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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 바닷속 울음… 서해의 봄 알린 ‘국민생선’

입력 : 2021-04-06 03:10:00 수정 : 2021-04-05 21: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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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적 함의 담은‘조기평전’

제주·칠산·연평도… 북상하는 조기떼
시간표 짜놓은 듯 정확하게 이동
‘바다의 축제’ 파시… 뱃사람들 유혹

‘조기의 신’ 추앙 받는 임경업 장군
‘억울하게 죽은 자’, ‘억울한 자’ 구원
민중의 집단적 해원이 신격화 발전
백화점에서 굴비를 파는 모습(왼쪽 사진). 어획량이 많고, 맛도 좋아 ‘국민생선’으로 꼽히기도 하는 조기는 단순한 먹거리로서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축적된 역사문화적 함의를 갖고 있다. 오른쪽은 그물에 걸린 조기를 털어내는 어부들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만개한 벚꽃, 온기를 품은 바람,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

봄이 왔음을 알리는 뚜렷한 신호들이다. 조기도 그중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다. 서해에 나타나 봄을 알리는 전령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조기가 들끓어 바다가 보글보글 물끓듯이 달아오르고, 시끄러워지면” 어부들은 봄이 왔음을 알았다고 한다.

 

많이 잡히고, 맛도 좋아 명태와 더불어 ‘국민생선’으로 꼽히는 조기는 먹을거리로서만 아니라 “일상사, 미시사, 환경사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문화적 함의”를 가진다. 해양문화사 연구자인 주강현 전 국립해양박물관장의 ‘조기평전’에 담긴 시선이다. 그는 이른바 ‘과학적 선진’ 어업이 보급된 뒤 황해의 조기떼가 소멸된 뒤 “황해문명권에 형성되었던 어업문화의 역사문화적 총량”이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며 조기와 관련된 역사를 더듬는다.

◆봄의 전령, 조기

시간표를 짜놓은 듯 움직여 정확하게 이동한 뒤 알을 낳는 동물의 회귀본능은 경이롭다. 주 전 관장은 그것을 “언제나 생명 탄생의 외경심을 알려주는 위대한 드라마, 생명의 환희에 불타는 지고의 장엄”이라고 정리했다. 조기의 유전인자에도 서해 이동 일정이 완벽하게 입력되어 있었다. 조기떼는 제주 남서쪽에서 북상을 거듭해 평안도 앞바다에 이른다.

농사가 시작된다는 4월의 곡우 무렵이면 전남 영광의 칠산도 앞바다는 조기떼로 가득했다. “머나먼 남쪽에서 수개월째 계속 올라오는 조기가 칠산에 도착해 첫 울음을 뱉어내면” 바다는 시끄러워졌다. 조기떼의 등장으로 봄이 왔음을 자각한 어부들은 구멍이 뚫린 대나무통을 바닷물에 집어넣고 한쪽 귀를 막고서 조기 울음을 들었다. 사람마다 그 소리에 대한 묘사가 다르지만 “개구리 소리보다는 작고 바람 소리에 가까운 ‘우이∼’ 하는 요란한 소리라는 게 공통된 느낌”이라고 한다.

조기가 많이 잡히는 이때쯤 포구는 휘황찬란하게 변했다. 돈을 부대에 퍼담을 정도여서 색줏집도 즐비하게 늘어서 뱃사람들을 유혹했다. 파시가 열리는 것이다. 서해 어촌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다의 축제’ 파시는 대부분 조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억울한 죽음이 부른 신격화, ‘조기의 신 임경업’

임경업 장군이 ‘조기의 신’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후기 민중신앙사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어떻게 신이 되었고, 하필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았을까.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꼽히는 임경업은 병자호란 이후의 행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한 그는 오히려 명나라와 내통한 것이 죄가 되어 죽었다. 임경업의 죽음은 당시 조선사회에 퍼져 있던 반청의식과 결합해 억울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지배층의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식과는 결이 달랐으나 민중들 역시 청나라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기대했고, 그 꿈이 청나라와의 군사적 대립을 시도했던 임경업에 투사되어 신격화에까지 이른다. “‘억울하게 죽은 자’가 ‘억울한 자’를 구원한다는 집단적 해원(解寃)이 신격화를 요청한 것”이다.

조기와의 연결에 대한 힌트는 소설 ‘임장군전’ 등의 이야기에 남아 있다. 임장군전은 임경업이 청나라와의 싸움을 위해 중국으로 향하다 연평도에 들렀는데, “고기 잡는 도구로서 가시 있는 나무 등을 이용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주 전 관장은 ‘고기 잡는 도구’를 ‘어살’(그물을 단 나무를 세워 물고기를 잡는 장치)이라고 확신했다.

주 전 관장은 “조기잡이를 떠나기 전 서해 어촌에서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마을굿이나 뱃고사를 올렸다. (이는) 장군의 위력에 의택해 행해지는 마을의 의례이자 풍어와 고깃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굿이었다”며 “비명횡사한 장군에 대한 민중적 해원이 죽음을 야기한 청나라와 조선의 건널목인 서해에서 조기잡이 신으로 신격화됐음을 민중이 어떻게 인격신을 형성해 나갔는가 하는 단서가 된다”고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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