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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진화하는 AI… 인간의 고유 영역 넘어설까

입력 : 2020-07-18 03:00:00 수정 : 2020-07-17 20: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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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접 못할 거라 여겼던 창조력
기계도 알고리즘으로 학습 가능
예술성 갖춘 소설·그림 등 눈길
마커스 드 사토이/박유진/북라이프/2만원

창조력 코드/마커스 드 사토이/박유진/북라이프/2만원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딸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는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배비지의 초기 기계식 컴퓨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찰스 배비지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컴퓨터 개념의 시초자이다. “해석기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해석기관은 스스로 무엇을 창조하지 않는다. 우리가 명령하는 방법을 안다면 이 기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러브레이스는 궁극적으로 기계에는 한계가 있다. 즉 우리가 입력한 것이 이상을 뽑아낼 수는 없다고 믿었다.

이 생각은 오랫동안 컴퓨터 공학의 ‘만트라’(眞言)이자,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작동시키게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막는 보호막이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 인간에게는 동물은 물론 기계가 결코 건드리지 못할 것이란 여겨지는 활동 영역이 있다. 바로 창조력이다. 상상하고 혁신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높이고 넓히고 바꾸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특별한 능력을 말한다.

고흐의 초상화를 보며 죽음을 생각하고 바흐의 ‘푸가’를 들으며 내면의 섬세한 감정 세계를 탐색할 기회를 얻는다. 실제로 이러한 예술 작품은 ‘인간 코드’라 할 수 있는 지극히 인간다움에서 비롯된 일종의 코드가 발현된 결과물이라 여겨져 왔다.

이는 비단 예술의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다. 미슐랭 스타 셰프 헤스턴 블루먼솔의 분자요리, 네덜란드 스트라이커 요한 크라위프의 축구 기교 등 요리, 스포츠, 건축 등 심지어 가장 이성적이라 여겨지는 수학에서도 창조력은 발휘된다.

‘창조력 코드’의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게 된다면 인류의 운명은 인간과 의식 있는 기계가 서로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우리가 기계의 코드를 풀고 기계의 기분을 느껴 보려면 결국 기계의 그림, 곡, 소설, 수학 지식 같은 창조적 결과물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하나 언제부터인가, 인공지능(AI)의 빠른 기술 개발과 함께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러브레이스처럼 기계에서 우리가 입력한 것 이상을 뽑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나 새로운 종류의 알고리즘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바로 데이터와 상호 작용하면서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이제 프로그래머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만든 알고리즘의 의사 결정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은 놀라움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계 스스로 우리가 입력한 것 이상을 뽑아낼 수 있고 점차 더 창조적으로 변해 간다. 이 알고리즘은 딥마인드가 바둑에서 인공지능으로 인간을 꺾을 때 활용했던 바로 그 알고리즘이기도 하다. 새로운 알고리즘이 새로운 기계 학습 시대를 연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가 결코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던 창조의 영역은 어떨까. 컴퓨터가 훌륭한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소설을 쓰거나, 누구나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명화를 그릴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그렇게 탄생한 기계의 창작물과 인간의 작품을 구분할 수 있을까. 극도로 발전한 기계가 결국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예술 속의 ‘창조력 코드’를 배워 진짜 예술과 그저 시시하고 단조로운 것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도 가능한 게 아닐까.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이자 영국왕립학회 회원인 저자는 ‘창조력 코드’에서 창조력의 진짜 의미를 새겨보고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을 고찰한다.

저자는 풍부한 인문·예술 지식은 물론 방대하고 꼼꼼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과 ‘창조력’이라는 과학계의 흥미로운 키워드를 가지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해 나간다.

책에 따르면 더 이상 기계는 하향식 명령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해 나간다. 그리고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다분히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해 왔다. 이세돌과의 두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보여 준 제37수는 바둑의 정수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름답고도는 창조적인 수였다. 인공지능 작곡가인 에미(Emmy)가 발표한 쇼팽풍 곡은 음악 전문가를 충격에 빠뜨리고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계 학습을 통해 문학 창작에 도전하는 보트닉(Botnik)의 새 소설은 ‘해리 포터’ 팬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사로잡았다.

인간의 창조력과 인공지능의 그것은 어떤 차이일까. 현대 추상 회화의 시조인 독일 화가 파울 클레는 “예술의 영역이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기계가 독자적인 의식을 얻기 전까지는 기계의 창조력이 발현된 예술 작품이 아무리 정교하다 한들 그것은 인간의 창조력을 확장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젠가 실제 의식을 가진 기계 문명이 발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의식이 우리의 것과 사뭇 다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파악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그때 기계가 만든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들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인공지능의 의식 세계에 대한 우리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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