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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유리천장’ 깬 슈퍼우먼 “이번 상대는 팬데믹” [나의삶 나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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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18 20:00:00 수정 : 2020-07-18 17: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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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수식어 달고 다닌 화려한 이력…고희 훌쩍 넘기고도 집필 매진
과학분야 노벨상 위해선 기초연구에 투자·지원 늘려야 가능

요즘 서점가에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관련 책들이 봇물을 이룬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팬데믹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만큼 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모두의 관심사다. 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팬데믹과 문명’(까치)은 거대한 주제를 흥미롭게 다룬 책이다. 고대로부터의 인류 문명 중 역병(疫病)과의 투쟁사를 돌아보고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질서 구축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김명자(76) 전 환경부 장관이다. 국민의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으로 ‘최장수 여성장관’ 기록을 갖고 있다. 이후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50년 만의 첫 여성 회장을 맡은 과학기술계의 대표적인 명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8개월 전에도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는 방대한 책도 냈다. 고희를 훌쩍 넘기고도 작금의 이슈인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주제로 잇달아 책을 낸 것이다. 나이를 잊는 집중력이 놀랍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3일 서울 충정로 풍산빌딩에 있는 서울국제포럼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 전 장관은 서울국제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집무실에서 그의 저서 ’팬데믹과 문명’을 든 채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만났다.

-요즘 근황은.

“2월 말에 과총 회장 임기를 마쳤다. 쉬면서 여유를 갖고 싶었는데, 타고난 것이 ‘일복’인 모양이다. 서울국제포럼 회장을 맡아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 서울국제포럼은 1986년에 이홍구 전 총리 등 학계, 관계, 언론계, 경제계 리더들이 설립한 단체다. 원로 석학들과 중견 전문가들이 외교 안보와 더불어 기술외교, 보건, 에너지, 식량, 사이버 등의 어젠다를 다루고 있다. 그간 맡아온 카이스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유민문화재단 등 여러 기관의 자문도 하고 있다. 시간이 생기는 대로 책 보고 글을 쓴다. 최근에 컴퓨터를 하도 두들겨 손병이 났다. 의사가 방아쇠수지라고 하더라. 힘줄에 염증이 생겼다. 처방은 손을 쉬게 하는 것인데 잘 안 된다. 일을 손에 놓지 못하는 성격이다.”

-저서 ‘팬데믹과 문명’의 반응이 좋다. 출간 계기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다. 팬데믹을 일회성 사건으로 보는 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팬데믹에 관한 과학적 이해와 문명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대응에 관해 통섭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뤘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앞으로 우려되는 바이러스의 역습에 대한 전망과 대응 방안, 바이오 무기 개발 중단 필요성, 보건안보에서의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문명사적으로 어떤 감염병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개관했다. 시의성이 있어서인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면 사회적으로 안정이 될 것이나,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를 일으키므로 진단키트도 백신도 시간이 지나면 무력화될 수 있다. 미생물의 변이와 인류 문명의 지혜 사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끝없는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사태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또 다른 팬데믹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비해야 한다.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때 인류 문명이 지속 가능하다는 세계관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

 

-지난해 10월에는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를 냈다. 나이를 잊은 집필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워커홀릭에 가까운 기질 탓일까. 하나에 꽂히면 그 일을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나이를 잊고 살다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는 수면 식사시간 줄여가며 자료를 찾고 원고를 집필했다. 9개월간 준비했다. 산업혁명 통사(通史)이다. 산업혁명의 역사를 보면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2차 산업혁명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한창 산업혁명이 무르익던 1910년에 영국의 노먼 에인절은 ‘위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 저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세상을 예측하였다. 산업혁명에 의해서 세계가 경제적으로 통합되어 상호 의존도가 높아졌고, 산업국가 간의 전쟁은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커졌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초판이 발간되고 4년 만인 1914년에 역사상 최초의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런 등등의 현상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책을 쓰다 보니 59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돌아보니 그간 20여권의 책을 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40여년간 교수, 장관, 국회의원으로 활약하며 환경 행정과 과학기술 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과학계 ‘유리 천장’을 깬 인물로 이공계 후배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글쓰기를 계속하는 김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촉발된 펜데믹은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변화를 부르는 ‘문명의 대전환’을 예고한다”며 “이럴 때는 정치와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가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런 바탕 위에 국제 사회와 공조해 나갈 때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사상 첫 과총 여성 회장으로 선출돼 화제가 됐다.

“2016년에 과총 50년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다.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니 차기 회장 1년, 회장 3년을 신바람 나게 보낸 것 같아서 고마운 시간이었다. 재임 기간 300여회의 포럼과 전문가회의 등을 개최했다. 과학기술계 5개 기관과 공동으로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을 출범시켜 식품, 질병, 재해, 생활화학물질, 환경, 교통, 건설, 사이버 등 7대 분야를 체계적으로 다루었다. ‘미세먼지 국민포럼’, ‘플라스틱 이슈포럼’ 시리즈를 진행하고 정책 제안을 했다. 과학기술계의 전문성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재난의 예방-대응-복구의 전천후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높이려고 작업했고 적지 않은 성과도 있었다고 자평한다.”

-과학분야 노벨상 아직도 요원한가.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받은 국가들과 비교해서 과학기술 개발을 매우 늦게 시작했다. 과학기술 성취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기초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여 응용과 개발 상용화를 거치게 된다. 선진국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당장 먹고살아야 하다 보니 기초를 건너뛰고 기술 상용화부터 손을 댔다. ‘역엔지니어링’이다. 기초가 약할 수밖에 없다. 120년 전통의 노벨상은 기초연구 부문에 주는 상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정책과 노벨상이 미스매치가 된 것이다. 기초연구에 투자와 지원을 늘리다 보면 가능해질 것이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

1999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위촉장을 받고 있다.      

-환경부 장관 시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헌정 최장수 여성 장관’이란 기록도 있는데.

“돌아보니 1999년 6월에 장관으로 임명돼 ‘국민의정부’가 끝날 때까지 장관을 역임했다. 그때는 재임 기간이 짧았던 시절이라 4년도 안 되는데 ‘국민의정부 최장수 장관’에 ‘헌정 최장수 여성장관’이 돼서 그것도 쑥스럽다. 당시 언론의 관심 중의 하나는 교수 출신의 비정치적인 여성장관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가에 있었다. 아무런 정치적 끈이 없이 갑자기 들어왔으니 처음엔 직원들 반응도 썰렁했다. 열심히 일했고, 개각 때마다 살아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장관의 장수(長壽)가 바로 권위(權威)로 직결된다는 것을 느꼈다. ‘힘이 없는’ 부처였던 환경부였지만, 재임 기간이 길어지면서 대접이 달라졌다. 장관으로 부임한 얼마 뒤 국무총리실 산하에 대규모 민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당시 법적 근거에 의한 정부 부처 업무평가가 시작됐다. 그런데 기대도 못 했던 일이 생겼다. 환경부가 1회, 2회 잇따라 최우수 부처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런 기록으로 우수 부처의 기틀을 마련하고 물러난 것은 평생의 훈장으로 남아있다.“

2000년 4월 한·중·일 환경장관회의 때 모습.

-후배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내 몫의 삶을 열심히 산 것밖에 없다. 2008년에 ‘세계의 여성 과학자를 만나다’ 프로젝트로 ‘과학 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란 책이 출간됐다. 서울대, KAIST, 포항공대 여학생 5명이 여성 과학자를 인터뷰해서 엮은 책이었다. 그 당시 국회의원을 하던 내게는 “한국 정치에 향기를 불어넣은 여성 과학자”라는 멋진 제목을 붙여주었다. 학생 기자들은 나의 경력에서 특히 제1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로 선정되고,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간사로 일하면서 초선으로서 국회윤리특별위원장이라는 상임위원장을 하는 등 나의 기록에 관심이 컸다. 인터뷰에 열심히 응했는데 나중에 학생 기자들이 쓴 후기를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요약하면 ‘참 답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순응하면서 슈퍼우먼으로 살았나’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선 여성과학자로서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며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슈퍼우먼의 삶을 살아야 했다. 사회가 모성 보호와 양성평등의 인프라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여성 전문인력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것은 공염불로 보인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여성들이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갖고 지적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융합형 전문가로 활약하기를 기대한다.”

-삶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이다. 내가 할 바를 다 하고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삶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성실, 정직, 열정으로 살기를 원했고, 욕심을 버리고자 했다. 원래 워라밸이라는 용어와는 거리가 멀어서, work와 life를 구분하고 그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그 두 가지를 엮는 삶을 살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없다.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생활에서 풀고 생활 속의 스트레스는 일에서 풀었다고나 할까.”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더는 무엇을 맡는다고 하는 것은 노추(老醜)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감사한다. 현재 맡은 서울국제포럼 회장 일이 최종 프로젝트이니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다. 체력관리를 잘해 지금처럼 그간의 경험과 공부를 토대로 책을 꾸준히 쓸 생각이다. 구상 중인 책이 있는데 나중에 밝히겠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1944년 서울 출생 ●1962 경기여고 졸업 ●1966 서울대 문리과대학 화학과 졸업 ●1971 미국 버지니아대 대학원 졸업 ●1974~1999 숙명여대 교수(이과대학장, 화학·과학사) ●1994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수상 ●1999~2003 환경부 장관 ●2002 ‘제1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 수상 ●2003~2004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 CEO 초빙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2004~2008 제17대 국회의원(국방위원회 간사, 국회 윤리특별위원장) ●2008~2016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2015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수상 ●2017~2020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2020~현재 (사)서울국제포럼 회장,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상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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