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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악순환 끊어야"… 산안법 양형기준 대폭 강화

입력 : 2021-01-13 06:00:00 수정 : 2021-01-13 07: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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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탁금 이유 형량감경 없애고
반복 사고 땐 가중처벌 권고

중대재해법 유예공백 사라져
소상공인들 처벌 강화 소지도

재계 “기업·인재유출 부작용”
민노총 “집유 여전히 가능” 비판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이 대폭 올라 사실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에 준하는 수준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반복되는 산업재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여론과 중대재해법 통과를 고려해 형량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우려의 입장을 냈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위는 전날 107차 회의를 열어 형법상 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 피해 규모가 크고 반복되는 사고에 대한 형량이 대폭 늘었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숨진 경우 권고 형량 범위를 기존 징역 10월∼3년 6개월에서 2∼5년으로 대폭 상향했다. 죄질이 좋지 않은 경우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까지, 다수범이거나 5년 내 재범을 저지른 경우에는 최대 징역 10년 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대법원은 “사고 반복성과 규모를 주요 양형 사유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뿐 아니라 도급인에게도 산안법이 적용된다.

 

양형위는 또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인자에서 ‘상당 금액 공탁’을 감경인자에서 제외해 공탁을 이유로 감형할 수 없도록 했다. 사고 책임을 금전적으로 대신하는 사후 수습 관행을 없애고 사업주가 사전에 사고 예방에 힘쓰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와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에는 형을 가중하도록 했다. 사고가 반복되거나 피해 규모가 크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자수나 내부고발을 통해 범행 전모를 밝히는 데 기여한 경우 특별감경인자로 정했다. 기업 담합을 가장 먼저 신고한 기업에 한해 처벌을 유예함으로써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리니언스 제도’처럼 안전사고를 낸 범죄 관련자들의 수사협조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양형위의 산안법 형량 강화에는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까지 발생하는 상당한 시간적 공백을 메우는 취지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중대재해법은 법 공포 1년 뒤 시행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 유예를 뒀다. 법조계는 산안법 형량 강화로 중대재해법의 3년 유예 공백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3년 유예를 둔 중대재해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계는 중대재해법 통과에 이어 형량 상향 조치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안전사고를 막으려면, 단순히 기업인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기반을 갖추고 오랜 시간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 문제”라면서 “단시간에 효과를 내려고 기업의 경영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1년 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데 바로 산업안전보건법 처벌수위까지 끌어올리면, 경영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해외 선진국보다 수위가 높은 편인데, 기업이나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소상공인들이 산업안전법으로 강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산안법상 지켜야 할 의무가 1000개가 넘는 상황에서 양형기준까지 강화돼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은 대표가 모든 업무를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이 나쁘거나 과실로 직원이 사망하는 경우 산안법과 중대재해법에 의해 모두 처벌받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노동계는 다른 이유로 양형위 조치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논평에서 양형위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본 범죄의 징역 형량도 1년∼2년 6개월로, 여전히 전체 형량에 대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재를 낸 사업주의 다수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오는 현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징역 3년 이하의 형량은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다. 노동계는 산재 사건 피고인이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도 양형 기준 상향 조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한다. 민주노총은 “실제 재판에서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택하면 그만”이라며 “(이런 경우) 오늘 발표한 양형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창훈·박세준·권구성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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