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일기장 속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사랑과 고민…일반에 공개

입력 : 2021-04-30 07:42:19 수정 : 2021-04-30 07:42:1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태일 열사 유가족(남동생) 전태삼씨가 29일 서울시 종로구 전태일 열사 동상 앞에서 공개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연합뉴스

“그대는 영원한 천사와 같이. 사랑해선 안 될 사랑 부디 행복하소서”

 

“국립극장 앞과 명동 뒷골목을 쓸며 담배꽁초를 주워 모아 생계를 유지할 때도 눈물을 보지 않았다”

 

봉제 노동자로 일하다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 전태일(1948∼1970)열사의 친필 일기장 원본이 유족 결정으로 반세기 만에 처음 공개됐다. 전태일이 스무 살이던 1967년 2월부터 1970년 3월까지 약 3년간 기록된 170여쪽 분량의 일기로 여기엔 그의 사랑과 현실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전태일의 일기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1988년 펴낸 그의 수기 ‘내 죽음을 헛되이말라’를 통해 대부분 알려졌지만, 일부 낙서와 그림, 짧은 글 등은 담기지 못했다.

 

30일 공개된 친필 일기장 원본엔 미래를 고민하고 아름다운 시를 골라 필사하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모습이 남아 있다.

 

앞부분인 1967년 2월 20일 새벽 전태일은 “시간은 가지 않고 잠은 오지 않는데 시나 하나 골라 보자”며 김소월의 ‘산유화’를 두 번 쓰고 대나무를 그렸다.

 

또 김소월의 ‘잊었던 맘’,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등의 시를 필사했다.

 

‘금희 누나’를 떠올리며 “그대는 영원한 천사와 같이. 사랑해선 안 될 사랑 부디 행복하소서”라고 연정이 담긴 글을 쓰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부디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냉정하고 충실하라”며 스스로 다그치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가난에 관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날짜가 없는 어느 일기에는 “남은 다하는데 나라고 못 할 리가 어디 있냐. 내년 3월에는 꼭 대학 입시를 보자”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어 “설마 3일 금식에 죽지야 않겠지. 정신 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라면서도 “조선호텔 앞에서부터 미도파 앞 그리고 국립극장 앞과 명동 뒷골목을 쓸며 담배꽁초를 주워 모아 생계를 유지할 때도 눈물을 보지 않았다”며 힘들었던 자신의 옛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영어를 공부한 흔적도 보였다.

 

전태일은 “한결같은 낙숫물이 돌을 판다(constant dropping wears away the stone)”, “돈이 힘이다(money is power)” 등 영어 격언을 따라 썼다.

 

그는 당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적어 연습해보거나 유행가를 받아 적기도 했다.

 

일기 후반부에는 자기희생을 암시하는 대목도 있다. 그는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잘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이라고 적었다.

 

그의 일기장은 분신 항거 이후 가족들이 처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 기록인 만큼 가족들도 몰랐던 고민과 일상이 오롯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기자들이 일기장 일부를 뜯어가 기사를 작성하기도 해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유실된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전태일의 옛 동지들은 다음 달 1일 노동절을 맞아 전태일을 기리며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일기장 일부를 낭독할 계획이다. 보존처리 중인 일기장은 전산화를 거쳐 온라인으로 일반에도 공개된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