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총기폭력을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여러 규제 조치와 함께 총기제조사에 대한 면책조항을 손보겠다고 밝혔다.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 최북단 도시 록힐의 한 주택에서 어린이 2명 등 5명을 희생시킨 총격범은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출신으로 이날 확인됐다.
◆바이든은 총기제조사 규제할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총기폭력 방지 연설에서 최근 잇따르는 미국 내 총격사건에 대해 ‘공중 보건에 대한 위기’라면서 “이것은 유행병이다.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일반인이 직접 제작하는 이른바 ‘유령총’(ghost guns)을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밝히는 등 6가지 행정조치를 발표했다. 유령총은 고유번호가 없어 규제대상에서 제외되고 범죄에 쓰여도 추적하기 어렵다. 권총을 소총 수준으로 바꾸는 ‘보조장치’를 관련법에 따라 등록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격용 무기와 고용량 탄창을 금지해야 한다”며 군사용 무기와 대형 탄약 클립의 사적 소지 금지도 요구했다. 연방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에 미국 내 총기 불법 거래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각 주가 위험인물에 한해 총기 소지를 막는 ‘적기법’(Red Flag Law) 채택을 더 쉽게 하도록 했다.
이날 연설의 핵심은 총기 제조사가 법적책임으로부터 보호받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를 없애는 게 총기규제 입법 우선순위의 상위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제조사에 대해 “미국에서 피소될 수 없는 10억달러 규모의 유일한 산업”이라며 “담배 제조사가 그런 면제를 받았다면 얼마나 달랐을지 상상해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이 같은 총기 단속 강화 조치가 총기 소지 자유를 담은 수정헌법 2조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설 현장에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극을 겪고 있다”며 “사람들은 양당에 조치를 원한다. 이제 남은 것은 행동할 용기와 의지”라고 강조했다.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은 총기폭력 방지를 위해 지역사회에 10억달러 규모의 기금 지원 등의 방안을 거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총기 규제를 옹호해왔고, 대선 공약으로도 내세웠다. 하지만 미 언론은 이날 공개된 조치들은 아직 입법화한 것이 아니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 강화를 포함해 온라인 판매금지, 고성능 총기 판매 금지 등을 내세웠다. 하원은 지난달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법안 2개를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계류된 상태다.

◆전직 NFL 선수 총격에 5명 희생 등 잇따르는 총격 사건
CNN방송 등은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 록힐의 한 주택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전 NFL 선수인 필립 애덤스(33)라고 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찰과 보안관실을 이날 이번 총격으로 의사인 로버트 레슬리(70) 박사와 부인 바버라 레슬리(69), 그들의 9세 및 5세 손주 2명, 그 집에서 일하던 제임스 루이스(39)라고 신원을 확인했다. 다른 한 명도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지만,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용의자인 애덤스는 범행 직후인 이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익명의 소식통이 전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애덤스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 애틀랜타 팰컨 등의 NFL 프로팀에서 활약했지만, 발목 골절 등 많은 부상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레슬리 박사로부터 치료를 받아왔고, 그의 부모는 레슬리 박사 집 근처에 살고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레슬리 박사는 록힐종합병원에서 15년간 근무하는 등 응급의학 및 직업병의학 분야에서 일해온 지역 유명인사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은 총격 사건 직후 헬기와 드론 등을 이용해 범행 장소 주변을 수색하다 숨진 애덤스를 발견했다. 앞서 요크 카운티 보안관실은 전날 밤 총격사건 용의자와 관련해 “후드와 (군)위장복 바지 차림의 젊은 흑인 남성”이라고 밝혔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최근 몇 주간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면서 총기 규제 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화가 촉발된 가운데 이번 사건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앞서 미 애틀랜타에서 지난달 총기 난사 사건으로 한인 4명 등 8명이 숨진 데 이어 콜로라도 볼더 식료품점에서도 총격으로 10명이 희생됐다. 이어 버지니아비치에서 총기 사건으로 2명이 숨졌고, 캘리포니아주에서도 4명이 희생된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파티가 열리던 중 발생한 총격으로 3명이 숨졌고, 메릴랜드주에서는 군인이 동료 병사들에게 총격을 가해 중상을 입히고 도주하다 사살됐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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