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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아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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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06 22:49:23 수정 : 2020-08-06 2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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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없애려면 아픔 다시 거둬들여야
아파도 소명에 전념할 때 비로소 벗어나

“사랑 받고 싶어요.” 오늘 하루 상담을 하면서 서로 다른 세 명의 내담자에게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 모두 건장한 이십대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사랑 받을 만한 조건들을 갖고 있었다. 학벌 좋고 넉넉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또래 사이에서 인기 끌 만한 매력도 많았다. 말솜씨 좋고, 표정이 풍부하고, 외모도 준수했다. 그런데도 “사랑 받고 싶어요!”라며 울었다. 상처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마다의 상처가 있었다. 일하느라 자신을 돌봐줄 시간이 없었고 감정적으로 냉담했던 어머니 때문에, 세속적으로는 큰 성공과 부를 이뤘지만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 때문에, 사춘기 시절 뚱뚱했던 자신을 놀리며 괴롭히던 친구들 때문에 생긴 상처였다. 이 모든 상처가 “사랑 받고 싶어요”라는 호소로 모아졌다. “사랑 받고 싶어요”라는 간절한 바람은 “나는 너무 아팠어요”라는 외침이었다. “또다시 상처 받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절규였다.

면접에서 탈락하고, 직장 상사가 자신의 업무 성과를 비난하고, 첫눈에 반한 연상의 여인에게 작은 선물을 주며 자기 마음을 내보였지만 차가운 말로 퇴짜를 맞고는 “나도 사랑 받고 싶어요”라며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거부당하고 거절당할 때마다 마음의 시계는 휘리릭 하고 상처의 그 순간으로 되감겨 돌아갔다. “그때 충분히 사랑 받았더라면, 이런 일에 무너지지 않았을 거예요. 상처만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자존감 높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라고 하면서.

상처에만 매달려서는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과거로 자꾸 파고든다고 마음의 상처가 낫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묵묵히 그 아픔을 다시 거둬들이는 길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상처의 고통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너무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곱씹어서 단물 다 빠진 껌처럼 되어 버린 과거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로 그려 보는 게 더 중요하다.

과거가 되어가는 현재와 현재가 되어가는 미래에 대한 서사로 마음의 상처를 품고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에 따라 우리는 행동하고 성장한다. 고아처럼 버려지고 상처 받은 아이가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여행을 떠나 장애물을 뛰어넘고 훼방꾼을 무찌르는 동안 전사가 되어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그 신호는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라 고막을 찢는 경적이고 큰 대가를 치러야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상처는 목표를 만든다. 사랑 받지 못한 상처는 사랑 받기 위해 나를 움직이고,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고, 타인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 만큼 나를 성장시킨다.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해진다고 말하지만, 그것보다는 타인을 향해 사랑을 나눠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상처를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소명에 전념해야 마음의 상처가 아문다. 상처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책임을 다할 때 나라는 사람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아프지만) 받아들이고 삶이 던져준 소명에 헌신할 때 마음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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