감각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징어 게임’의 대표적 오역 사례는 ‘오빠(old man)’와 ‘아주머니(grandma)’다. 한국 특유의 호칭 문화를 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빠(oppa)’ 등의 한글 단어가 세계 언어로 자리 잡은 시대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빠라는 단어는 싸이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의 ‘상남자’ 등 K팝을 통해 이미 그 의미와 어감이 널리 퍼졌다. 최근 세계적 권위를 지닌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빠는 ‘누나(noona)’ ‘언니(unni)’ ‘대박(daebak)’ 등과 함께 등재되기도 했다.

 

외신들도 번역판 오징어 게임이 원작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는 기사를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9일(현지시간) “‘오징어 게임’의 영어 번역은 한국적 요소를 부주의하게도 완전히 없애놨다”며 “영어 버전은 한국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이 매체는 극 중 구슬치기 게임에서 오일남(오영수 분)이 ‘깐부’를 맺은 성기훈(이정재 분)에게 마지막 구슬을 건네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깐부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you share everything)” 극한의 긴장 상황에서 나온 오일남의 이 대사는 원작대로 “깐부끼리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don’t differentiate between what’s yours and what’s mine)”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어로는 ‘정(jung)’이라고 불리는 ‘우정’, ‘유대감’ 등의 한국적 정서”를 담지 못한 탓에 이 짧은 한 문장이 에피소드의 전부를 놓쳤다고 매체는 평가했다.

한미녀(김주령 분)의 대사에 묻어나는 그의 성격이나 한국의 사회상도 번역판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한미녀가 극 중 짝을 구하는 과정에서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장난 아니라니까”라며 자신을 부각하려는 대사는 “난 천재는 아니지만 해낼 수 있어(I’m not a genius, but I still got it worked out)”라고 번역됐다. 원래 이 문장은 한미녀의 허풍선이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동시에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사다리인 ‘교육’마저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한국의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대사다.

 

단순 부실 번역이 아닌 왜곡 문제까지 빈번하다. 대만 넷플릭스는 ‘킹덤’을 ‘이시조선(李屍朝鮮)’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다. 조선을 ‘이씨 가문이 세운 나라’라고 낮춘 표현인 이씨조선에다가 좀비 소재를 강조하기 위해 ‘씨(氏)’에 ‘주검 시(屍)’를 넣어 ‘이시(李屍)’로 써 논란을 키웠다.

 

왜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이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자막 관리는 체계적으로 되지 않는 상황이다. 넷플릭스 코리아의 경우, 자막은 최대 31개 언어로, 더빙은 최대 13개 언어로 제작한다. 내부에서는 가이드라인 정도를 구축하고, 실질적인 자막 및 번역 업무는 세계 각국의 전문 외주업체에 맡긴다. 번역자가 많지 않은 특수언어의 경우에는 영어 번역을 재번역하는 중역을 거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사에 담긴 함의나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콘텐츠 업계의 발전을 번역 시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증하는 번역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번역가에 대한 처우도 수년째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상 번역 업체를 운영하는 전문 번역가 A씨는 “OTT 확산과 코로나19 사태로 물량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물론 번역가 지망생이 늘고 있지만 일손이 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번역 계의 임금도 10년째 답보 상태로, 대부분 편당 30만원 선을 받는다. 여기에 OTT 업계의 재하청 구조로 가격경쟁이 발생하는 상황도 시장의 질을 낮출 우려가 있다”며 “번역의 질은 곧 번역가의 처우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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