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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대한민국의 자살 전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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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23 22:19:19 수정 : 2020-09-03 19: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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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자살 땐 모방자살 44%까지 늘어
미디어, 슈퍼 전파자 되지 않게 보도해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자살로 사망하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노출될 경우, 전체 인구에서 자살률이 높아진다. 베르테르 효과다. 이것을 증명한 연구들이 여러 나라에서 다수 시행되어 보고된 바 있다. 이 연구들을 모아 종합 분석한 결과가 올해 3월 영국의학저널에 실렸다. 텔레비전, 종이 신문, 온라인 신문, 영화나 책으로 유명 인사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난 후 두 달까지의 자살 사망자 수 변화를 관찰했다.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유명인의 자살 사망에 대한 보도는 전체 인구에서의 자살 위험도를 18%나 끌어올렸다. 그 사람이 어떻게 자살했는지 소상히 묘사해서 다루면 그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평균 30%, 많게는 44%까지 치솟는다. 유명인 자살이 모방 자살(copycat suicide)을 불러일으킨다는 확실한 증거다. 일반인 자살 사례는 대중에게 알려지더라도 유명인의 그것과는 달리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

자살은 전염된다. 대중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 자살자가 누구인지, 언론 매체가 자살 행동을 얼마나 자세하게 보여주는지, 그리고 자살의 의미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따라 전파력은 현격히 달라진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자살로 사망한 이를 영웅시하는 보도 행태를 보이면 확산력은 더 강해진다. 대중이 자살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을 약화하고, 행동화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공공 보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해한 보도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1973년에 미국정신의학회지에 실린 한 논문을 보면 신문사가 파업해서 자살 관련 보도가 나가지 못했는데, 그 기간 지역 사회의 자살률이 평소보다 낮았다고 한다.

실업률과 이혼율이 높아지고, 사회 불확실성이 커지면 자살 보도가 대중 정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심해진다. 코로나19로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개인의 심리적 소외 문제가 심각해지면 자살 위험은 더 높아질 것이다. 청소년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고, 행복지수는 가장 낮다. 영상 미디어를 자주 접하거나, 자살 시도 경험이 있거나, 우울증이 있는 청소년은 유명인 자살에 크게 영향받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으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학업 부담은 커졌다. 부모와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갈등이 빈번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명인의 자살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다루는 대중 미디어는 자살이라는 전염 질환의 슈퍼 전파자나 다름없다.

2018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670명, 하루 평균 37.5명에 이른다. 이 수치를 위의 연구 결과에 대입해 보면, 유명인 자살이 대중매체에 대대적으로 노출됨으로써 하루 6~7명의 추가적인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각 나라별로 비교한 자료도 이 논문에 함께 실렸는데, 그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유명인 자살이 알려진 이후 일반 인구에서 발생하는 자살 위험도 증가 폭이 제일 컸다. 유명 인사의 자살로 대한민국 국민이 받는 정서적 충격파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다는 뜻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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