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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입력 : 2021-02-20 03:00:00 수정 : 2021-02-19 20: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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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퇴치·생활수준 향상 가져온 세계화
빈곤의 해결사이자 착취 조력자 ‘두 얼굴’
값싼 원자재·노동력 환경에 ‘착취 허브’ 조성
일자리·외화 절실한 빈국들 덫에 걸려 허덕
자율권 지닌 개인들 자각… 곳곳 저항운동
호화유람선 같은 세계화 어두운 이면 고발
“세계화 스톱” 내걸며 트럼프 등장 한 흐름
지구촌이 맞닥뜨린 위기들 생생히 짚어봐
이스라엘 언론인인 나다브 이얄은 미국인들의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내며 대통령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이 세계화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현상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리볼트/나다브 이얄/최이현 옮김/까치/2만1000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번영은 자유시장 체제의 확립, 무역 장벽의 철폐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화 덕분이었다. 값싼 수입품이 늘면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해 생활수준도 향상됐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일자리는 크게 줄었다. 미국을 풍요롭게 한 세계화는 많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화의 흐름을 멈추겠다고 공언했다. 허황된 것이었으나 미국인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했고,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다른 나라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였다.

“트럼프가 어떤 광범위한 현상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 현상은 2016년과 2020년 대선 이전부터 존재했다.”

트럼프가 대변하는 광범위한 현상이란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언론인인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저항의 양상을 일자리를 빼앗긴 미국의 광부들, 아테네 외곽의 무정부주의자 집단,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의 어느 마을 등에서 다양하게 읽어낸다. 이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밀실과 기관실, 그리고 갑판 아래에 불편한 진실을 숨겨놓은 호화여객선”과 같은 세계화의 명암이다.

세계화는 극심한 빈곤을 퇴치했고, 생활수준 전반을 향상시킨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경제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20세기 전까지 적어도 인구의 84%가 날마다 생존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극빈자”였다. 인류 역사에서 가난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으로 간주되었고, 엘리트 집단은 이런 생각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계몽주의의 대두로 상황이 바뀌었다. 계몽주의는 과학혁명의 가치를 보호했고, 덕분에 산업혁명도 일어났다. 그렇게 덩치와 실력을 키운 산업과 자본은 세계화를 발판으로 세상을 누비게 됐다.

나다브 이얄/최이현 옮김/까치/2만1000원

세계화는 또 사상의 공유를 확대했다. ‘재스민 혁명’이라 불린 2010년 튀니지의 민주화 혁명은 이듬해 중국에서 일어난 정치개혁 요구 시위에서 재스민을 나누어주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산업혁명과 뒤이은 세계화는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었고, 최초로 대부분의 인간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빈곤의 해결사’ 역할을 했으나 동시에 ‘착취의 조력자’이기도 하다. 세계화로 인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하고, 약소국의 지도층이 폭력을 동원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과 계층을 착취”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건 명백하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착취의 허브’라는 말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아시아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유럽과 미국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저개발국의 느슨한 규제 기준을 이용한다. 또한 저렴한 노동력, 현지 소비시장의 독점… 등으로 착취 허브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곳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환경오염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바로 이런 특징이 국내외 투자자들을 착취 허브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외화와 일자리가 절실한 빈곤국이 그 덫에 걸린다.”

이런 상황은 국가 간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국가 안의 중심부-주변부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자 중국 정부는 다수의 공장을 베이징시 밖으로 이동시켰다. 공장이 이전해 간 가난한 시골 마을의 오염도는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며, 주민들은 정치적으로 힘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겪는 곤경 역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세계화는 개인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자율권을 준다. 저자는 “결국 (세계화로 인한) 착취 허브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율권을 가진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전례없이 세상이 연결되고 글로벌 의식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 단체나 기업도 영국과 동인도 회사가 (세계화의 과정에서 중국에 아편 판매를 강요하며 일어난) 아편전쟁 당시 저질렀던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1960년대 말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구리와 금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형 합작회사인 리오 틴토의 착취에 시달리게 된 남태평양의 부건빌 섬은 구체적인 사례이다. 채굴이 시작된 뒤 일어난 사회적 갈등, 환경 훼손, 개발 이익의 유출 등에 큰 불만을 가졌던 주민들은 수년간의 투쟁 끝에 승리를 쟁취했다. 이들이 얻어낸 평화조약에는 “자기 결정권과 섬의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저자는 “착취의 허브들은 신속하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기업과 국가기관들은 그들이 끼치게 될 폐해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 지역을 필사적으로 찾아나선다”면서도 “착취 허브의 수명은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의 경각심이 커지고 지역의 자율권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착취허브가 오래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책을 번역한 최이현은 “저자는 세계화의 이면에 숨겨진 암울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세계화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세계화가 가져다준 혜택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세계화로 인해 인간의 조건이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되었다는 점은 사실이며,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나 극우 세력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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