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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 붕괴… 국제공조 느슨해지고 신냉전 가속화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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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30 18:00:00 수정 : 2020-05-30 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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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정치경제학, 국제질서 허물다 / 트럼프, 中책임론 거론… 막말 쏟아내 / 中도 “트럼프 제정신 아니다” 맹비난 / 양국 ‘레토릭 싸움’ 선 넘어 이전투구 / 美, 코로나 타격… 中, 빠르게 틈새 공략 / 협력보다 대결… 정치·경제 변화 예고 / 국제기구 위상 하락… 신국가주의 등장

#1.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것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청년 장교 나세르는 1956년 7월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이집트 침공을 개시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이집트에 선전포고했다. ‘수에즈 운하 위기’로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비밀협약을 맺은 이스라엘과 영국, 프랑스의 공격에 이집트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전쟁 결과, 3국의 군사적인 승리가 정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고, 중동 패권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졌다. 이후 학자들은 국제관계의 격변을 초래한 사건을 ‘수에즈 충격’이라고 불렀다.

 

#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5월 15일 논평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한 반발이다. 중국은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으로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조롱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든 데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의 코로나19 책임론을 거론하고 ‘얼간이’ ‘또라이’ 등 막말을 쏟아냈다. 폼페이오 장관도 시진핑 국가주석을 겨냥해 ‘악랄한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양국 간 레토릭 싸움이 선을 넘어 진흙탕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국제질서’를 허물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로 상징되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국가 간 경제협력 체계에 균열이 생겼다. 탈세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지탱해왔던 유엔 등 국제기구도 무력화하고, 새로운 국가주의가 등장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 19로 각국이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면서 새롭게 들어서는 세계 신질서는 탈세계화와 국제공조 결여가 특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 제2의 수에즈 충격?… 코로나 갈등이 신냉전 앞당겨

중국의 한 국제정치학자는 “코로나19가 제2의 수에즈 충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가 기존 국제질서의 대변혁을 초래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코로나19에 강펀치를 얻어맞은 미국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 중국이 틈새를 빠르게 대신하는 현 국제질서 흐름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리더’의 망토를 중국에 내줬다”며 “아시아와 유럽 파트너들을 적대시해 ‘미 동맹 균열’이라는 중국의 오랜 목표를 자극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협력과 대화’보다는 ‘대결과 충돌’의 길로 들어섰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추진이 상징적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자본주의 혜택을 누렸던 홍콩은 과거 이념대결 속 양 진영 간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암묵적인 약속이 어그러지면서 양측은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냉전의 그림자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12월 새로운 미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전방위 압박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중국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중심의 경제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분명히 했다. 이후 남중국해와 대만, 이란 및 북핵 문제 등 곳곳에서 미·중 충돌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코로나19는 이를 가속화했다. 미 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FP)는 “코로나19로 양국 간 결별에 가속도가 붙었다”며 “세계화를 주도한 양국의 탈동조화 현상은 세계 정치, 경제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국제기구, 강대국 대리전 도구 전락… 권력 집중된 신국가주의 등장

코로나19는 또 새로운 국가주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다. 세계화에 기반을 둔 국가 간 협력과 자유무역 체계에서 벗어나 권위주의적이며, 고립주의적인 거대정부 출현이 예상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예방을 명분으로 국가 통제력이 강화하고 있다. 처음 코로나19 창궐로 쓴맛을 본 중국은 지금까지 모두 8만명 이상 확진자 발생에 사망자도 4700여명 가까이 된다. 그러나 성공적인 방역을 명분으로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의 기반은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가다. 헝가리에서는 총리가 국가비상상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코로나19 방지법이 통과됐다. 이 또한 방역을 명분으로 총리의 권한을 과도하게 키운 것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AP=연합뉴스

국제기구의 위상 하락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유엔을 맏형으로 하는 국제기구 중심의 국가 간 협력과 평화 조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지탱해 온 하나의 큰 흐름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국제사회 조정자인 유엔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특히 감염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중 신경전 속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세계 다자무역의 균형자 역할을 해왔던 세계무역기구(WTO)도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를 놓고 미국과 마찰을 빚으며 호베르투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중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힘으로 유지되던 국제질서가 붕괴하면서 국제기구의 허상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유럽연합(EU) 분열이다. 코로나19는 하나의 유럽을 뒤흔들었다. 예상 밖 전파력에 EU 차원 공동대응을 모색하지 못한 채 각국이 각자도생을 시도해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이 극심한 피해를 보는 동안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지원은커녕 마스크 등 의료용품 수출을 제한하고 국경을 폐쇄하면서 갈등이 노출됐다. 피해 회원국 지원 등 경제 대책을 놓고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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