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에는 이렇게 적힌 묘비 앞으로 한국인과 일본인 4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것은 한 일본인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추모식을 연 요시다 고조 서울일본인교회 목사는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고 식민 통치를 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면서 “하지만 그 시대의 아사카와 다쿠미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도문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눠서 읽었지만, 현장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추모식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산림녹화를 위해 힘썼던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의 90주기를 기리는 자리였다. 그가 개발한 ‘오엽성(잣나무) 노천매장법’은 당시 황폐화된 한반도의 산림녹화에 크게 기여했다. 1931년 4월2일 식목일을 앞두고 40세의 나이로 요절한 그는 “조선의 장례로 조선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조선 땅에 묻혔다.
추모식에 참석한 민덕기 청주대 역사문화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인공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잣나무는 아사카와의 오엽성 노천매장법으로 발아 기간을 크게 단축했다”며 “2년 정도 걸리던 발아 기간을 1년으로 줄이면서 우리나라 산림녹화에 크게 공헌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2001년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를 기억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동식 문화역사칼럼니스트는 “우리는 아사카와나 이수현씨와 같은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일본에 가서 자기 목숨을 바쳤던 한국인들, 한국에서 목숨 바쳐 한국을 위해 일했던 일본인들, 국경을 뛰어넘어 인류애를 실현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추조 카즈오 주한일본국대사관 문화공사는 “일본인은 한국 드라마와 막걸리를 좋아하고, 한국에는 일본 자동차가 달리기도 한다”며 “한일 관계를 정하는 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아사카와를 위해 헌무 ‘현해탄의 봄 나래’를 춘 무용가 석예빈씨는 “대한해협에 진정한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이수현씨의 추모식에만 참석하다가 이번에 다쿠미씨 추모식에도 참석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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