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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고양이는 쥐를 사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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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8 08:11:20 수정 : 2021-04-28 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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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양자는 내용과 방향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사랑을 하려면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감정 없이 사랑은 발아할 수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시간과 만남을 통해 지속된다고 해서 무조건 사랑으로 변하진 않는다.

 

고양이와 쥐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양자의 차이는 뚜렷해진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양쪽을 가르는 기준은 이기심과 이타심이다. 좋아하는 감정은 마음이 자기쪽으로 향하지만 사랑은 늘 상대의 마음을 앞세운다.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는 것은 오로지 이기심 때문이다. 쥐를 잡아먹고 배를 채우려는 욕심이 목적이다. 거기엔 1퍼센트의 이타심도 없다. 고양이가 쥐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대상은 나를 위한 수단적 가치에 머물게 된다. 반면 사랑하면 그 대상은 목적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수단의 경우 다른 무엇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목적은 내 임의로 바꿀 수 없다. 오직 내가 그것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 쥐의 비유로 돌아가면 이렇다. 쥐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먹잇감으로 다른 쥐로 바꿀 수 있으나 만약 고양이가 쥐를 사랑한다면 그 쥐 외에 다른 쥐로 대체할 수 없다.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꽃을 주고받으며 위안을 느낀다. 사무실이나 거실에 꽃을 꽂아두고 흐뭇해한다. 화병에 꽂힌 꽃은 열흘쯤 지나면 시들고 꽃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이것이 사람들이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한 번도 꽃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인간이 꽃을 사랑한다고 여기는 그 시간은 꽃에겐 아마 인내와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뿌리를 절단당한 꽃은 몸뚱이로 혼신을 다해 물을 빨아들인다. 그렇게 꽃대 하나를 부여잡고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기준에서 예쁘게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빨리 시들면 불평을 터뜨린다. 자기가 필요하면 꽃을 찾고,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내다버리고 다른 꽃을 찾는다. 인간이 나무를 사랑하는 방식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원이나 화분에 나무를 심은 뒤 가지를 자르고 몸뚱이를 철사줄로 친친 감는다. 그것은 이기심이지 사랑이 아니다. 이기심은  좋아하는 감정과 동행할 순 있어도 사랑이나 배려와는 동거할 수 없다.

 

사랑은 나보다 상대의 존재를 존중하는 감정이다. 꽃을 사랑한다면 내가 아니라 꽃이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관점을 180도 바꿔야 한다. 꽃이 원하는 장소는 물과 햇볕이 잘 드는 땅일 것이다. 내 방식대로 꽃을 꺾어 화병에 둔다면 '사랑의 꽃'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결국 고사할 것이다.

 

사랑이 머무는 장소는 어디일까? 나의 뇌 또는 나의 마음인가?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이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사랑하는 순간, 그의 내면에는 상대를 향한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상대의 얼굴과 미소와 몸짓으로 가득 찰 것이다. 상대에게 이미 마음이 빼앗겼다는 증거이고, 내 마음의 주인은 상대라는 얘기이다. 마음의 주인인 상대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랑의 소통 방식이다.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감정이 사랑이다. 사랑의 샘물은 이런 숭고한 마음에서 발원한다. 만약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이 든다면 자기 내면을 바라보라. 그 감정이 자신의 기준이나 판단에서 비롯되었다면 이기심의 발로일 뿐이다. 이타심의 샘물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이다.

 

부부는 싸움을 할 때 곧잘 이렇게 소리치곤 한다.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상대에게 내가 해준 걸 생각하니 밑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건 감정의 교환거래이지 사랑은 아니다.

 

어느 대학 교수는 제자의 결혼식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신랑에게 말하겠네. 아내와 떨어져 있다가 갑자기 집에 들렀을 때 '당신이 보고 싶어 왔다'고 말하지 말게. 그 대신 이렇게 말해보게. '당신이 보고 싶어 할까 봐 달려왔다'고 말일세."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하나가 이기심에서 나왔다면 다른 하나는 상대를 향한 이타심이 배어 있다.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는 근본 이유는 내가 이득을 보자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골라 그런 자세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기심은 공존할 수 없다. 타자보다 나를 앞세우면 사랑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화병의 꽃처럼 끝내 시들고 말 것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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