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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빈 수혜국이 분담금 10위 공여국으로… ‘성공 스토리’ 써 [한반도 인사이트]

입력 : 2020-06-17 06:00:00 수정 : 2020-06-16 21: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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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네스코 가입 70주년 / 운크라와 공동지원 교과서 발간 / 전후 ‘한국 교육재건’에 큰 기여 / 교육·문화·과기 분야 다루지만 / ‘세계유산’ 등재 등 놓고 외교전도 / 日과 ‘위안부 기록’ 등 첨예대립 / 집행이사국 다선… 위상변화 실감 / 문화다양성 등 새로운 도전 과제
“이 책은,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와 운크라(UNKRA·유엔한국재건단)에서 인쇄기계의 기증을 받아 설치된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에서 박은 것이다.” 문교부 장관 명의의 이 같은 공지문은 1957년판 대한민국 문교부 발행 ‘자연’ 5학년 1학기 교과서의 맨 뒷장에 적혀 있다. 문교부가 발행한 이 교과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로비에 전시돼 있었다. 이 교과서로 공부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012년 유네스코를 방문해 기증한 것이다.

 

1950년 6월14일, 6·25전쟁 발발을 11일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는 유네스코에 가입했다. 대한민국이 가입한 첫 국제기구였다. 전후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발행한 교과서로 공부하며 꿈을 키웠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2020년은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이기도 하다.

문교부가 1957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발행한 자연 교과서. 사진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당시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해 만든 사본이다. 유네스코 로비에도 당시 발행된 한국의 자연 교과서가 전시됐다. 홍주형 기자

◆다변화하는 유네스코 외교

 

한국은 지난해 741만564달러의 분담금을 유네스코에 지급해 분담금 부문 10위 공여국이 됐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분석자료에 따르면 1954년 한국의 분담금은 1만2300달러로 전체 회원 분담금의 0.12%에 불과했다. 엄청난 위상 변화다. ‘최빈 수혜국이 오늘날 10위권의 공여국이 됐다’는 한국의 성공스토리는 유네스코 내에서도 자주 회자된다.

 

가입 70주년이 지나 한국의 유네스코 외교도 다변화되고 있다. 서은지 외교부 공공문화외교국장은 16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유네스코와의 평화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기여,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연대와 포용 메시지 발신, 우리의 발전 경험 공유가 최근 유네스코 외교의 축”이라고 강조했다. 유네스코가 관할하는 교육, 문화, 과학기술 분야에서 저개발국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네스코가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세계시민교육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혐오와 차별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정부는 지난 5월 유네스코 내에 혐오와 차별을 배격한다는 의미로 ‘연대와 포용을 위한 세계시민교육 우호그룹’을 결성했다. 특히 남북 DMZ 세계유산 공동 등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이후 정부의 대유네스코 외교 과제로 급부상했다.

 

유네스코가 다루는 분야는 외교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연성 분야지만, 유네스코 내에서도 치열한 외교 각축전이 벌어지는 분야가 있다. 과거사 분쟁이 개입될 때 특히 그렇다. 한국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세계기록유산 등재, 일본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등에서 첨예하게 맞서왔다.

일본 도쿄 신주쿠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조성된 '산업유산정보센터' 일반 개관 첫날인 15일 오전 정문 자동 개폐장치가 꺼진 채로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전날 개관한 일본 산업유산센터가 근대산업시설의 한국인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겠다고 한 일본정부의 약속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유네스코 본부에 항의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고 외교부가 16일 밝혔다.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소련과 중공이 번번이 한국의 유엔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은 1991년이지만, 유네스코 가입은 그보다 40년이나 빨랐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유네스코의 정치적 특성 때문이다. 유엔 비회원국의 가입시 유네스코 총회 전 거치게 돼 있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가 한국과 대만의 유네스코 가입에 항의하며 퇴장했지만, 1950년 6월14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신생국 한국은 찬성 27, 반대 1, 기권 4표를 얻어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6·25전쟁 발발 직전 성사된 유네스코 가입은 전후 한국의 교육 재건에 작지 않은 기여를 했다. 1954년 9월16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문교서적(대한국정교과서 전신) 인쇄공장 낙성식이 열렸다. 유네스코와 운크라가 24만달러를 들여 1년에 3000만권의 교과서를 찍어낼 수 있는 인쇄시설과 용지를 지원했다. 유네스코는 1950∼1960년대 한국에서 문맹퇴치사업 및 농촌지도자 양성사업도 진행했다.

 

한국은 1987년 처음으로 유네스코 집행이사국에 진입했다. 유네스코 내 기여도와 국력의 성장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지난해에도 유네스코 집행이사국에 선출됐다. 유네스코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도 다수다. 2008년 유네스코에서 내부 승진으로 고위직이 된 첫 사례였던 최수향 유네스코 산하 유엔직업교육훈련국제센터(UNEVOC) 센터장을 비롯해 유네스코는 한국인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국제기구 중 하나로 꼽힌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오른쪽)이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년과 앞으로의 협력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파리=외교부 제공

◆문화다양성과 한국

 

유네스코 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국제협약은 문화다양성 협약이다. 정부는 한국정부는 2005년 10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지지했지만, 경제조약과의 충돌 등의 문제로 비준이 늦어지며 내부 홍역을 겪었다. 당시 국내 문화예술단체는 한국정부가 일부 조항을 유보하려는 데 대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2010년 협약을 채택했다.

 

한국은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정부간 위원회의 차기 의장국으로 선정됐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지만 도전 과제가 많다. 2000년대 초반 스크린쿼터 폐지 논란 이후에도 국내 문화계에서 문화다양성과 관련된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주민 증가로 한국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와 관련한 과제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문화산업 분쟁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입장을 조율하고 시장 논리가 아닌 문화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중재 역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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