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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누렁이 학살’을 막지 못한다 [밀착취재]

입력 : 2020-07-15 19:49:16 수정 : 2020-07-15 19: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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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2019년 도축장 다 없앴지만… 지방서 고기 사와 문제없이 영업
동물단체 “복날마다 대량학살 반복” 식당 주인 “대책 없이 금지 안 돼”

초복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은 손님들 북적였다. 서울 전통시장 중 거의 유일하게 개고기를 판매하는 이곳은 입구 부근에는 여느 시장처럼 청과물과 식료품을 파는 상점이 늘어섰다.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빨간 글씨로 된 ‘개고기’나 ‘개소주’ 등의 간판을 내건 식당들이 보였다. 도축한 개를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건강원도 눈에 띄었다.

 

한 보신탕 식당에는 테이블의 절반가량이 손님들로 차 있었다. 여름철에만 한두 번 개고기를 먹는다는 한 40대 남성은 “요즘은 밖에 나가서 개고기를 먹는다고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소나 돼지는 되고 개만 유독 반대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신탕 식당이 밀집한 골목 한편에는 도축할 개를 기르던 ‘뜬장’도 놓여 있었다. 녹슨 뜬장 안에는 개털과 배설물만 쌓여 있었다. 최근 개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이 줄었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설명이지만, 식당에는 개고기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0년 이상 경동시장에서 건강원을 운영했다는 한 식당 주인은 개식용 금지운동에 대해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을 정부가 막으려고 한다”며 “대책도 없이 하지 말라고만 하니 말라죽으라는 소리냐”고 토로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개 도축업소가 있었다.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동물보호 등을 목적으로 시장 내 업소를 지속적으로 설득했고 지난해 시장 내 모든 도축장이 폐쇄하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도살장 폐쇄 이후 서울시는 서울 전체를 ‘도살 제로 도시’로 선언하기도 했다. 개 도살로 인한 동물학대를 방지하고 반려동물에 대한 변화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결과였다.

 

동물단체는 이 같은 움직임에 환영을 뜻을 밝히면서도 개식용 금지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보고 있다. 도심 내 도살장이 폐쇄됐을 뿐 여전히 도심 외곽이나 타 지역에서는 개 도살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한 식당 앞에 보신탕을 판매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경동시장과 마찬가지로 2018년과 2019년 각각 도살장을 철거한 경기 성남시의 모란시장과 부산 구포시장에서도 개고기 판매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경동시장에서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도 개 도살장이 폐쇄된 이후 경기도에서 고기를 공급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도살장 폐쇄 이후 모란시장이나 경동시장을 가봤지만 개고기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거의 그대로 있었다”며 “밖에서 도살해 오는 고기만으로도 충분히 영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살을 외곽으로 밀어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속되는 개식용 반대 목소리에 정부도 관련 법 개정을 약속했다. 2018년 개식용 종식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40만명 이상이 동의하자 정부는 “이제는 반려동물로 자리매김한 개를 축산법에서 제외할 때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국회 차원의 입법 시도가 있었을 뿐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관련 입법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행 동물보호법 등에 따르면 동물을 잔인한 방식으로 죽이거나 학대하면 징역이나 벌금을 선고하게 돼 있지만, 개를 도살하거나 개고기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축산법과 달리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개가 가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김현지 정책팀장은 “정부와 국회가 결단을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올해 복날에도 수많은 누렁이들이 또다시 사육되다 도살당할 것”이라며 “30∼40년을 미뤄온 일을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글·사진=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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