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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Y 평·범·해·야 산 다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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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1-10 09:48:01 수정 : 2023-12-10 15: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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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제임스 본드’는 없다
유능한 스파이들 평범·성실함으로 위장
브란트 구서독 총리 실각시킨 귄터 기욤
위장근무하며 매일 새벽 출근 신임 얻어
배신·역정보 등 얽히면서 위험하고 냉혹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 땐 목숨 위협
이중생활로 항상 고독감·스트레스 시달려
조국 배신하고 적국 위해 일한 스파이도
냉전시대 ‘이중 스파이’ 블레이크 대표적
일부는 죽은 뒤에도 신원 수수께끼로 남아

“The name’s Bond. James Bond.”(이름은 본드요. 제임스 본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캐릭터로 꼽히는 ‘007’ 제임스 본드는 적국 한복판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다. 최고급 정장과 명품 시계를 착용한 채 카지노에 들어가 포커를 하고 특급호텔에 투숙한다. 능란한 말재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악당들을 화려한 액션으로 제압한다. 하지만 스파이의 실제 모습은 제임스 본드와는 거리가 멀다. 냉전시대 전설적인 이중 스파이로 알려진 조지 블레이크의 최근 사망을 계기로 스파이 세계를 들여다봤다.

 

◆평범함을 가장했던 스파이

스파이 세계는 잠입과 배신, 정보와 역정보가 얽히면서 피를 부르는 위험한 곳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위장이 필수다. 전문가조차 속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다.

1940년대 영국에 첩보망을 구축, 기밀을 빼냈던 러시아 군사정보국(GRU) 요원 루스 쿠친스키는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로 위장했다. 그녀가 수상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영국 경찰은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초라한 주부의 모습을 한 그녀에게 감쪽같이 속았다. 현대 방첩조직에서 스파이 색출 작업을 벌일 때, 가장 스파이답지 않은 사람을 먼저 의심하는 이유다.

스파이는 성실한 ‘일꾼’처럼 보인다. 빌리 브란트 구서독 총리를 실각시킨 구동독 스파이 귄터 기욤은 브란트의 비서로 위장근무하면서 매일 새벽에 출근했다. 빵집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서 직접 끓인 커피와 함께 브란트의 책상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성실하게 근무했다.

 

스파이는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체포돼 처형되거나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조차 사귈 수 없다. 친구가 없으니 견딜 수 없는 고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중생활에 따른 정체성 혼란도 겪는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돌출 행동을 저질러 스스로를 파멸시킨 스파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특급 스파이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 대가로 자신의 명예, 지위 또는 목숨을 내놓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

엘리 코헨. ‘전설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이스라엘 최고의 스파이다. 1957년 이스라엘군 정보기관에 들어간 그는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로 자리를 옮겼다.

 

시리아에 침투할 요원을 찾던 모사드는 인간적인 매력과 자신감을 겸비한 코헨을 발탁, 카말 아민 타베트라는 시리아 사업가로 위장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리아 거주민 사회에 침투하도록 했다.

수시로 파티를 열어 시리아인들의 환심을 얻은 코헨은 이를 기반으로 1962년 시리아에 입국했다. 코헨은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사치품 등을 시리아 정치인과 군인들에게 주며 호감을 얻었다. 이를 통해 국경지대 병력배치도 등을 포함한 기밀정보를 대량 확보했다. 하지만 시리아 정보기관의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1965년 체포, 교수형을 당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 러시아 GRU 스파이로 활동했던 리하르트 조르게는 일본 활동을 위해 1932년 독일에 침투, 열렬한 나치주의자로 행세하며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독일 언론사 특파원 자격으로 1933년 일본에 도착한 뒤 1941년 체포될 때까지 3만 건에 달하는 기밀을 빼돌렸다.

죽은 뒤에도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스파이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건국 전인 1930년대부터 군과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던 이스라엘 비어는 러시아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1961년 체포됐다. 그의 행적을 역추적한 모사드는 자신들이 비어라고 생각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비어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1966년 감옥에서 병사했다. 그의 정체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스파이를 주무른 사람

제임스 본드의 상관 ‘M’처럼 배후에서 스파이를 지휘하는 고위 간부도 스파이의 범주에 속한다.

30여년간 구동독 해외정보기관장을 지냈던 마르쿠스 볼프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공적을 세운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스파이들은 의회, 정보기관, 행정부 등 구서독 내 모든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기밀을 빼냈다. 중년의 여비서들에게 영화배우처럼 외모가 준수한 남성 공작원들을 투입한 ‘로미오’ 작전 덕분이었다. 유혹에 성공한 공작원들은 여비서들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기밀 서류를 가져오게 한 뒤 카메라로 촬영, 본국에 보냈다.

볼프가 구서독에 침투시킨 공작원은 3000여명. 이들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서방 측 정보기관의 구동독 침투 시도도 분쇄하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공산권 정보계 맏형인 KGB도 볼프의 전략을 인정할 정도였다.

마르쿠스 볼프

볼프가 정보수집 분야를 대표한다면, 메이어 다간은 비밀공작에서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부터 이스라엘 내 특수전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2002년 모사드 국장에 취임, 아랍권을 상대로 비밀공작을 벌였다.

2004년 9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하마스 간부인 이즈 엘딘 알쉐이크 칼릴이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2008년 8월 시리아 서부 지중해 연안 도시 타르투스에서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군사 보좌관 무하마드 술레이만 장군이 별장 앞바다를 지나가던 요트에서 발사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다간이 이끄는 모사드는 “지도상에서 이스라엘을 없애버리겠다”고 공언하던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과학자 암살, 시설 파괴 등 비밀공작을 잇따라 감행, 이란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집트 신문 알 아흐람이 2010년 “다간이 없었다면 이란의 핵무기는 이미 완성됐을 것”이라며 “다간은 이스라엘의 슈퍼맨”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조국을 배신한 스파이

스파이라고 해서 애국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일한 스파이도 많다. 이들의 활동은 다른 스파이들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달 러시아에서 98세의 나이로 숨진 조지 블레이크는 냉전 시대 전설적인 이중 스파이다.

 

블레이크는 1950년대 영국 정보기관 요원으로 일하면서 9년간 러시아에 기밀정보를 전달하다가 체포, 4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0년부터 영국 감옥에서 복역하던 그는 1966년 탈옥해 러시아로 도주하는 전설을 남겼다.

1948년 서울에 영국 해외정보국(MI6) 한국 지부를 개설했던 그는 6·25전쟁 당시 공산군에 체포돼 만주로 끌려갔다. 이후 공산주의로 돌아선 블레이크는 1953년 귀국 직후부터 체포될 때까지 500여명의 서방 측 스파이 신원을 노출시키고, 그중 42명의 목숨을 잃게 하는 정보를 누설했다.

1939년 MI6에 들어가 30년 가까이 기밀정보를 러시아에 유출한 킴 필비는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MI6에서는 유능한 요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40년대 말 미국 워싱턴 주재 MI6 미국 지부 조정관으로 일하면서 입수한 알바니아 공산당 타도 공작 정보를 러시아에 넘겨 알바니아인 수천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1985년 러시아에 포섭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올드리치 에임스는 금전적 문제로 조국을 배신, 러시아 내 미국 정보망을 무너뜨렸다. “CIA 역사상 에임스보다 큰 피해를 입힌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2001년 체포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로버트 한센은 15년에 걸쳐 기밀정보를 러시아에 넘겨 미국의 대러시아 방첩 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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