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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만난 치매 엄마의 밥타령
의식 초월한 자식 사랑 나타내
박희병 선생 '노모의 말' 기록
투박한 그 말이 지독하게 그립다

엄마가 묻고 아들이 답한다. “밥은 묵었나? //예.” 엄마는 구순의 고령인 데다 말기암 환자이자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기력도 쇠하고 말도 잘하지 못하며 호스피스 병원에서 투여하는 향정신성 약물 때문에 수시로 혼돈 상태에 빠져 버리는 상황에서도 아들을 보면 느닷없이 밥을 먹었는지부터 물어본다. 하루 한 번 쓱 왔다가 가버리는 의사나 간병인들은 이 말을 횡설수설의 일종으로 이해한다. 두서없고 맥락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이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다. “니가 요새 마이 말랐다./ 밥은 묵나?” 혹은 “밥맛 없으면/ 물에/ 말아 무라.” 등으로 변주되는 엄마의 ‘밥’ 이야기는 그녀가 아직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찰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전해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 아들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우리 시대의 탁월한 한문학자인 박희병 선생이다. 선생의 어머니는 2018년 10월부터 와병 생활에 들어가 다음 해인 2019년 10월 24일 세상을 하직하기까지 일년여 동안 몇 군데의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세상과 이상한 (불)소통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그동안 ‘휴업’을 하고 어머니 간병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명치료를 하지 않되 고통을 완화하면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현 호스피스 의료의 실상을 비교적 자세히 접하게 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에 이른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이 그것이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질문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인간다운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도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다움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로 죽기를 원한다. 그런데 100세 시대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그것은 가능한 꿈일까? 이 책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주체성을 더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우리의 존재 조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시간에 우리의 생명을 타인의 선택에 의지해야 하는 순간, 나의 인간적 존엄은 어떻게 영위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과 더불어 가장 취약한 영역이 되어버린 노년의 삶을 생각할 때 이 질문은 더 방관할 수 없는 화두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어느 누가 여기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을까. 다만 박희병 선생의 간병 경험을 통해 하나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볼 뿐이다. 선생은 어머니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주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지만, 그것은 너무 얇고 작아서 주체성 없음과의 경계를 수시로 오가는 것이었음을 밝히며 “가족의 이해와 협조, 세심한 판단이 없다면, 의사와 간호사의 윤리의식과 헌신적 보살핌, 전문적일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정위된 의료행위가 없다면, 간병인의 주의 깊고 적절한 돌봄이 없다면, 호스피스 의료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뒷받침과 배려가 없다면” 불가능했으리라고 결론을 내린다. 말하자면, 그 얇고 작은 최소한의 존엄을 위해서도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조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제를 환기하는 공적 담론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엄마와 아들의 사적 기록에 가깝다. 나는 최근 어떤 책에서도 이보다 더 극진한 사랑의 경지를 만나본 적이 없다. 소위 치매 상태의 엄마가 두서없이 던지는 말이나 표정, 손짓을 통해 엄마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갖가지 기억의 저장고를 뒤져 소통의 맥락을 재구성해내는 선생의 안간힘은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아팠다. 어떤 책은 너무 깊은 감동을 주다 못해 우리를 아프게 한다. 감동이 정서의 영역이라면 아픔은 감각의 차원일 것이다. 이 경우 더 강렬한 쪽은 아무래도 감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희병 선생의 이 책이 나에겐 그랬다. 오랜 서울살이로 잘 드러나지 않던 엄마의 경상도 사투리가 와병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발화되는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엄마의 말’은 비단 선생의 어머니에 그치지 않고 나의 어머니의 그것으로 중첩되며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밥은 묵었나?” 저 말이 지독하게 그립다. 복음이 무엇인지 알겠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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