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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갑질·성폭력에도 유공자라… 참고 또 참아”

입력 : 2021-06-14 06:00:00 수정 : 2021-06-14 08: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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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섬김이의 ‘16년 피해 호소’

80대 유공자 지속적 음란물 전송
‘예우’ 해될까 말도 못하고 속앓이
담당 공무원 되레 피해자 탓하기도
노조, 제도 도입후 첫 경찰에 고발

“저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건지… 사진을 받을 때마다 참담했습니다.”

국가유공자 가정에 방문해 가사 지원 등의 일을 하는 ‘보훈섬김이’ 박혜선(가명)씨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떨린다. 박씨가 돕는 80대 국가유공자 A씨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음란물을 보낸 것이다. 무심코 메시지를 확인했던 박씨는 여성의 성기가 드러난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A씨의 이런 행동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매번 ‘그러지 말아달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으나 A씨는 박씨의 말을 비웃듯 음란물 전송을 멈추지 않았다. A씨에게 박씨는 그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심심풀이 대상’ 정도로 보이는 듯했다. 사진을 받을 때면 수치심과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박씨가 참아온 것은, ‘고령의 국가유공자’란 A씨의 신분 때문이었다. 피해 사실이 공론화할 경우 A씨에 대한 보훈 서비스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어르신이잖아요. 저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꾹 참아왔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또다시 메시지로 음란물이 오자 박씨의 마음은 무너져내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국가보훈처노동조합에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고, 노조는 최근 A씨를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보훈섬김이 측에서 서비스 지원 대상의 성폭력을 수사기관에 고발한 것은 2005년 관련 서비스가 도입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16년 동안 보훈섬김이들이 당한 성폭력 피해 사례가 적지 않았고, 보훈처에 문제 제기와 함께 대책 마련을 호소했지만 유야무야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노조는 13일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으로 보훈섬김이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고발을 통해 피해자의 인권유린과 신체·정신적 피해가 회복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고발 취지를 밝혔다. 고발장을 접수한 뒤 사실관계를 파악한 경찰은 조만간 A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보훈섬김이들 사이에서는 이번 고발 건을 두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오랜 기간 성희롱·성추행과 폭언 등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만난 보훈섬김이들은 이 같은 피해를 호소하면서도 ‘국가유공자를 법적조치한다는 것이 껄끄러워서’, ‘아버지 같은 분들이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용기 내 담당 공무원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는데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2018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예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노조는 “‘섬김이’란 단어 자체가 서비스 대상자들을 ‘섬겨야 한다(모시어 받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명칭부터 바꿔달라 요구하고 있지만 몇년째 묵묵부답”이라고 비판했다.

 

이종민·이지안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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