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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서 예방으로… 미래의학의 변신

입력 : 2020-05-05 03:00:00 수정 : 2020-05-04 19: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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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 개인 맞춤형 유전체 의학시대 열려 / 질병의 진단·치료·예측도 할 수 있어 / 10만원대에 침한방울이면 검사 가능 / 감염병 분야서도 분자진단법이 대세 / PCR 방식 통해 코로나도 진단 성과

지난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이 잡혔다. 범인을 잡지 못해 영구 미제로 남을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경찰은 사건이 벌어진 후 무려 30년이 흘러, 공소시효마저 지난 이 사건의 범인 이춘재를 지난해 9월 검거했다. 당시에는 DNA 분석기술이 없었으나 다행히 머리카락 등이 나중에 범인임을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전체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를 채취해 놓은 덕에 일일이 재소자들의 것과 비교해 마침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화성 살인사건이 요즘 벌어졌다면 범인을 잡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임이 자명하다.

최근에는 범인 검거의 초동 증거가 되는 몽타주를 DNA로 그리는 기술도 개발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KIST가 지난해부터 국가연구사업으로 미아를 찾기 위해 이들의 수십년 지난 모습을 예측하는 데 DNA 분석을 사용하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2013년 5월 유방절제술을 한 사실을 ‘뉴욕타임스’를 통해 고백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것을 알게 된 앤젤리나 졸리는 미리 유방절제술을 받아 유방암 발병 확률을 5%로 줄였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유전자분과 전문위원을 역임하면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질병 예측과 맞춤 치료를 연구해온 저자 김경철 박사의 ‘인류의 미래를 바꿀 유전자 이야기’는 두 사례에서 보듯 유전학 검사 발전에 따른 기술의 진보로 달라진 세상을 소개하고 있다.

김경철 / 세종서적 / 1만7000원

저자에 따르면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HGP)가 끝난 이후 유전자 연구는 불과 20년 사이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게놈에 있는 32억개의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쌍의 서열을 밝히는 사업을 말한다. 사람마다 다른 유전 정보의 총합이란 뜻의 ‘유전체’ 데이터들의 분석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현대인은 이전과 다른 수준의 첨단의료를 경험하고 있다. 유전자는 질병의 진단, 치료, 예측에 활용될 뿐 아니라 일상의 소비, 운동, 먹거리 선택, 진로 결정 등 다방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각자의 유전적 소인에 맞추어 진단과 치료를 하는 맞춤 유전체 의학시대가 열린 셈이다.

현재 1000만명 이상이 소비자 개인 유전자 검사(DTC·Direct to Customer)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머지않아 1억명 이상이 개인 유전체 정보를 보유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가 심했던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부터 병원이 아닌 집에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DTC 항목이 대폭 확대됐다. 과거엔 10억원대였던 유전자 검사 비용이 이젠 100만원대로 떨어졌고, 소비자 검사는 10만원대로 떨어져 침 한 방울이면 검사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 김경철 박사는 “지금까지의 의료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유전자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래의학은 치료(cure)의 개념에서 예방(care)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며 “그 중심에는 예방의학의 핵심인 유전자 정보의 총합 ‘유전체’가 있다”고 설명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본문 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바이러스나 세균의 진단법에 적용되는 유전자 검사법이 사용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도 유전자로 진단한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가장 빠르게 확산한 나라이지만 초반 강력한 대책으로 세계로부터 코로나19 퇴치 모범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바이러스 진단키트를 통한 대규모 진단 및 조기 발견, 조기 경리 정책 시행 덕분이었다. 5년 전 메르스 때 혹독한 경험을 했던 질병관리본부는 중국에서 감염이 확산할 때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시퀀싱 정보를 얻은 후 자체 분석을 거쳐 국내 유전자 진단 회사들을 통해 키트를 대량생산해낼 수 있었다. 이 덕에 수만명 전수조사라는 새로운 방역정책을 가능케 한 중요한 인프라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은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결핵균 등 감염병 분야에서도 기존의 진단방식인 배양, 혈청 방식이 아닌 미생물체의 유전자 분석을 통한 분자진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PCR로 알려진 종합효소 연쇄반응이라는 기술이 분자 진단의 선봉에 서 있는데, 이는 특정 게놈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짧게 읽어서 특정하고 너무 작은 이 염기를 대량으로 증폭하며 DNA를 측정하는 장비를 말한다. PCR 방식의 분자진단법은 많은 감염병 진단에 적용되고 있다.

유전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유전자를 통한 예측이 가능하고, 예방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사람은 태어나기도(nature) 하지만 만들어지기도(nurture)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의료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유전자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래의학은 치료(cure)의 개념에서 예방(care)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저자는 “이미 의료 선진국들은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자국민 유전체를 분석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축적한 공공 의료 데이터, 임상 데이터 등과 접목해 예방의학의 시대를 열고 있다”며 “유전자 연구에 대한 당국의 지원과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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