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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젠더 문제 등 사회 현안 실감있게 작품에 담다

입력 : 2021-02-24 03:00:00 수정 : 2021-02-23 20: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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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로 첫 소설집 펴낸 이현석 작가
현직 의사 출신으로 첫 소설집을 상재한 이현석 작가는 “사실관계를 파고들어 실감 있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며 “퇴근하고 힘이 조금 남는 날이나 주말 등을 활용해 조금씩 쓴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다시 “진료실에선 의사와 환자로서 온전히 보는 게 좋다”며 정면이 아닌 옆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자음과모음 제공

“사회적으로 큰 사건들이 매일 발생하는데, 그 가운데 제 개인에게 가깝게 다가오거나 당면한 문제와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경우 소설로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소설가 이현석(37)은 최근 펴낸 첫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자음과모음)에서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흥미진진한 인물과 스토리로 잘 풀어냈다고 칭찬하자, 겸손하게 말했다.

“일부러 사회적 이야기를 쓴다기보다 그것도 결국 개인이 당면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쓰는 것이죠. (사회적 이슈를) 좀더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제가 공력이 짧아, 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요.”

실제 소설집에 담긴 표제작 ‘다른 세계에서도’와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참(站)’을 비롯해 8편의 단편 소설은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다룬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일치 결정’을 배경으로 낙태 및 낙태 금지의 윤리성을 묻거나(‘다른 세계에서도’), 동성애 문제를 배경으로 사건의 재현 문제를 다룬다(‘그들은 정원에 남겨두었다’). 치매와 트라우마 문제(‘라이파이’), 직감과 시스템의 긴장 및 전염병 문제(‘부태복’), 변호사들의 일과 사랑을 배경으로 사랑의 계급성 문제(‘컨프론테이션’) 등 작품마다 2, 3개의 중첩된 사회적 문제를 포획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소설이 “새로운 계보의 리얼리즘을 촉발할 것”이라는 소설가 박민정의 전망은 타당하다.

이 작가는 그러면서도 개인의 내면 이야기를 쓰는 많은 작가들에 대해 “개인의 내면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감정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니까 그런 이야기 자체가 매우 사회적 소설, 공명하는 소설”이라며 “그들 역시 사회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지지를 보냈다. “내면에 천착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사회적 구성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를 예민하게 보고 있는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1984년생 현직 의사 출신인 그는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지난해엔 ‘젊은작가상’을 거머쥐었다. 놀랄 만한 문학적 항해를 시작한 그를 22일 서울 합정동 자음과모음 사무실에서 만났다.

―표제작 ‘다른 세계에서도’를 보면 낙태 및 낙태 금지의 윤리성 문제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데,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낙태 문제를 다룬 것인가.

“저는 ‘현장에서 경험한 건 써선 안 된다’는 주의이고, 산부인과 의사도 아니다. 헌재의 낙태죄 위헌 결정을 앞두고 주변 동료 의사들과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고민하게 됐다. 현장에서 비롯된 내용은 많지 않다. 다만 의학 지식을 사용하니까 실감으로 다가온 게 있지만, 소설 ‘그들은 정원에 남겨두었다’에서 밝혔듯이, 제 자신의 현장과 선은 긋고 창작을 해야 한다.”

‘라이파이’에선 치매에 걸린 주인공 조한흠이 어릴 적 봤던 SF 만화 라이파이에 빠져들고 이런 아버지를 보호하는 아들 영우가 초원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소설 마지막에 조한흠이 돌려차기를 시도하는데, 그 의미를 조금 설명해 달라.

“그것이 실패가 됐든 성공이 됐든,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돌려차기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과거에 외면했던 것을 털어내기 위해 시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닌가. 많은 이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돌려차기를 통해 한 번이라도 자신의 정의를 이루려 하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 평론가가 ‘영웅 서사’도, ‘반영웅 서사’도 아닌 ‘미(未)영웅 서사’로 조한흠을 호명했는데, 공감한다.”

‘부태복’에선 북한 의사 출신 부태복이 임진강을 건너 귀순한 뒤 의료현장에서 남한 의료 시스템과 미묘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도 다뤄진다.

―부태복의 직감에 의한 의료와 양진석의 이성과 시스템 의료가 대비되는데, 두 영역이 부닥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탈북한 북한 출신 의사들도 남한의 현대의료를 하는 분들이다. 소설에선 부태복을 좀더 극화한 것이다. 그는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는 병을 경험한 것인데, 동료가 그런 얘기를 한다면 처음 쉽사리 믿긴 어려울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건 알 수 없어, 전문가이더라도 기존 지식체계에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사들이 소설 속 양진석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모든 의사의 문진이 결코 직관만은 아니다. 당연히 문진, 진찰 등은 많은 경험과 다양한 수치나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종합적 통합적으로 판단한다.”

―‘부태복’은 2018년 12월 발표됐는데, 놀랍게도 1년이나 앞서 코로나 창궐을 예견했는데.

“의료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생기면 문제가 될 수가 있다는 경고가 누적돼 왔었다. 북한에서도 사스가 창궐했을 때 정확히 진단이 되지 않은 채 유행이 지나갔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사스 비슷한 것을 상정하고 글을 썼다.”

―작품 ‘컨프론테이션’은 30대의 이정민과 김한서 두 변호사가 미술 작품을 배경으로 법조와 사랑, 젠더 문제를 유려하게 풀어냈다.

“사랑의 계급성이나 시장화된 이성애를 생각하며 썼다.(이와 관련, 그는 책 뒤편에 에바 일루즈의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와 ‘사랑은 왜 아픈가’ 등을 바탕으로 했다고 적었다.) 둘은 이미 어느 정도 축적 기반을 가진 30대 중반으로, 이쯤 되면 순수한 사랑이 남아 있다기보다 서로 계산적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젠더 위계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의사나 연구자, 변호사, 조교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어서 더 풍성한 느낌인데.

“오히려 제 한계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저로부터 멀어지고 타인으로 이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르인데, 저는 아직까지 지근거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저는 오히려 변두리와 변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제가 지근거리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는데, 앞으로 계속 멀어지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소설가 조해진은 “크고 높은 고민을 하는 그의 인물들은 비록 고독하겠지만 우리가 거의 잊었거나 잊을 뻔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아름답다”고 상찬했다. 요컨대, 젊은 작가 이현석의 소설은 입체적인 인물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잘 교직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질문을 호소력 있게 던지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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