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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 조작설 주장한 극우
방역 막는 일탈행동 등 부추겨
보수·진보 모두 가짜뉴스 쏟아
과학적 사실 존중 문화 절실해

“정부가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조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극우 성향 인사들이 유튜브나 각종 집회 현장에서 버젓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도무지 믿기 힘든 주장이건만 일부 극우 세력 사이에서는 제법 정설로 통하는 모양이다. 조작설은 그러나 명백한 유언비어다.

이천종 사회부장

코로나19 사태를 수습하면서 신뢰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검사를 조금 하거나 조정하는 것은 방역당국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상원 방대본 진단분석총괄팀장은 “검사의 전 과정은 PCR(유전자 증폭) 기기에 실시간 기록되기 때문에 이를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검체 채취 도구는 무균상태로 밀봉돼 있어 채취 전에 사전조작을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가짜뉴스로 판명났지만 일부 극우 인사들은 정치적 음모론과 뒤섞어 조작설을 퍼뜨린다. 최근 보수 성향의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문재인 대통령이 짜고 코로나19를 퍼뜨렸다”는 글까지 올라왔을 정도다.

 

‘한번 한 거짓말은 거짓말로 보이지만 천 번을 반복하면 거짓말은 진실’이라고 외치던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행태를 닮았다. 거짓일지라도 요점만 되풀이해서 주장하면 우매한 대중을 속일 수 있다던 히틀러의 광기가 아른거린다.

 

문제는 이런 유언비어가 비이성적인 집단, 그들만의 피해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광화문 집회 관련자들에게 코로나19 의무검사를 받도록 했지만 유언비어에 편승한 이들 중에는 당국의 행정명령마저 거부하는 경우가 적잖다.

 

유언비어를 타고 번진 바이러스가 시민의 일상을 앗아가고, 나라의 존망을 흔들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을 초래하고, 방역을 가로막는 일탈행동의 빌미를 준 유언비어는 광화문 주변 식당가를 초토화시켰다. 대기업 공개 채용을 열심히 준비하던 20대 취업준비생의 꿈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물거품이 됐다. 서울 관악구 40대 사장이 전 재산을 쏟아부은 PC방 문은 굳게 닫혔다. 이마저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수준에서 벌어진 사연일 뿐이다.

 

경제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3단계로 넘어가면 우리 일상은 정지되고 일자리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3∼7월에만도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17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한국은행은 정부가 거리두기 격상 등 3단계 강력한 방역조치를 시행하면 국내 취업자 3명 중 1명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우울한 분석을 내놨다. 극우 세력이 그리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과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이다.

 

“페스트는 모든 경제활동을 파괴했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생겨났던 것이다. (중략)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절박하다는 사실을 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자칫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묘사한 ‘공포보다 더 절박한 곤궁’이 현실화할지 모를 일이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확산하면서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각자의 팬덤에 기대, 그들만의 지지자를 자극할 이슈라면 유언비어라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옛 화장실 낙서 수준이라면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제는 유튜버와 페이스북, 트위터를 타고 실시간으로 전파돼 방치하면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든다.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던 ‘호모사피엔스’가 소통을 기반으로 만든 민주주의가 ‘탈진실의 시대’에 흔들리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방역 방해와 가짜뉴스 유포는 공동체를 해치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경고했다. 추상같은 엄정한 법집행이 절실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유언비어 바이러스의 근절은 법집행만으로는 어림없다. 그가 가진 이념에 상관없이 과학적 사실 앞에서만큼은 인정하고 물러설 줄 아는 사회문화를 만드는 것이 백신 개발만큼이나 절실하다.

 

이천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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