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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코로나와 새로운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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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03 22:27:27 수정 : 2020-08-03 22: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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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발터 샤이델은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이 이 지역의 ‘불평등’을 완화시켰다고 설명했다. 흑사병 창궐 와중에도 인류의 물리적 인프라는 파괴되지 않고, 인구만 감소했다. 그 결과 유럽의 1인당 평균 생산력과 수입이 늘었고, 토지도 상대적으로 풍부해졌다. 이런 흐름은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소득 불균형을 완화시켰다는 게 샤이델의 주장이다.

21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어떨까.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고 5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 코로나19는 가난할수록 취약한 질병이 되고 있다. 사회 소외계층이 감염병 예방과 관리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고, 팬데믹 전후의 시대 변화에서도 뒤처지고 있다.

권구성 산업부 기자

최근 세계 각지에서는 사회적 약자일수록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미국 뉴욕대 연구팀은 유색인종이 코로나19 감염률과 사망률이 모두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지역의 코로나19 감염률이 백인이 많이 사는 지역보다 8배 높고, 치명률은 9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개인의 소득수준이 코로나19 치명률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연구팀은 보험 유형에 따른 소득수준별 치명률을 분석한 결과 소득수준이 낮은 확진자일수록 치명률이 2.81배 높다고 진단했다.

저소득층만 감염 위험에 노출된 것은 아니다. 국내외 집단 감염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소수자 계층과 맞닿아 있다. 성소수자와 노약자, 유색인종, 외국인 근로자 등 대체로 사회적 편견에 갇힌 이들이 감염병 관리에서도 취약했다. 그 결과 이들은 코로나19 방역망 밖에서 집단 감염에 노출되고, 그것이 새로운 혐오의 이유가 됐다. 기피가 조장한 방치가 또 다른 혐오로 이어진 셈이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코로나19의 감염 원인에 대해 비말 등 직접적 전파 원인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격차와 감염 관계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감염병을 질병관리의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이제는 사회적 관점에서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원인이 실제 발병의 이유가 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가 감염병 이상의 갈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이 감염병이 ‘평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비말로 바이러스에 노출될 경우 누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간이 지나고 감염병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첨단 의료기술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백신이 개발되고 있지만, 개발 단계에서부터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두고 패권 경쟁이 뜨겁다.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항체를 가진 사람에게만 ‘면역 여권’을 허용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번지고 있다. 가난과 편견이 불러온 코로나19의 ‘2차 피해’가 어쩌면 감염병을 능가하는 사회적 질병이자 공포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그것에 이름을 붙인 인간이 불평등을 초래할 뿐이다.

 

권구성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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