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食은 수행…” 사계절 순리 담긴 사찰음식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0-07-15 10:00:00 수정 : 2020-07-14 15:13:4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미래 세대에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어떻게 정의내릴까. 온통 먹을 것만 가득한, 혹은 먹는 것밖에 모르는 ‘탐식(貪食)의 시대’라 평가하진 않을까. 미디어에 종횡무진 넘쳐나는 ‘먹방’은 한없이 굶주린 현대인의 욕망을 고스란히 비춘다. 타인의 먹는 모습을 훔쳐보면서까지 핍진한 허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절밥’, 그러니까 사찰음식은 이런 시대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뭐랄까 알면 알수록 새롭게 보인달까요. 먹는 행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죠.”

 

3년 전 우연한 계기로 사찰음식을 접한 30대 직장인 반지현씨의 말이다. 그 정갈하고 담백한 맛은 물론 음식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식’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 본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 길로 무작정 사찰음식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얼마 전 에세이집 ‘스님과의 브런치’를 상재했다. 요리법 나열이 아닌 사찰음식에서 배운 삶의 태도와 정성, 마음가짐을 담는 데 주력했다.

 

“맛도 맛이지만 음식을 대하는 스님들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버섯·당근·두부… 마트에서 일이천원이면 살 수 있는 식재료들이 아름다운 요리로 탄생할 수 있는 건, 특별한 기술보다 재료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정성이 비결이란 걸 알게 됐죠. 사찰음식을 배우면서 제 삶, 제 태도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사람과사회적경제 제공

◆‘한국식 비건’ 각광받는 사찰음식

 

종교를 떠나 반씨처럼 사찰음식에 관심 갖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맵고 짠맛이 범람할수록 사찰음식 특유의 슴슴하고 담백한 맛은 부각된다. 서구인들 관심도 커졌다. 수년 전 세계적인 요리 프로그램에 우리 사찰요리가 비중 있게 소개되더니, 올해엔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르 코르동블루 런던캠퍼스 정규 과정에 ‘한국의 사찰음식’이 포함됐다.

2017년 정관 스님은 전 세계 1억4000만명이 가입한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3’에 출연해 우리나라의 다양한 사찰음식을 소개했다.

물론 외국에선 이를 채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측면이 강하다. 대부분 유럽 언론은 “(사찰음식이) 유럽 내 채식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란 식으로 소개한다. 말하자면 ‘한국식 비건’쯤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구에서 말하는 비건과 우리의 사찰음식은 결이 조금 다르다. 사찰음식은 통상 스님이 절에서 먹는 음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육류와 오신채(五辛菜, 마늘·파·달래·부추·흥거)를 넣지 않고 조리한 음식을 이른다. 육류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불교의 불살생계와 윤회사상 때문이다. 지금 살아있는 동물이 전생에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매운 채소’란 뜻의 오신채는 “익혀서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고, 날것으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더해지기 때문”에 금한다. 이처럼 사찰음식은 단순 채식이 아닌, 종교적 철학이 녹아 있는 음식이다.

사진=사람과사회적경제 제공

언뜻 사찰음식에 영양상의 문제가 있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이는 편견에 가깝다. 부족한 단백질은 콩이나 버섯을 통해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다만 속세 보양식이 동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사찰 보양식은 소화흡수율이 관건이다. 운동량 적은 스님들이 소화가 쉽게 이뤄지고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食’은 수행… 본질에 주목해야

 

불교계에선 사찰음식이 현대인의 중독,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자극 속에 살고 있는지 몰라요. 재료 본연의 맛보다는 맵고 짜고 단 조미료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거죠. 가령 된장찌개 하나만 보더라도 시중의 것은 된장 맛보단 각종 조미료와 첨가물 맛이 더 크게 나죠. 사찰음식을 접하게 되면 음식에 대한 집착과 중독을 곧이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지난 13일 사찰음식 협동조합 ‘템플셰프’ 이사장인 동원 스님이 기자에게 사찰음식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13일 서울 성북구 수월암에서 만난 동원 스님 설명이다. 그는 그러면서 “사찰음식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여러 미디어에서 마치 대단한 것인 양 소개하고 있지만 본래 스님들이 입에 대는 것이란 대개 거칠고 추한 것들뿐이란 얘기다. 즉 형태보단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는 거다.

 

“절 밖에서 먹는 사찰음식은 사찰음식이 아닐까요? 사실 사찰음식이란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에요. 절에 있는 스님들처럼 음식을 먹기 전 이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으로 오게 됐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것,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데에 대해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음식을 매개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 그게 핵심이죠. 일종의 수행, 그러니까 음식에 담긴 부처님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사찰음식 협동조합 ‘템플셰프’의 이사장이기도 한 동원 스님은 요즘 사찰음식을 알리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사찰음식의 가르침이 현대인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경쟁의 질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약’이 될 수 있단 생각에서다. 본디 불교에서는 음식을 약의 관점에서 본다. 지난달부터 오는 10월까지 비영리단체와 함께 매월 한 차례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찰음식을 전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 다이닝’을 개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수월암에서 혜범 스님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템플셰프 소셜다이닝’에서 사찰음식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반지현 작가가 소개하는 초간단 사찰음식 <오이국수>=1)오이를 편으로 얇게 썬 뒤 뜨거운 소금물을 붓는다. 2)소금물에 절인 오이의 물기를 꽉 짠다. 3) 2)에 고춧가루와 식초, 매실액, 설탕, 가는 소금 약간을 취향껏 넣고 버무린 뒤, 국수에 올린다.

“오로지 제철채소만 다루는 사찰음식에는 ‘순리’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자연스러운 이치를 결코 거스르는 일이 없죠. 우리 현대인들의 일상은 어떤가요. 억지로 만든 것, 인위적인 것투성이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때되니까 먹는 습관에서만 벗어나도 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먹는다는 것은 언제나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죠. 이는 종교가 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