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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처럼 함께 잘사는 사회 만들고파”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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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02 21:27:11 수정 : 2020-03-02 2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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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 / 카카오톡 이모티콘 기획 주인공 / 발달장애인, 종이접어 제품만들어 / “회사 잘돼 사회에 기여했으면”

‘거대한 피라미드’. 김민양(41) 그레이프랩 대표가 보는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빈부격차 심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층만 거대해지는 기형적인 사회구조를 의미한다. 김 대표가 내놓은 대안은 ‘포도송이’다. “포도송이는 커지면 계속 몸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옆에 다른 포도송이가 달리며 ‘함께’ 성장합니다. 작은 포도송이들이 연결돼 결집력을 가지죠.”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가 2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포도송이’처럼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재문 기자

그레이프랩은 ‘그레이프(Grape·포도)’와 ‘랩(Lab·실험실)’이라는 이름처럼 우리 사회에서 포도송이 이론을 실험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대표제품인 ‘지스탠드(g.stand)’와 ‘지플로우(g.flow)’는 환경에 무해한 재생용지를 접어 만든 독서대와 노트북 거치대다. 제품에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그림이 들어가며, 판매수익은 해당 예술가에게 돌아간다. 손으로 종이를 꾹꾹 눌러 접어 제품을 만드는 것도 발달장애인들이다. “발달장애인과 어우러지며 포도송이처럼 ‘같이’ 성장하는 삶을 꿈꾼다”는 김 대표를 2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카카오의 초기 멤버로, 2011년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지금은 대중화됐지만 당시만해도 회사에서는 이모티콘에 회의적이었다. 김 대표는 “웹툰 작가들과 이모티콘을 제작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회사에서는 투자를 부담스러워해서 수익이 나면 작가들과 나눠갖는 구조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좋았지만 웹툰 작가들에게도 이모티콘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이 일은 김 대표에게 ‘상생의 기쁨’을 알려줬다. “누구 하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작가들이 같이 잘 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과 상생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갔다. 그에게 영국은 산업화 부작용을 겪으며 ‘어떻게 같이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미 경험한 나라였다. 2년 동안 머물며 지속가능한 디자인, 상생 시스템을 공부했다. 한국에 온 뒤 지속가능한 디자인 연구소를 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결혼 후 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신 7∼8개월쯤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김 대표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처음으로 장애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아이는 유산됐다. 충격이 컸지만 장애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생각에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년 정도 봉사활동을 한 김 대표는 발달장애인의 남다른 감각을 알게 됐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비장애인과 다른 시선으로 그리는데 디자이너 입장에서 신선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공부했던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활용해 재생지를 접어 만드는 독서대를 구상했고, 발달장애인의 그림을 넣었다. 종이를 접는 직원으로는 발달장애인을 채용했다. 2018년, 그렇게 그레이프랩이 탄생했다.

 

그레이프랩의 ‘지스탠드’. 발달장애인의 그림을 넣은 휴대용 독서대로, 발달장애인이 접어서 만든다. 그레이프랩 제공

지스탠드라고 이름 붙인 독서대는 화학적 접착제도 쓰지 않고 쓰임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무게는 110g이지만 최대 5kg의 무게를 견딘다.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빠르게 판매량이 늘었다. 발달장애인이 만들고, 그림을 그린 발달장애인 작가에게도 수익의 50%가 돌아가는 구조도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노트북거치대인 지플로우가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후원 목표액의 4배가 넘는 1만2500달러를 모집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종이를 접어 제작하다 보니 처음에는 팔 수 없는 ‘B급 상품’이 쌓여 갔다. “첫 직원이 처음부터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매우 성실했어요. 결국 성실함이 이기더군요. 지금은 ‘베테랑 직원’이 됐어요.” 현재 그레이프랩의 발달장애인 직원은 6명. 시급 1만원 이상을 받으며 일주일에 1∼4번 출근한다. 김 대표는 “세상에 없던 물건을 제작하는 것이다보니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회사를 정착시키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직원들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생기고, 정서가 안정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장애인 채용이 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이전에는 장애인을 보면 괜히 피했다. 잘 몰라서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같이 지내보면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그레이프랩은 재생지로 만든 노트 등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한 제품들도 생산할 게획이다. 해외 진출도 확대한다. 김 대표는 “꿈은 회사민가 잘돼서 다같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며 웃었다. “직원 모두 자신의 일에 재미를 느끼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다같이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고 사회 공헌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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