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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관객 만나길 손꼽아 기다립니다”

입력 : 2020-06-28 20:00:20 수정 : 2020-06-28 2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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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미뤄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 2015년 초연 후 공연 때마다 매진 / ‘가장 보고 싶은 연극’ 압도적 1위 / 예매 개시 당일 한 달치 공연 매진 / 코로나 재확산으로 국립극단 휴관 / 배우들은 실전 같은 연습 이어가 / 끝내 문 못 열면 온라인으로 선봬
중국 원나라 시대 희극을 다시 만들어 2015년 초연 이후 공연마다 격찬을 받고 있는 고선웅 연출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배우 하성광은 조씨 가문 마지막 핏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갓난아기를 희생시키는 시골 의원 정영으로서 명연기를 펼친다. 국립극단 제공

복수의 씨앗, 조씨고아는 극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전해내려온 복수극의 전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권력욕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간신 모략으로 할아버지부터 손자는 물론 형제, 종형제, 재종형제, 삼종형제 일가까지 모두 300명에 달하는 문중 구족(九族)이 몰살당한 조씨 문중의 유일한 생존자다. 혈겁(피바람) 중에 태어난 그를 살리기 위해 많은 이가 의리와 복수라는 명분을 앞세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골 의원 정영은 죽을 운명인 조씨고아를 대신해서 자신의 늦둥이 아들을 간신에게 갖다 바치기까지 했다. 20여년 후에 조씨고아의 복수는 완성되나 그 결말은 시원하기보다는 공허하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015년 초연 당시부터 ‘10년 사이 나온 연극 중 최고’라는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각종 연극·연출상을 휩쓸었으며 이후 공연 때마다 매진을 기록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이 실시한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설문에서 압도적 표차로 1위를 차지한 것도 당연한 결과다. 그리하여 애초 6월 25일부터 7월 26일까지 국립극단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긴 한 달에 걸쳐 공연할 예정이었고 표도 예매 개시 당일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공립극장이 무기한 임시 휴관에 들어가면서 조씨고아 개막도 미뤄졌다. 기다리는 관객이 많은 작품인 만큼 국립극단은 폐막 예정일인 다음 달 26일 이전 단 하루라도 방역 상황 호전으로 ‘OK’ 신호가 나오면 즉각 공연을 재개할 작정이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휴관 중에도 실제 무대와 같은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또 끝내 극장에서 선보일 수 없다면 온라인으로 소중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녹화까지 마쳤다. 관객을 하루라도 만날 수 있다면 ‘연극을 올리겠다’는 ‘조씨고아’ 배우와 창작진의 의지가 모인 결과다.

지난 24일 취재진에게 공개된 ‘조씨고아’의 드레스리허설 현장은 이 같은 배우들과 제작진의 뜨거운 마음과 명품 연극이 만들어내는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진 무대였다. 연출 고선웅은 중국 원나라 때 희극을 생생한 개성의 등장인물로 꽉찬 속도감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의리’와 ‘복수’, ‘대의’를 위한 ‘희생’ 등 우리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초연 이후 네 번째 공연을 거의 함께 한 출연진 연기는 경지에 오른 완성도를 보여준다. 정영 역을 맡은 배우 하성광을 비롯해 유순웅(조순 역), 장두이(도안고 역), 정진각(공손저구 역), 이지현(정영의 처 역) 등 연극계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이번 공연을 위해 다시 뭉쳤다. 여기에 한궐 역에 배우 김정호, 조씨고아 역에 배우 홍사빈이 더블 캐스팅돼 호산(한궐 역), 이형훈(조씨고아 역)과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조씨고아가 죽음에서 탈출하는 경과를 담은 1부 무대의 절정은 갓난아기를 바꾸다 들킨 정영과 아내의 대화다.

정영: “이보게, 부마께서 자결하셨고, 공주마마는 내 앞에서 목을 맸어. 한궐 장군도 오로지 의리로서 자결을 했고 공손대감께서도 생사를 함께하기로 이미 결단하셨네. 난 그분들과 한 약속을 지켜야만 하네.”

정영 처: “그깟 약속! 그깟 의리가 뭐라고! 에잇! 남의 자식 때문에 제 애를 죽여! 그깟 뱉은 말이 뭐라고!”

정영: “여보. 오늘 내가 한 선택을 평생 동안 후회하며 산다 해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 아이고 이놈아 울지 말어. 울지 말어 이놈아. 아가 아가.”

수백 번 정영을 연기했을 하성광의 명연기가 빛나는 대목이다. 대의 앞에서 고뇌하다 자식의 희생을 택한 비정한 아비의 내적 갈등을 호소력 있게 보여줬다.

복수극으로서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장면은 2부에서 정영이 도완고의 양자로 장성한 조씨고아에게 진정한 신분과 가문의 비극을 들려주며 복수를 종용하는 대목이다. 정영은 잊지 않기 위해 그간 사연을 그려놓은 두루마리 그림을 죽 펼쳐 조씨고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서히 드러나는 자신의 출생 비밀에 조씨고아는 무대를 두세 번 뛰쳐나갈 정도로 당혹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에 정영은 자신의 손목을 자르는 것으로 이 거대한 복수극에 얼마나 많은 인생이 희생됐는지를 강조하고 결국 조씨고아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24일 공연에선 2018년 데뷔한 신인 배우 홍사빈이 조씨고아로 등장했는데 작품 속 주인공과 비슷한 20대 초반의 배우가 보여주는 치기 어린 모습은 그간 원조 조씨고아로서 무게감과 원숙함을 보여준 이형훈과 다른 새로운 캐릭터 해석을 보여줬다. 조씨고아 역시 20년에 걸친 복수극의 최대 희생자임을 각인시켜줬다. 강요된 자결을 앞두고 복중 태아에게 조씨고아라는 이름과 복수를 유언으로 남긴 조삭 역의 김도완이 보여준 몸짓 연기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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