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글씨인 듯 그림인 듯… 전통서화가 주는 감동

입력 : 2021-03-26 06:00:00 수정 : 2021-03-25 20:42:2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화가의 글씨, 서가의 그림’

김광업·최규명·중광·이응노·한묵 등
전통서예를 토대로 서양미술 수용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세계 구축

단색화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대에
‘진정한 한국미술은 무엇’ 질문 던져
중광 ‘달마(達磨) 살불살조(殺佛殺祖)’(1986)(왼쪽), 최규명 ‘요산’

“나는 어릴 적부터 서예와 문인화를 그려왔기 때문에 그 경험으로 말한다면, 서예의 세계는 추상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서예에는 조형의 기본이 있어요. 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설정, 새하얀 평면에 쓴 먹의 형태와 여백과의 관계, 그것은 현대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조형의 기본인 것이지요. … 한자는 원래 자연물의 모양을 떠서 만든 상형문자와 소리와 의미를 형태로써 표현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자 그 자체가 동양의 추상적인 패턴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 그러니까 내 경우에 추상화로의 이행은 書(서)를 하고 있었던 것, 그것으로부터의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1904년에 태어나 1989년 세상을 떠난 이응노는 1924년 서울에서 묵화를 시작하고 일본에서 서양화 기초를 익히며 기량을 넓혔다. 광복 직전 전통회화의 새로운 방향 탐구를 위해 단구미술원을 조직하고 조선미술가협회를 이끌기도 했다. 현대적 수묵화로 창작성을 시도하며 현대적인 작가상을 확립해나갔다. 국제적 주목을 받으면서도 실험적 조형행위를 펼쳤고 동양적 정신성을 창조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말에는 서구 미술에 휩쓸리는 세태에 거리를 두면서도 한국 미술을 현대화하려 했던 거장의 사상이 담겨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김종영미술관이 개관 20년을 맞아 ‘화가의 글씨, 서가의 그림’ 전시를 최근 시작했다. 1900년대 초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어내고 해방 후 한국미술에 서양의 외피만 씌우려 하지 않으면서도 주체적으로 한국미술을 현대화하고자 했던 이들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전시 제목처럼, 서화 전통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고유한 미감을 찾고자 글씨를 쓴 화가, 그림을 그린 서예가들의 이야기다.

김광업 ‘자강불식’(왼쪽), 한묵 ‘비도’

세 전시실에 걸쳐 관람객을 맞는 이들은 서예가로 국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김광업과 최규명, 걸레 스님으로 알려진 시인이자 서화가 중광, 동양화가로 서예에 정진한 이응노와 황창배, 미술가로 서예에 정진한 곽인식·김종영·한묵, 서예에 정진하지 않았으나 그 미감을 보여주는 김환기·정규·백남준이다. 비디오아트로 유명한 백남준, 전면점화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 김환기 등에게서도 우리가 몰랐던 전통 서화의 미감을 발견하다 보면 어느새 감동에 젖어든다. 전시장 곳곳에서 보이는 이들의 어록엔 치열한 고뇌의 흔적이 담겼다. “서양의 룰로 이길 수 없다면 그 룰을 바꿔라”고 한 백남준, “내가 완당을 세잔에 비교한 것은 그의 글씨를 대할 때마다 큐비즘을 연상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김종영 모두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20세기 한국미술사 기술을 돌아보고 화두를 던진다. 특히 1958년 앵포르멜(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의 출현을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묻는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단색화’가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소비되는 것을 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되묻게 된다”며 “기존 20세기 한국미술사를 어떤 관점에서 기술할 것인가로 귀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문제의식을 설명했다.

황창배 ‘무제’ 김종영미술관 제공

그는 이번 전시 초대작가들에 대해 “서양의 추상미술을 서화 전통에서 사의(寫意), 즉 뜻을 그리던 전통을 토대로 대등한 입장에서 비교하고 분석하며 받아들였다. ‘어떻게’에 만 관심을 두고 서둘러 서구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따라가려는 세태와는 정반대로, ‘왜’와 ‘무엇을’ 질문하며 끊임없이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며 자기화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지향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최우선 과제”라고 덧붙였다. 다음달 25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