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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약으로 키워진 돼지·소·닭… 끊어진 ‘먹거리 사슬’

입력 : 2020-12-05 01:00:00 수정 : 2020-12-04 18: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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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농민, 전체 인구의 1%도 채 안돼
농촌의 소읍·카운티 등 역동성 잃어
소수의 대기업들 소비자 선택권 제한
‘먹거리 독점’ 으로 이윤 극대화 추구
‘로컬푸드 운동’ 만으론 해결 어려워
개인 선택 넘어 구조적 변화 시급

푸도폴리(Foodopoly)/위노나 하우터/박준식·이창우 역/빨간소금/2만5000원

 

미국의 한 상징이었던, 건장한 카우보이들이 목장에서 소떼에 올가미를 멋지게 던지는 풍경은 이젠 쉽게 볼 수 없다. 많은 농민이 농촌을 떠나서다. 1935년 미국 인구의 54%가 680만 농가에서 살았지만, 현재 농민 인구는 미 전체 인구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농촌의 소읍과 카운티 등도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농촌을 자양분으로 하는 도시인의 삶 역시 연쇄적으로 무너져갔다. 사료와 약으로 키워진 돼지와 소, 닭 등이 식탁에 오르고, 많은 이들이 영양 과다와 비만으로 힘들어한다. 급증하는 ‘환자’와 거리의 ‘뚱보’들은 먹거리 사슬의 실패를 비극적으로 증거한다. “우리들의 농장을 파괴해 버리면, 우리나라 모든 도시의 거리에서 잡초가 자라날 것”이라는 윌리엄 브라이언의 100여년 전 연설은 묵시록이 돼 갈 조짐이다.

먹거리 사슬로 연결된 농민과 도시인들은 왜 망가져간 것일까. 미국의 먹거리 운동가인 위노나 하우터는 농민이 건강한 농산물을 기르지 못하게 하고 식품점에서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소수 대기업에 의한 먹거리 통제, 즉 ‘푸도폴리(Foodopoly)’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푸도폴리는 ‘푸드(Food)’와 ‘모노폴리(Monopoly)’의 합성어로, ‘먹거리 독점’을 표현한 개념이다. 더구나 금융과 과학, 정치권력마저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푸도폴리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책 ‘푸도폴리’는 우리가 먹는 곡물과 고기, 야채, 우유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불편한 진실을 다양한 사례와 수치, 인터뷰로 서늘하게 보여준다. 먹거리의 역사와 현장 목소리가 풍부한 건 저자가 현재 버지니아주에서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며 먹거리 감시단체 ‘푸드앤워터워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서일 터다.

위노나 하우터/박준식·이창우 역/빨간소금/2만5000원

먹거리 생산의 주도권은 이미 거대 기업이 장악했다. 책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세계 최대 곡물거래회사 카길을 비롯해 타이슨 푸드, JBS, 내셔널 비프는 미국 육우의 80%를 생산한다. 스미스필드와 타이슨 푸드, JBS, 엑셀은 미국 돼지의 66%를 차지한다. 육계 산업도 다르지 않다. 타이슨 푸드, JBS, 필그림스 프라이드, 샌더슨 팜, 콕 푸즈가 미국에서 소비되는 육계의 70%를 담당한다.

먹거리 체계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던 유기농 분야 역시 초대형 회사들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20대 식품 가공업체 중 14개가 유기농 브랜드를 매입하거나 자체 유기농 브랜드를 출시했다. 부유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자사 이미지를 높이려는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유기농 식품의 순결성을 크게 망가뜨렸다.

저자는 미국의 먹거리 사슬이 이렇게 뒤틀리고 망가진 건 ‘수직 통합화’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전통적 개별화 방식과 달리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판매가 몇개의 거대 회사를 통해 수직적으로 이뤄지면서 왜곡돼 버렸다는 거다. 예컨대, 타이슨 푸드가 공장 같은 곳에서 소를 기르고 자체 도살장에서 도살·정육한 뒤 월마트나 맥도날드에 납품하는 식이다.

글로벌 판매 체인점도 먹거리 사슬의 파행을 촉진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 웬디스는 햄버거를 포함한 미국 패스트푸드 판매액의 73%를 차지한다. 특히 전 세계 3만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맥도날드는 단일 구매자 가운데 쇠고기를 가장 많이 구매한다. 1년에 무려 45만4000t을 구매하고 약 13억달러를 지불한다. 이들 체인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며 식품산업을 수직통합시켰다.

특히 먹거리 사슬의 정점엔 대형 유통체인이 자리한다. 월마트를 비롯한 4개 대형 유통체인은 미국의 전체 식료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지배한다.

특히 미국에서 식료품에 쓰이는 3달러 중 1달러를 빨아들이는 월마트는 비용과 책임은 물론 재고관리까지 공급업체에 이전하고, 물류 프로그램을 공유시켜 전체 공급사슬을 좌지우지한다. 많은 식품회사는 물론 생산회사마저 ‘이윤 추구’라는 월마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직 통합화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거대 기업의 전략에 따른 것으로, 맥도날드나 월마트 같은 대형 기업의 요구가 낳은 부조리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은 먹거리를 본질적으로 이윤의 측면으로 본다고 저자는 쏘아붙인다. “대부분 소비자는 먹거리를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하지만 대기업은 우리의 부엌과 이윤 창출원으로 여긴다.”

특히 농업-금융자본-정치권력의 동맹은 수직 통합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들은 소농을 없애고 기업농 중심의 독점 체제로 농업을 바꾸기 위해 돈을 모으고 법을 바꿨다.

공공정책 역시 소수 기업으로 이뤄진 푸도폴리가 먹거리 체계를 지배하도록 돕는다. 과학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수식 통합화에 기여한다. 책을 읽다 보면 푸도폴리 현상은 대한민국에도 상당히 침투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저자는 작금의 ‘로컬푸드 운동’만으로 먹거리 위기와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좋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는 운동만으론 푸도폴리를 해체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완전한 구조적 변화, 즉 개인적 선택뿐 아니라 정치적 변화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푸도폴리가 이미 농산업-금융-정치 권력의 동맹체가 됐으므로 이에 맞서는 운동 또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지금 우리가 힘을 모아서 포크로 투표하기 이상의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먹거리 체계를 바꾸는 일은 정치 행위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정치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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