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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노동자 삶 뿌리째 흔들…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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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2-13 10:00:00 수정 : 2020-12-10 0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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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 빈번
기후이변 삶과 밀접해 생계 위협
농·수산업 등 취약계층은 더 민감

시민단체들 “먼 미래 목표만 세워
정부·정치권 눈앞의 과제 직시해야”
대한민국 상대 인권위 진정 예고
지난달 19일 멸종반란한국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탄소중립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멸종반란한국 제공
탄소중립 대책 촉구 목소리 확산 “지금 당장 급진적 탄소 감축에 나서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는 급박한 기후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당장 급진적 탄소 감축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위한 공청회가 열린 지난달 19일 비폭력 시민불복종 환경운동 네트워크인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들이 낸 목소리다. 이들은 자전거 자물쇠로 국회 정문에 자신들의 목을 묶는 퍼포먼스까지 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적극적인 탄소중립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정부의 무대응과 무책임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고 우리의 목을 조이는 행위와 다름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했다”고 전했다.

멸종반란은 2018년 10월31일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인데 세계 각국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27개국 60개 도시에서 멸종반란에 참여한 시민들이 도로와 교량, 광장을 점거한 후 기후위기에 맞서 긴급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기후위기 주범인 재벌을 살리기 위한 ‘경제성장’과 고탄소 산업·에너지 구조의 존속에 우선순위를 둔 채 2050년이라는 먼 미래의 탄소중립 목표만 세우며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나중 문제로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후위기에 가장 크게 영향 받는 노동자, 농민, 지역주민 등 취약계층이 주체로 나서 문제 해결을 모색할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폭염과 장마, 겨울철 고온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닥친 문제가 됐다. 기후위기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지만 특히 농민·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피해가 크다.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 차원에서 보고, 정부와 기업이 적극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후위기는 인권 문제”… 인권위에 진정서 제출

시민단체 녹색연합과 녹색법률센터, 다산인권센터, 사단법인 두루, 청소년기후행동 등 6개 단체가 모여 만든 ‘기후위기 인권그룹’은 기후위기로 피해 본 농민, 노동자 등의 인권침해 사례를 모아 오는 16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계획이다.

인권위 진정 제도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수행 등과 관련해 헌법 제10∼22조에서 보장한 인권을 침해당하거나 차별한 행위로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 국민이 진정을 제기하면, 인권위가 검토 후 관계기관에 정책·관행의 시정 및 개선을 권고할 수 있는 제도다.

이번 진정에 참여한 농민 최창훈씨는 “최근 자연재해로 생산량이 20∼30% 감소하는 등 흉년”이라며 “24절기에 맞춰 농사 준비를 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기후 변동이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2018년에는 비가 한 달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다가 갑자기 폭염이 엄청 심했고, 지난겨울은 너무 따뜻했다. 겨울이 추워야 벌레들이 죽고 병충해 예방이 되는데 제대로 안 됐다”고 전했다.

최씨는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환경오염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을 못하는 사실”이라며 “최근 몇 년 새 이 같은 기상재해로 농작물 재해가 심해졌기에, 가장 큰 피해를 본 농민을 위해서 사회적, 공적 책임 하에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두루 지현영 변호사는 “피진정인인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인들의 생명권, 환경권, 직업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구제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진정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 변호사는 “인권위 권고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행정·입법·사법부의 공적 권위를 가진 문서이므로 사회적 대화를 가속하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를 알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진정 계획에서 피진정인은 대통령과 정부 전체다. 기후위기 인권그룹은 인권위 진정에 동참할 사람들도 모으고 있다. 농민이나 양봉업 종사자, 해수면·수온 상승 등 해양 생태계 변화로 어획량 감소를 겪는 어민이 대표적이다. 또 재난 피해자나 폭염과 한파에도 야외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 쪽방촌과 고시원 거주자,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피해 보는 소비자 등에게도 문을 열어뒀다.

◆기후위기 몸소 느낀 농민·청년들 정부·기업 책임 촉구

기후위기 피해를 체감한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열린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인천 지역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이상범씨는 “건설노동자 평균 연령은 56살”이라며 “건설자본은 공사기한이 걸려 있고 돈이랑 연결되니 정부 권고를 지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기후변화의) 타격이 크다. 올여름에는 두 달 동안 긴 장마로 3주밖에 일을 못 했다”며 “겨울에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는데 혹한 때는 콘크리트가 굳지 않아 다음 일을 진행 못해 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폭염이나 긴 장마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며 기후위기가 원인임을 강조한 뒤 “건설노동자들이 기후위기 영향을 많이 받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막연하다”고 호소했다.

울산에 사는 고등학생인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내 미래에 기후위기가 존재한다면 행복할 수 없겠구나, 매일 생존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우울하게 지냈다”고 소개하며 학교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활동가는 “학교에서는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플라스틱 줄이기, 분리수거 잘하기 등 개인적 실천만을 강조해 우리 세대의 문제가 아닌 100∼200년 후의 일이라고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여기는 것은 기후위기 피해를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본다는 것”이라며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화석연료 기업이나 국가에 대해 분노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기후인권 감수성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도 “정부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기후변화는 현재와 미래의 모두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면서 “이 피해는 특정 집단에 더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농·수산업 종사자는 물론 소외·취약계층, 차별을 당하는 이들에게 기후변화는 더 큰 피해로 다가올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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