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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교양과 사람됨을 판단하는 척도다. 지금은 말 대신 SNS나 문자메시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비대면 댓글이나 문자메시지는 상대를 공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인신공격성 악성 댓글에 시달린 유명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끊이지 않는다.

 

4·7 재보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자숙은커녕 ‘문자폭탄’으로 시끌벅적하다. 초선의원 5명이 조국사태 등을 언급하며 사과한 게 시발점이다. 친문 강성당원들의 ‘초선 5적’ ‘초선족’ 막말과 비난이 쏟아졌다. 당내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조응천 의원은 “70만 권리당원 목소리가 강성 지지층 2000명에 묻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공개한 문자메시지는 가관이다. “당신이 쓰레기라는 걸 알리는 데 성공했다” “발끝의 때에도 못 미치는 인간” 등 낯 뜨거울 정도다. 친문 의원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대통령 ‘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선출직이라면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문자폭탄도 국민의 목소리”라고 되레 옹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분당 위기에 몰리자 문자부대가 등장했다. ‘문재인 수호’를 내걸고 탈당설이 나돌던 의원과 반문 비주류에 문자폭탄을 퍼부었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선 더 극렬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층에 공격좌표가 설정됐다. 당시 안 전 지사 측 박영선 의원은 ‘문재인 지킴이 십만대군 모여라’는 채팅방의 조직적 문자폭탄 독려사진을 공개하며 “적폐청산 2호는 조직적 악성댓글과 문자폭탄이다. 사회의 영혼을 혼탁하게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경쟁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면죄부를 줬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문재인정부의 민낯이다.

 

미국 법학자 에이미 추아는 ‘팬덤’으로 불리는 이런 현상을 ‘정치적 부족주의’로 정의했다. 보편적 가치는 뒷전이다. 잘해서라기보다 자신이 지지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민주사회에서 건전한 토론을 ‘집단 괴롭힘’으로 막는 건 ‘양념’이 아닌 테러다. 반성도 시원찮은 판에 민심의 ‘회초리’ 대신 친문의 ‘눈초리’만 살피는 게 안타깝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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