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부담금 구상금액 대폭 상향
마약·약물 운전 가해자도 추가
과실 비율따라 분담하던 수리비
12대 중과실 가해자는 청구 못해
지난해 9월 인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치킨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사망케 해 국민적 공분을 부른 음주운전 사고로 보험금이 2억7000만원 지급됐다. 하지만 사고를 낸 A씨가 낸 사고부담금은 겨우 3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달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마약으로 인한 환각상태에서 운전 중인 차량이 승용차 2대를 들이받고 과속으로 도주하다 7중 연쇄 추돌사고 유발했다. 보험사는 이 사고의 9명 중경상자 등의 손해배상을 위해 약 8억1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으나 가해 운전자가 낸 사고부담금은 한 푼도 없었다.
앞으로는 이 같은 음주운전이나 무면허·뺑소니, 마약·약물운전 사고의 경우 가해자가 지급 보험금 전액을 물어내야 한다. 운전자의 중대 위반행위에 대한 책임부담이 대폭 강화돼 교통사고를 사전에 억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 후속 조치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국토부는 우선 음주운전·무면허·뺑소니 사고의 경우 보험사가 피해자 등에게 지급된 보험금 전액을 가해자에게 구상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사고부담금은 중대 법규 위반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보험금 일부를 구상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다만 실제 운전자가 내는 부담금이 적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음주운전에 대한 사고부담금을 의무보험의 경우 대인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대물 1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앞으로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을 통해 사고부담금 상한을 아예 ‘지급된 보험금 전액’으로 규정된다.
현행 사고부담금 적용 대상에 ‘마약·약물 운전’도 추가된다. 마약 등에 취해 운전하는 것도 음주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국토부는 무면허, 음주 운전, 신호·속도 위반, 중앙선 침범, 스쿨존 위반, 앞지르기 위반 등 12대 중과실 사고 시 가해자의 차 수리비를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한다. 그간 차대차 사고 시 물적 피해는 과실비율에 따라 책임을 분담했는데, 음주운전 등 상대방이 명백한 과실을 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상대방 차량의 수리비를 보상해야 하는 문제와 가해차량이 고급차인 경우 오히려 피해자가 배상해 줘야 하는 금액이 더 큰 문제 등이 논란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한 고속도로 IC 부근에서 직진 중이던 A씨의 차량과 차선변경 중(앞지르기 위반)이던 B씨의 고급 외제차 간 접촉사고의 경우 A씨의 과실은 30%로 상대방에 비해 적었으나, A씨의 보험사가 지급한 B씨 차량의 수리비는 595만원이었다. 반면 B씨의 보험사가 지급한 A씨 차량의 수리비는 45만5000원에 그쳤다.
음주운전 등 사고부담금 강화와 마약 등 사고부담금 적용 대상 추가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 시행될 예정이다. 12대 중과실 사고 시 가해자의 수리비 청구 제한은 올해 상반기 안으로 관련 법령 개정안 발의가 추진된다.
김정희 국토부 자동차정책관은 “이번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은 음주운전 등 중대한 과실에 대한 운전자의 책임을 높여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했다”며 “교통사고 감소에 기여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꾸준히 발굴·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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